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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득순의 <청관(靑館)의 오후>

2003-07-28 2003년 8월호

 

 

1956년, 캔버스에 유채, 45.5×38cm, 개인소장


박득순(朴得錞/1910-1990)화백은 1938년 일본 태평양미술학교를 졸업하고 조선미전을 통해 작품을 발표했으며, 해방 후 국전(國展)을 주도한 대표적인 관학파 화가이다. 그러나 그는 원칙을 준수하고 대의를 존중하여 ‘예도(藝道)’라는 자신의 예술적 지론을 결코 굽히지 않았다. 당시 화단에서 온갖 비속의 진원지였던 국전에서 유독 그에게 만큼은 잡티가 튀지 않았던 이유도 이러한 그의 성품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1961년 서울미대 교수직을 그만두고 한국미술협회 초대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그 후 상명여대와 수도사대 교수를 지내며 김인승, 심형구 등과 함께 한국미술의 아카데미즘을 이끌었다. 특히 그는 인물화에 뛰어나 그의 인체는 형태적 리얼리티는 물론 모델의 심리적 측면까지 전신(傳神)하는 경지를 보여주어 인하대학교 교수를 지낸 고(故) 박영성 화백, 현 인천대학교 부총장 강광 교수 등 후학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아직도 중국인들이 거주하는 청관은 인천 미술인들에게도 매우 각별한 곳이다. 인천의 중고등학교 미술부 학생들은 방과 후나 오후에 늘 이곳을 찾아 청관의 이국적 풍물과 색채를 사생해왔던 것이다.
박 화백은 이국풍물이 깃든 이 거리의 졸음 가득 찬 한낮의 풍정을 편안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인물화에서 보이는 치밀함 대신에 그는 대상을 느낌으로 소화하면서 특유한 중국식 건물들의 특징을 포착해가고 있다. 전체적으로 노랑색을 기조로 화면의 분위기를 통일시켜가면서 부드러운 필선을 사용하여 유화의 재료적 특징과 캔버스의 재질감을 잘 살려낸 보기 편안한 풍경화이다.
이경모(미술평론가/인천대학교 미술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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