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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7MHz 인천의 목소리에 주파수를 맞춰라

2016-03-03 2016년 3월호



90.7MHz 인천의 목소리에 주파수를 맞춰라

세상 어디에도 인천 같은 도시는 없습니다. 세계의 하늘 아래 긴긴 역사와 미래가 공존하는 땅, 가깝고 아름다운 바다, 그리고 168개의 섬. 하지만 무엇보다 인천을 빛나게 하는 건, 그 안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사람들, 바로 당신입니다.
인천이라는 이름으로 너와 나 구분 없이 하나 되는, ‘우리는 인천’. 아름다운 사람들과 만나 인천의 어제와 오늘을 확인하고 내일을 그려 봅니다. 그 세 번째로 90.7MHz 주파수로 ‘인천의 목소리’를 전하는, 인천에서 단 하나뿐인 지상파 방송 경인방송 iFM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사진 김상덕 자유사진가




모두 힘들 때 ‘희망’ 이 된 방송
오전 7시, 인천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경인방송 스튜디오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제작진은 밤사이 지역 소식을 정리해 대본을 점검하고 뉴스를 업데이트하며 방송을 바삐 준비한다. ‘온 에어’ 가 켜진 후에도 실시간으로 뉴스를 정리해 진행자에게 전하느라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이들은 오전 8시 아침 출근길을 활기차게 여는 ‘뉴스 플러스’ 제작진이다. 90.7MHz 주파수로 ‘인천의 목소리’를 전하는, 인천에서 단 하나뿐인 지상파 방송 경인방송 iFM 사람들을 만났다.
경인방송은 올해로 개국 19년을 맞는다. 한때 폐업 위기도 겪었다. 이를 잘 극복하고 방송을 이어가고 있어, 그 의미가 남다르다. 경인방송은 1997년 10월 11일 인천방송 ‘iTV’라는 이름으로 처음 전파를 쏘아 올렸다. ‘프로그램 100% 자체 제작’이라는 무모하리만큼 혁신적인 도전은 박수받기에 충분했다. 박찬호 선수의 메이저리그 경기중계방송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거구의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던 박찬호의 당당한 모습은, 당시 IMF 외환 위기로 힘들어하던 모두에게 희망을 주었다. 인천방송은 2000년에 ‘경인방송’으로 이름을 바꾸고 기존 방송에서 시도하지 않던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순탄한 길을 걷는 듯했다. ‘경찰 24시’ ‘리얼 스토리 실제 상황’ ‘게임 스폐셜’ 등은 아직 잊히지 않은 이름들이다. 하지만 TV 방송의 앞날은 그리 밝지 않았다.




경인방송 최연필(45) 기술팀장은 경인방송 iTV 전파가 멈추던 마지막 순간까지 주조정실을 지켰다.


21번 채널이 꺼지던, 그날
2014년 마지막 날, 녹화 프로그램 ‘함께하는 세상’을 끝으로 경인방송은 TV 전파를 멈추었다. 오전 11시 12분경, 애국가 1절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21번 채널이 켜져 있던 브라운관에 허무하리만치 순식간에 어둠이 짙게 깔렸다.
“온 세상이 블랙아웃(Blackout)된 것 같았어요. 그때 주조정실에 있었습니다. 동료들은 방송을 살리기 위해 끝까지 투쟁을 벌였지만, 나는 마지막까지 전파를 내보내야 했어요. 투구를 쓰고 방패를 든 전경들과 한 달 넘도록 부딪치던 기억이 나네요. 까맣게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경인방송의 최연필(45) 기술팀장은 2000년 대학원을 졸업하고 첫 직장으로 경인방송에 입사했다. 꿈 많던 청년은 열심히 땀 흘려 언젠가 PD가, 기술 감독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일련의 시련을 겪으면서 꿈은 현실 앞에서 휘청거렸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하나둘 곁을 떠났다. 실업급여를 받으며 방송국에 끝까지 남은 본인 같은 사람이나, OBS 경인TV로 건너가 계속 방송을 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운이 좋은 거라고 했다. 많은 이들이 고통 받던 때의 기억을 꺼내기란 결코 쉽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희망은 있다.
“경인방송이 지역을 대표하는 방송으로 인천 시민에게 사랑받고 인정받으면 좋겠어요. 인천에서 산 지 벌써 16년이 되었어요. 아이들 낳고 키우면서 인천 사람 다 되었죠. 인천을 위해 진정성 있는 목소리를 내는 방송을 하고 싶어요.”


‘인천의 정신(Spirit of Incheon), 인천의 목소리(Voice of Incheon)’를 강조하는 경인방송 권혁철(54) 대표



이영철(52) 보도국장이 시작한 해양정보뉴스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때 크게 빛을 발했다.


‘인천 정신, 인천 목소리’에서 답을 찾다
경인방송은 2006년 3월 1일 라디오로 방송을 재개한다. 각고의 노력 끝에 내린 결론은 반드시 ‘인천’이어야 한다는 것. ‘인천의 방송’을 원했던 인천 시민은 서울 지향적인 방송을 추구했던 TV 방송에 결국 등을 돌렸다. 뼈아픈 교훈을 얻은 경인방송 사람들은 지역 사회에 공헌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해 시민의 성원에 보답했다. 실생활에 필요한 뉴스와 작은 것이라도 위로가 되는 따듯한 이야기를 전하려고 노력했다.
경인방송 권혁철(54) 대표는 2006년 ‘굿모닝인천’의 진행을 맡으며 경인방송과 인연을 맺었다. 매일 7시, 아침을 깨우던 ‘굿모닝인천’은 인천 최초의 지역 시사 프로그램이었다. 신문기자로 활동해 온 권 대표는 소소한 지역 소식까지 모든 뉴스를 챙기고, 지역에서 화제가 되는 인물들을 일일이 찾아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1년 후에 경인방송의 대표가 되었다.
“나는 인천 사람이니까, 인천을 중심으로 방송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했습니다. 인천 시민을 근간으로 지역사회에 뿌리내리기 위해선 ‘인천의 정신(Spirit of Incheon)과 인천의 목소리(Voice of Incheon)’를 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방송 세계이자, 우리가 사는 길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서울까지 전파가 도달하는 데 왜 지역에 갇혀야 하느냐며 반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신념은 옳았다. 언제부터인가 지역사회가 경인방송을 인천 시민의 방송으로 품어 안기 시작했다. 그렇게 쌓인 신뢰를 바탕으로 2011년에는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인천시 지정 재난 주관 방송사가 됐다. 2014년부터 2년 연속 한국 PD 연합회에서 시상하는 ‘이달의 PD상’을 받기도 했다.




진정성이 담긴 원기범 아나운서의 방송은 오늘만큼이나 내일을 기대하게 한다.


진심이 쏘아 올린 따듯한 전파 
경인방송 해양정보센터에서는 매일 해양의 실시간 상황을 전파로 쏘아 올린다. 바다에 기대어 사는 인천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방송이다.
“2008년에 경인방송에 입사했을 때만해도 해양 정보를 따로 전하지 않았어요. 인천은 바다와 항만의 도시인데 시민과 심리적인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곧바로 뱃사람들에게 거시적인 내비게이션 역할을 할 해양정보센터를 만들었습니다.”
이영철(52) 보도국장이 시작한 해양정보뉴스는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때 크게 빛을 발했다. 내 할 일을 했구나, 가슴이 뿌듯했다.
경인방송은 지역이 필요한 뉴스를 깊이 있게 조명하면서도 따듯함을 놓지 않는다. 기존 시사 프로그램이 딱딱한 정보 전달 위주로 흘렀다면 원기범 아나운서의 방송은 진솔하고 인간적이다. 그는 ‘상쾌한 아침 원기범입니다’를 7년째 진행한 데 이어 현재 ‘뉴스 플러스’를 맡고 있는 경인방송의 대표 아나운서다. 그는 인천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를 끄집어내 당사자와 이야기하면서도 날이 서 있지 않다. 부드럽고 편안한 목소리로 청취자들이 궁금해 하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낸다. 그 특별한 울림이 오늘만큼이나 내일의 방송을 기대하게 만든다.


이날 ‘행복한 10시 이용입니다’는 선배 가수 이용(58)과 밴드 ‘동네’의 멋진 화음을 들려주었다.


‘백가마’ 식구들. 왼쪽부터 DJ와 친구 같은 동갑내기 청취자 강영주(63) 씨와 가수 백영규 그리고 김종희(55) 씨


인천 사람의 목소리로 듣는 인천
원기범 아나운서는 뼛속까지 인천인이다. 인천에서 나고 자라 인천 여자 만나 결혼해 아이 키우며 살고 있다고, 늘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로 청취자들에게 인천 사람으로서 자긍심을 키운다는 사실을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한다.
“‘인천 가치 재창조’라는 말에 100% 공감해요. 이를 위해선 먼저 우리부터 인천인으로서 가져야 할 자긍심을 높여야 해요. 인천 유일의 지상파 방송 아나운서로서 어떻게 하면 더 멀리 인천의 이야기를 전할지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행복한 10시 이용입니다’의 DJ 가수 이용(58)은 어린 시절을 보낸 인천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자유공원 아래 송학동에 살았어요. 지금도 고향집 사진을 보며 추억하곤 해요. 언젠가는 인천에 대한 노래를 만들고 싶어요.” 방송을 진행한 지 1년 6개월, 매일 오전 10시를 손꼽아 기다리는 청취자들이 많다. 생방송 내내 인천 곳곳에서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사연들이 그 마음을 대변한다.
오후 4시면 ‘백영규의 가고 싶은 마을’이 울려 펴진다. 2007년 처음 방송을 시작해 팬들에게 ‘백가마’라는 애칭으로 통하며 지금껏 사랑받고 있다. 정감 있는 동네 오빠처럼 청취자들을 사로잡는 DJ 가수 백영규(63) 덕분이다. 인천 토박이인 그는 경인방송의 권 대표로부터 라디오 진행 제의를 직접 받았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90.7MHz로 주파수를 맞췄어요. 순간 ‘촌장님’의 편안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어요. 반했지요. 라디오를 들은 것도 음악을 신청한 것도 처음이었어요. 신청곡을 들으면서 어찌나 행복하던지.” 이후 4년 내내 ‘백가마’를 들었다는 강영주(63) 씨가 소녀처럼 얼굴을 붉힌다.
“청취자들을 만나면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친구처럼 편해요. 그 인연 또한 길게 가지요. 이것이 바로 ‘라디오의 힘’입니다.”
한번 라디오에 고정된 채널은 좀처럼 돌아가지 않는다. 청취율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일단 채널을 고정하면 그 믿음은 몇 년이고 지속된다. 90.7MHz이 퍼트리는 ‘인천의 목소리’가 청취자의 귓가를 지나 마음 깊숙한 곳까지 다다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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