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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미디어 왕국의 수도
화씨 80도. 1월 말 한낮의 햇볕이 강하다. 섭씨로 환산하면 28도 가량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여름 날씨다. 넓은 분지에 자리잡고 있는 버뱅크시는 LA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다. ‘세계 미디어왕국의 수도’라는 타이틀이 붙을 정도로 유명한 방송사와 영화사가 자리잡고 있는 미 서부지역의 주요한 도시중의 하나이다.
1867년에 LA의 부동산 갑부 닥터 버뱅크가 후에 워너브라더스의 땅이 되는 넓은 대지를 사들여 양을 키우기 시작했다. 이곳에 철도가 들어오고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마침내 1887년 5월 1일, 최초의 개발자 닥터 버뱅크의 이름을 따 도시의 이름을 버뱅크로 지었다.
이후 1917년에 버뱅크의 첫 번째 주요 산업의 시초가 된 모랜드 트럭 회사가 들어섰다. 당시 미국 전지역의 고속도로에는 ‘메이드 인 버뱅크’의 라벨이 붙은 트럭이 질주했다. 1929년에는 버뱅크의 첫 라디오 방송사인 ‘KHLW 트리븐 신문사’가 설립된다.
버뱅크가 서부지역의 주요도시로 성장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록히드사의 설립이다. 록히드사는 버뱅크의 농장지대에 비행기 공장을 세웠다. 때마침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9만4천 명의 근로자가 1만9천 대의 비행기를 생산할 만큼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 즈음 영상산업의 싹도 움트기 시작했다. 영화사 퍼스트내셔널 픽쳐스사가 처음으로 이곳에 터전을 잡은 후 워너브라더스, 콜럼비아 픽쳐스, 그리고 월트 디즈니사 등 메이저급 영화사가 속속 둥지를 틀었다. 60∼70년대에는 NBC 등 방송사들도 잇따라 자리를 잡았다.
버뱅크는 160여 종류의 언어가 사용될 정도로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다민족 도시이다. 이들 다계층 다민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은 시에서 발행하고 운영하는 각종 홍보매체들이다.
대표적인 것이 케이블방송인 ‘TV-6’와 정기간행물인 <버뱅크 Today>. 케이블 방송은 미디어 도시답게 영상 및 구성 등이 공중파 방송과 비교해도 손색없게 프로그램을 제작해 매일 방송하고 있다. 시정을 직접 시민에게 알리기 위한 ‘KEY TO THE CITY’라는 토크 프로그램은 시장이 직접 사회를 맡고 있다. 시 공보실에서 발행하는 ‘버뱅크 Today’는 지역의 각종 소식과 유용한 정보를 담아 내는 간행물이다.
버뱅크 시가 우리 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것은 1961년. 인천의 한 학생이 영어공부와 미국에 대해 알고 싶다고 버뱅크 시에 한 통의 편지를 보낸 것이 계기가 됐다. 버뱅크시는 우리 시에 책을 기증했고 두 도시는 자매결연을 맺기 이르렀다.
차기 시장으로 예정된 마샤 라모스 시의원은 “50년 넘게 쌓은 우정을 토대로 양 도시가 더욱더 긴밀한 교류를 하고 특히 학생교환방문 프로그램을 추진시켰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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