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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여 년 창고에서 꽃 핀, 오늘의 ‘예술’
110여 년 창고에서 꽃 핀, 오늘의 ‘예술’
세상 어디에도 인천 같은 도시는 없습니다. 세계의 하늘 아래 긴긴 역사와 미래가 공존하는 땅, 가깝고 아름다운 바다, 그리고 168개의 섬. 하지만 무엇보다 인천을 빛나게 하는 건 그 안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사람, 바로 당신입니다. 그 아름다운 사람들과 만나 인천의 어제와 오늘을 확인하고 내일을 그려 봅니다. 이번 호에는 110여 년 묵은 창고에서 오늘의 예술을 꽃피우는 인천아트플랫폼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사진 류창현 자유사진가
인천아트플랫폼 광장을 꾸밀 조형물을 작업 중인 임상현 작가.
도시, 예술로 다시 태어나다
1883년 1월, 제물포항이 열리면서 세상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인천의 바닷길을 따라 새로운 문물이 쏟아지고 파란 눈의 사람이 몰려들었다. 철길이 놓이고 항만이 세워지고 각국 영사관과 근대식 은행, 극장, 공원 등이 생겨났다. 인천 최초는 곧 대한민국 최초가 됐다.
타의에 의한 개항엔 아픔도 뒤따랐다. 우리의 피와 땀이 서린 미곡이 일제가 세운 바닷가 창고에 쌓여 그들이 놓은 길을 따라 바다 건너로 속절없이 흘러들어 갔다. ‘일본우선주식회사’는 개항기 때 인천의 해운업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중구 해안동 개항장 일대에는 일본우선주식회사를 비롯한 근대건축물과 인천항 하역 물품을 보관하던 옛 창고 건물, 1930~40년대에 지은 인쇄소와 구멍가게, 작업실 등이 몰려 있었다. 쇠락한 도시의 뒷골목이 화려한 문화예술의 옷을 입고 다시 태어난 건, 지난 2009년이다.
복합문화예술 공간 인천아트플랫폼이 문을 열면서 이 일대에는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크고 작은 전시장과 문화 공간이 들어서고 시들했던 거리에 생기가 돌았다. 인천아트플랫폼의 최병국(60) 관장은 그때를 어제처럼 생생히 기억한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그는, 학창시절에 붓 하나 들고 이 일대로 와 캔버스를 가득 메우곤 했다. “예술이 죽어가던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잊힌 채 먼지 자욱이 쌓여 가던 뒷골목이 문화예술의 도시로 탈바꿈하면서 전국에서 예술가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들은 창작열을 불태워 후미진 뒷골목에 빛을 비추고 다시 살아 숨 쉬게 했습니다.”
인천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광장에 직접 새겨 놓은 ‘하트’ 그림 앞에서, 최병국 관장
인천에서 꽃 핀 예술, 세계에 만발하길
평생 예술의 길을 걸어온 최 관장은, 그만큼 젊은 작가들을 향한 마음이 각별하다. 그는 후배들이 현실에 무너지지 않고 예술가로 서 자부심을 안고 살아가는 버팀목이 되고 싶다. “예술가의 신념 하나로 버티는 시간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압니다. 저 역시 그저 그림이 좋아서 이 길을 선택했지만, 사실 지금까지도 버티고 있는 거나 다름없으니까요. 인천아트플랫폼이 젊은 작가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예술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창작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그는 또 인천아트플랫폼의 주요 역할은 인천 작가들이 세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문화는 세계를 지향해야 합니다. 전쟁이죠. 작가들은 아름다운 경쟁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고 더 강하게 일어서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인천아트플랫폼은 복합문화공간으로서 미술, 음악, 공연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여 서로의 작품 세계를 심화시켜 줍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인천에서도 세계적인 작가가 나올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오병석(43) 과장은 인천아트플랫폼이 개관을 준비하던 시절부터 함께했다. 무엇보다 비전과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게 먼저였다. “인천아트플랫폼의 존재 의미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온 작가들이 인천에서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리는 큰 그림입니다.”
인천아트플랫폼의 입주 작가는 올해로 7기를 맞았다. 현재 200명이 한 울타리에 있다. “앞으로 10년이 흐르고, 20년이 흐르고 수 천 명의 예술가들이 인천을 거쳐 가겠지요? 그들이 결국 인천 지역의 문화예술을 한 단계 높이고 더욱 풍요롭게 할 겁니다.” 오 씨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인천아트플랫폼은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딛고 한 송이 예술의 꽃을 피웠다. 그 꽃이 깊고 진한 향기를 퍼트리며 전 세계에서 만발할 그날을 기다린다.
인천아트플랫폼 입주 작가인 손승범 작가(좌)와 윤대희 작가(우)
작가들의 만남은 더 깊고 풍부한 예술을 꽃피운다.
작가와 작가의 만남, 예술의 깊이 더하다
손승범(32) 씨는 올해 인천아트플랫폼에 입주한 인천의 작가다. 그는 이 시대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을 화폭에 담고 있다. 그의 작품 철학은, 멈추어진 시간을 넘어 새로운 변화 앞에 선 중구라는 공간과도 닮았다. 살아온 시간만큼 지역에 대한 애정이 크지만, 그 틀 안에 자신을 가두지는 않는다. “이 안에서 다른 지역에서 온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과 교류할 수 있어서 기뻐요. 평소 존경하던 작가분들이 곁에 있는 건 행운입니다. 늘 새로운 작업에 대한 갈망이 있었죠. 이곳에서 열린 마음으로 작가들과 소통하며 예술적인 깊이를 더하고 싶어요.”
그는 입주 기간이 끝나더라도 근처에 작업실을 구할 생각이다. 실제로 그동안 인천아트플랫폼에 머물렀던 작가들은 이 일대를 중심으로 작업실을 구하고 문화공간을 열며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윤대희 작가(32)는 대학에 다니면서 인천과 연을 맺었다. 그 역시 작가들과 함께하며 자신을 성장시키고 작업 경험을 풍성하게 하고 싶다. “항상 혼자 작업을 하다 보면 나만의 세계에 갇힐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비슷한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많아 함께 깊은 대화를 나누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어 좋습니다.” 그는 모든 작가들이 원하는 환경 안에 들어온 만큼, 끊임없이 노력하겠다는 겸손의 말도 잊지 않았다.
인천아트플랫폼 개관 멤버인 오병석 과장(좌)과 갓 입사한 고승용 PD(우)
인천에서 꽃 핀 예술을 세상에 향기롭게 퍼트리는 주역들
그림으로 나이를 뛰어넘어 마음을 나누는,
홍주연 양과 장진 작가.
‘작가와 시민’이 함께 누리는, 진짜 예술
장진(45) 작가는 인천아트플랫폼 입주 작가 1기 출신이다. 후배 입주 작가였던 아내를 만나 결혼도 했다. 그는 지금껏 인천과 인연의 끈을 놓은 적이 없다. 10대 때 인천으로 와 학창시절을 보내고 강화에 작업실을 뒀다. 대구대학의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인천 영종도에 머물고 있다. 인천의 예술가로서 그는 인천아트플랫폼이 자랑스럽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전국 도시의 갤러리에 작품을 걸었지만, 이만한 곳이 없다. 지난달 그는 B동 전시장에서 개인전 '心心한 풍경'을 열고, 달을 소재로 한 ‘달빛프리즘(Moonlight Prism)’ 연작 등 60여 점을 선보였다.
“인천아트플랫폼이 생기면서 인천으로 전국 작가들의 관심이 모이고 문화적으로도 한 단계 성장했습니다. 작가라면 누구나 훌륭한 전시장에 자신의 작품을 걸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전국 어디에도 이만한 복합문화예술 공간은 없습니다. 이곳에 제 작품을 걸 수 있어서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패션디자이너인 김진아 씨는 아이의 손을 잡고 서울에서 먼 발걸음을 했다. “달 그림이 아주 멋져요. 캄캄한 밤하늘에 홀로 빛나는 달이 신비하고 아름다워요.” 열한 살짜리 아이의 눈에도 전시관에 걸린 작품은 큰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외지인의 시선에도 아트플랫폼은 예술가들의 훌륭한 아지트다.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중심지라 일컫는 서울도, 이처럼 예술가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한 예는 없지 않나 싶어요. 인천아트플랫폼은 옛 건축물을 아름답게 되살린 구조도 돋보이지만, 작가들이 창작에 전념하도록 하는 편리하고 현대적인 시설이 인상적이에요.” “그림을 봤으니, 우리는 이제 짜장면 먹으러 갈 거예요.”
모녀가 마음을 꽉 채우고 환한 얼굴로 문을 나선다. 개항장, 차이나타운, 월미도…. 이제 ‘인천’이라는 거대한 작품을 보러 갈 차례다.
시간을 넘어 예술을 창조하는, 인천아트플랫폼
아프지만 기억해야 할 역사가 남긴 근대건축물이 오늘날 복합문화예술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시간의 다양성이 담긴 건축물은 그 자체가 예술작품이다. 여기에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이 생산해낸 문화예술 콘텐츠로 인천아트플랫폼이 풍요롭게 채워지면서 전국에서도 찾는 지역의 명소로 거듭났다. 그리고 이제, 인천아트플랫폼은 ‘작가와 시민’이 모두 필요로 하는 열린 공간으로 거듭난다. 광장에 포토존과 예술 조형물을 설치하고, 밤마다 영상아트쇼를 열고, 시민 생활문화센터 칠통마당을 여는 등 변화의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작가와 시민이 함께 누리는 ‘인천의 진정한 복합문화예술 공간’으로 꽃필 인천아트플랫폼의 새 날이 기다려진다.
12월 31일까지 매주 금·토·일 오후 8시 30분,
인천아트플랫폼에 화려한 영상 아트쇼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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