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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추의 항구
2003-04-09 2003년 4월호
황 추는 1924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해주 제2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그는 다시 해주미술학교에 들어가 서양화의 표현기법을 배운다. 6·25 사변을 맞아 인천에 정착한 황 추는 중등학교 자격시험을 거쳐 1953년부터 송도고등학교 미술교사로 재직하며 화가로서의 기반을 다진다.
1958년 그는 제 7회 국전에 입선한 후 연 15회 입선을 하며 미술계에 서서히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특히 1966∼67년에는 연 2회 특선을 하는 등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시내 명다방 등에서 활발하게 개인전을 여는 동시에 미협 경기지부 지부장, 인천문총 최고위원을 역임하는 등 화가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지키다가 1976년 돌연 태평양을 건넌다. 프랑스 파리에 가서 미술공부를 하기 위한 발판으로 일단 미국으로 간 것이다. 시카고 다이너스 화랑 등에서 초대전을 여는 등 미국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지만 지병인 위암이 악화되어 파리로 건너가지 못한 채 1994년 미국에서 타계한다.
위 그림은 현재 중구 항동에 있는 인천일보 사옥 로비에 걸려 있는 것을 촬영한 것이다. (촬영 김성환)
1958년 그는 제 7회 국전에 입선한 후 연 15회 입선을 하며 미술계에 서서히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특히 1966∼67년에는 연 2회 특선을 하는 등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시내 명다방 등에서 활발하게 개인전을 여는 동시에 미협 경기지부 지부장, 인천문총 최고위원을 역임하는 등 화가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지키다가 1976년 돌연 태평양을 건넌다. 프랑스 파리에 가서 미술공부를 하기 위한 발판으로 일단 미국으로 간 것이다. 시카고 다이너스 화랑 등에서 초대전을 여는 등 미국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지만 지병인 위암이 악화되어 파리로 건너가지 못한 채 1994년 미국에서 타계한다.
위 그림은 현재 중구 항동에 있는 인천일보 사옥 로비에 걸려 있는 것을 촬영한 것이다. (촬영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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