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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동장’에서 뜨겁게 외치는 우리는 인천
‘그라운동장’에서 뜨겁게 외치는 우리는 인천
세상 어디에도 인천 같은 도시는 없습니다. 세계의 하늘 아래 긴긴 역사와 미래가 공존하는 땅, 가깝고 아름다운 바다, 그리고 168개의 섬. 하지만 무엇보다 인천을 빛나게 하는 건, 그 안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사람들, 바로 당신입니다. 인천이라는 이름으로 너와 나 구분 없이 하나 되는,
‘우리는 인천’. 아름다운 사람들과 만나 인천의 어제와 오늘을 확인하고 내일을 그려 봅니다. 그 네 번째로 ‘인천’이란 이름을 걸고 내일을 향해 달리는 인천유나이티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사진 김상덕 자유사진가, 인천유나이티드FC
대한민국 축구의 서막을 열다
제물포 부두에 공이 솟아오르는 순간, 한국 축구의 역사가 시작됐다. 1882년, 제물포 항에 영국 군함 ‘플라잉 피시호’가 닻을 내렸다. 파란 눈의 승무원들은 영국인답게 먼 이국땅에서도 축구공을 놓지 않았다. 신기한 듯 바라보던 제물포 사람들의 발끝에도 자연스럽게 공이 놓였다. 1901년 강화도에 근대 축구팀이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영국 성공회에서 발행한 잡지 <모닝컴> 1901년 3월 21일 자에는, 인천에 머물렀던 시드니 J 파커의 글을 인용해 “강화 학당 축구팀이 G.A 브라이들 목사에게 수년간 훈련을 받았다. 선수들의 경기력이 좋다. 좀 더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는다면 잉글랜드 리그 진출도 가능하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한국의 프리미어 리그 진출 가능성이 이미 110여 년 전에 거론된 셈이다.
“인천에서 대한민국 축구가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인천시민조차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 스포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천만의 가치입니다.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지난 2월 시민 프로 축구단 인천유나이티드의 수장이 된 박영복(69) 대표는 인천이 대한민국 축구의 발상지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 역사적 긍지를 바탕으로 시민이 하나 되길 바란다고 포부를 밝혔다.
“인천에 살고 인천을 사랑하면서도 인천을 마음껏 외쳐본 적이 없을 겁니다. 인천시민이 한데 모여 같은 목소리를 낼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그라운동장’에서 한마음으로 ‘인천’을 외치십시오. 인천에 대한 사랑으로 가슴이 뜨거워질 겁니다.”
지난달 12일, 올 시즌 K리그 클래식 대장정의 막이 올랐다. 올해 인천유나이티드 캐치프레이즈는 ‘우리는 인천’. 300만 인천시민 모두 한마음으로 ‘우리는 인천’을 뜨겁게 외치자.
인천유나이티드 박영복 대표는 인천이 대한민국 축구의 발상지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역사적 긍지를 가지고 300만 인천시민이 ‘그라운동장’에서 ‘우리는 인천’을 외치길 바란다.
그라운동장, 부활하다
인천 유나이티드 홈구장인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은 2012년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경기장과 관중석 사이가 불과 1미터로, 우리나라 경기장 가운데 가장 가깝다. 선수들의 땀 한 방울, 거친 숨소리까지 살갗에 닿을 듯 생생하게 전해진다.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이 있는 자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스포츠 경기장 종합 단지인 숭의종합 경기장이 있었다. 1936년 역사를 시작한 이곳은 숭의운동장, 그라운동장(그라운드+운동장)으로 불리며 오랜 세월 인천시민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 뜻을 기리고자 인천유나이티드는 올 시즌 홈 개막전 캐치프레이즈를 ‘그라운동장, 부활하다’로 정하고 과거의 영광을 이어갈 것을 다짐했다.
인천유나이티드는 시와 시민을 중심으로 창단한 시민구단으로서 그 의미를 더한다. K리그 클래식 12개 구단 가운데 시민이 주주로 참여하는 시민구단은 단 네 팀뿐이다. 인천 유나이티드는 2003년에 창단, 일본 J리그 감바 오사카 팀과 친선경기를 펼치며 시민 앞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홍보를 맡고 있는 이상민(27) 씨는 그날 선수들의 움직임까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는 구단 창단 때 서포터스로 처음 인연을 맺어 7년간 유나이티드 기자 활동을 하다, 최근 구단의 일원이 되기에 이르렀다.
“첫 경기를 보고 바로 빠져버렸어요. 그 후로 계속 경기장을 찾고, 기자 활동을 하고 선수들을 가까이 접하면서 팀을 더 사랑하게 되었지요. 인천유나이티드가 왜 좋냐고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어요. 경기장으로 오세요. 사랑하는 마음이 절로 생길 겁니다. 내가 장담해요.”
13년 전, 한국에 프로 축구가 있는줄도 몰랐던 중학생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축구 경기장을 찾았다. 그날의 경기는 소년의 앞날을 바꾸어버렸고, 지금껏 유나이티드 하나만 보고 달려오게 했다. 인천에 대한 무조건적인 끌림과 사랑, 다른 이유는 없었다.
인천축구전용경기장 그라운드(잔디)를 관리하는 윤해진(55), 이병두(60), 권영탁(29), 이정원(39) 사원(왼쪽부터).
인천유나이티드FC의 숨은 주역들이다. 그들로 인해 인천축구전용경기장 그라운드는 국내 최고로 평가 받으며 지난 2014년 ‘그린 스타디움’ 상을 받기도 했다.
팬에서 동료로. 13년 전 팬과 팀원으로 만나, 지금은 한식구가 된 이승재 의무 트레이너와 이상민 사원
불가능을 가능으로, 꿈을 현실로
인천유나이티드는 독일의 축구 명장 베르너 로란트를 영입해 2004 시즌부터 K리그에 참가했다. 하지만 성적은 전기리그 13위, 후기리그 4위로 생각보다 저조했다. 역사상 잊지 못할 시즌은 그 이듬해인 2005년 K리그다. 감독 대행을 맡은 장외룡 수석 코치는 준우승을 거두며 리그에 ‘시민구단 돌풍’을 일으켰다. 그가 첫 목표로 챔피언을 내세웠을 때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선수들은 변변한 전용 구장도 없이 전국을 떠돌며 훈련하고 자금이 부족해 선수를 쓰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들이 거둔 건 우승보다 값진 준우승, 믿음으로 일궈낸 기적이었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영화 ‘비상’을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그 안에는 ‘팀’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뛰고 때로 좌절하고 다시 승리를 향해 달려가는 인천유나이티드 선수들의 피와 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승재(38) 의무 트레이너는 창단부터 지금까지 구단의 역사와 함께했다. 그는 장외룡 감독을 스승이자 버팀목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장외룡 감독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선수를 관리하고 분석하는 법을 알려주시고 그 중요성을 강조하셨지요. 믿어주시는 만큼 한순간도 노력을 게을리할 수 없었어요.” 현재 중국 축구팀 충칭 리판을 지휘하고 있는 장 감독은 평소 의무 트레이너와 코치의 역할을 강조해왔다. 그는 의무 트레이너가 ‘NO’라고 말한 선수는 절대 쓰지 않는 철칙을 갖고 경기를 운영했다.
그 숨은 노력으로 인천유나이티드는 지난 3년간 부상을 당한 선수가 없었다. 지난 시즌 선수 33명 모두 언제든 출전할 수 있는 컨디션을 유지했다. 팀 전력에 큰 힘이 됐다. 이는 선수단에 대한 애정이 있기에 가능했다. “인천유나이티드 마크만 봐도 마음이 뭉클해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가슴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무언가가 있어요. 그동안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도 있었고 유혹도 있었지만,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내 인생의 팀은 오로지 인천유나이티드뿐이에요.”
김도훈(46) 감독은 현역 시절 경험한 우승의 기쁨을 후배들도 누리길 바란다. 그는 ‘우리는 인천을 대표해 뛴다. 더 힘차게 달리기 위해선, 인천시민의 사랑과 지지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인천’ 결코 멈추지 않는다
지난달 20일 인천의 2016 K리그 홈 개막 경기가 열린 인천축구전용경기장. 2만여 석에 이르는 스타디움이 푸른 물결로 넘실거렸다. 인천의 이름을 걸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선수들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하늘 높이 울려 퍼졌다. 팀의 12번째 선수인 서포터스도 깃발을 흔들고 손나팔을 불며 전의를 불태웠다. 오후 2시, 드디어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도원동 일대가 순식간에 뜨겁게 달아올랐다. 경기 초반 인천은 상대 팀의 적극적인 공격에 굴하지 않고 측면을 공략하며 역습의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전반 21분, 프리킥 기회를 얻은 포항이 선제골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지만 인천은 흔들리지 않았다. 전열을 가다듬고 일진일퇴를 펼치며 전반전을 끝냈다. 후반 들어 인천은 전진 패스를 하며 골을 노렸다. 하지만 후반 23분 혼전 끝에 추가 골을 내주고 말았다. 만회골을 넣지 못한 채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고, 인천은 좌절의 순간과 맞닥뜨렸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은 마지막 일분일초까지 승리의 끈을 놓지 않고 분투했다.
홈 개막 경기가 열리기 며칠 전, 김도훈(46) 감독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우리는 인천을 대표해서 뜁니다. 물론 돈을 많이 쓰는 팀도 있고, 우리보다 강한 팀도 있습니다. 하지만 팬들만 열성적으로 응원해 준다면, 우리는 절대로 상대에게 기죽지 않습니다.” 그는 지원이 부족한 것보다 텅 빈 운동장을 보는 게 더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언젠가 인천유나이티드가 우승컵을 높이 들고 팬들과 환호하는 날이 오리라, 굳게 믿는다고 했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승리하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하지만 선수들의 의욕이 계속 높아지고 있어요. 앞으로 점점 더 좋아지리라 믿습니다.” 홈 개막전의 쓰라린 패배 후에도 그는 선수들에 대한 믿음을 강하게 내비치며 각오를 새롭게 했다.
경기가 끝나자 관중들이 썰물처럼 운동장을 빠져나갔다. 목청 높여 인천을 외치던 팬 한 사람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오늘은 우리가 졌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반드시 이길 겁니다. 인천시민으로서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볼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2016 K리그 클래식의 대장정이 시작됐다. 300만 인천시민 모두 ‘그라운동장’에서 뜨겁게 외치자. ‘우리는 인천’! 이라고.
공은 둥글다. 하지만 그 공은 대기업의 지원을 받는 부자 구단 쪽으로 굴러가게 돼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법칙을 뒤집을 수 있다. 2005년 가진 것 없는 시민구단인 인천이 준우승까지 오르리라고 그 누가 예상했던가. 2016 K리그 클래식의 대장정은 오는 11월 6일까지 이어진다. 해볼 만하다. 이길 수 있다. 4만 7천여 명 시민주주, 300만 인천시민이 한마음으로 응원하는 ‘우리는 인천’ ‘우리는 인천유나이티드’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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