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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연 머무는, 육지와 섬의 정거장
수많은 사연 머무는, 육지와 섬의 정거장
세상 어디에도 인천 같은 도시는 없습니다. 세계의 하늘 아래 긴긴 역사와 미래가 공존하는 땅, 가깝고도 아름다운 바다, 그리고 168개의 섬. 하지만 무엇보다 인천을 빛나게 하는 건 그 안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사람, 바로 당신입니다. 그 아름다운 사람들과 만나 인천의 어제와 오늘을 확인하고 내일을 그려 봅니다. 이번 호에는 육지에서 섬으로, 섬에서 육지로, 우리네 수많은 사연이 스치듯 머물다 가는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을 찾았습니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사진 류창현 자유사진가
이른 아침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 백령도로 가는 쾌속선이 출항을 기다리고 있다. 월요일인데도 터미널 안은 활기가 넘친다. 육지에서 주말을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섬 주민들과 부대로 복귀하는 군인들로 북적북적하다. 이윽고 스피커에서 승선을 안내하는 방송이 울려 퍼지고 승객들이 개찰구 앞으로 길게 줄을 선다. 사이사이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는 이들도 있고, 양손 가득 짐을 들고 허둥대며 달려오는 사람도 보인다. 섬으로 향하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표정은 한결같이 밝고 환하다. 뱃길로 224㎞를 달려야 다다르는 서해의 종착역. 드디어 출항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가 울려 퍼지고, 저마다의 사연을 실은 배가 푸른 물결을 가로지르며 나아간다.
1990년 월미도 유람선이 처음 출항하던 해 인천 바다와 인연을 맺은, 고려고속훼리의 임석구 이사
일상에서 바다 건너, 섬으로
우리에게는 연안부두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 땅 끝이자 바다의 시작점인 이곳에 서면 누구나 여행자처럼 가슴이 설렌다. 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서쪽 바다 가까운 섬부터 멀리 서해 5도까지 닿을 수 있다.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은 1980년대, 1990년대 초반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연안부두에서 인천 앞바다를 건너 섬으로 가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여객터미널 내 선사 4곳 가운데 하나인 고려고속훼리의 임석구(51) 이사가 당시 일을 떠올린다. “휴가철이면 사람들이 배를 타기 위해 200, 300미터씩 길게 줄을 서곤 했어요. 터미널 안에 텐트를 치고 기다릴 정도였으니까, 대단했죠. 지금은 인천항에서 가는 항로가 백령도, 연평도, 덕적도, 이작도 네 항로뿐이지만, 당시는 영종도, 영흥도, 무의도까지 인천 전 항로로 배가 다녔어요.”
인천 앞바다는 지금도 힘찬 뱃고동 소리와 함께, 늘 깨어 있다.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을 찾는 승객은 연 106만 명에 이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의 삶과 꿈을 실은 배가 닻을 올리고 미지의 세계로 항해한다.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만난 덕적도 이웃사촌. 김종심 할머니와 김영희 씨, 그의 딸(오른쪽)
버스 타듯 배를 타는 사람들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은 여행자에겐 두근두근 설렘을 안기지만, 섬사람들에겐 육지인들의 버스터미널처럼 일상생활 속의 정거장 역할을 한다. “병원에서 약 지어다 먹어야 해서, 두세 달에 한 번은 배타고 왔다 갔다 해. 벌써 7, 8년 됐어.” 덕적도에 사는 김종심(86) 할머니는 신장이 좋지 않아 육지에 있는 종합병원에 정기적으로 다닌다. 앓고 있는 병 때문에 불편하긴 해도, 섬을 떠날 생각은 없다. “문갑도에서 태어났어. 스물한 살에 덕적도로 시집와서 인천서 나와 살다가 다시 섬으로 들어간 지 20여 년 됐지. 우리 남편은 여든아홉이야. 그저 두 늙은이 의지하면서 사는 게 행복이야.” 오후 2시 30분, 번쩍이는 전광판 불빛이 덕적도행 배의 출항 시간을 알린다. 시곗바늘은 아직 12시를 가리키는 데, 할머니는 벌써 텅 빈 대합실 한편에 자리를 잡고 집으로 돌아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섬과 육지 사이를 자주 오가다 보니, 연안여객터미널의 배를 ‘우리 배’라고 생각하는 주민도 많다. “예전에는 ‘나 좀 늦으니, 배 좀 잡아 달라. 내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라’고 하는 섬 주민들도 있었어요. 몇 분 정도 늦으면, 다른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기다리기도 했지요.” 임 이사가 옛 기억을 떠올린다. 쾌속선이 다니기 전, 뭍에서 서해 끄트머리에 있는 백령도까지 가려면 꼬박 열두 시간을 내달려야 했다. 배를 놓치기라도 하는 날엔 이틀 밤낮을 기다려야 하니 서로 눈감아 주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이제 섬에 가려면 10분 전에는 꼭 배에 타야 해요. 승선 표에 개인 정보도 기록해야 하고, 신분증도 표를 살 때와 배에 탈 때 두 번 확인합니다. 승선 절차가 매우 엄격해졌어요.”
선박의 ‘안전운항’을 책임지는 운항관리센터 정한구 센터장(왼쪽),
‘안전’, ‘완전’하게 지킨다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여객의 ‘안전’이다. 전 국민의 가슴을 무너지게 한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에는 더더욱 그렇다. 선박안전기술공단 인천지부 운항관리센터는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을 오가는 여객선이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정한구(51) 센터장은 원칙에 입각해 철저하게 ‘안전’을 지킨다.
“매일매일 일기도를 분석하고 출항지의 기상을 확인한 후 출항 여부를 결정합니다. 또 출항하기 전 선박의 안전을 점검하고, 배가 항구를 떠난 후에도 선박과 실시간으로 교신하면서 안전운항을 점검합니다. 사명감과 긍지가 없으면 안 되는 일이지요.” 운항관리센터 사람들은 배가 뜨고 도착하기까지 한시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이 순간에도 사무실 선박 모니터링 시스템(VMS) 화면에는 인천 전 항로의 현황이 실시간으로 나타났다. “저희를 믿고 배를 타세요. 사고를 예방하고 선박이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한편 생활 수단으로 배를 이용하는 섬 주민들은 승선 절차를 조금 효율적으로 개선했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친다. “주민인 거 뻔히 알면서도 배표와 신분증을 거듭 확인하니 불편해요. 일인당 배에 가지고 탈 수 있는 짐도 15킬로그램으로 한정돼 있어요. 다 우리 먹고 입고 쓰고 할 생필품인데….” 김영희(36) 씨는 어제 두 딸과 함께 도심에 왔다 덕적도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래도 볼일이 있으면 언제든 하루 만에 육지와 섬을 오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섬 주민과 가족 같은 배민자 씨
승객들이 편하게 육지와 섬을 오갈 수 있도록 돕는 인천항시설관리센터 사람들
가족처럼 오가는 마음과 마음
“딸내미, 딸내미.” 매표소에서 일하는 배민자(32) 씨를 섬 주민들은 이렇게 부른다. 한참 피어나던 스무 살 시절부터 보았으니 그녀를 딸이나 동생으로 여길 만하다. “사실 저는 워낙 많은 분들을 뵈어서 못 알아볼 때도 있는데, 먼저 아는체해 주세요. 그럴 땐, 참 감사하고 보람돼요.”
오랜 세월 함께한 여객터미널 사람들과 섬 주민, 여객들은 한식구나 다름없다. 워낙 편하게 여기다 보니 배를 타거나 섬 안에서 불편했던 일이 있어도 여객터미널에 털어놓는다. “우리가 맡아서 관리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다 들어 드려요. 하소연할 곳이 필요한 거잖아요. 언짢은 마음 풀고, 다시 인천 섬을 찾을 수 있도록 기꺼이 들어드려요.” 인천항시설관리센터 이주엽(47) 연안터미널 팀장은 사람들이 섬에서 즐겁게 머물다 기분 좋게 터미널을 나설 때 가장 기쁘고 뿌듯하다고 말한다.
개찰 업무를 맡고 있는 이동근(58) 씨는 승객 중에서 교통약자들이 가장 마음에 쓰인다. “다리가 불편한 분들이 특히 위험해요. 터미널에서 선착장까지 가는 길에 경사가 많이 졌거든요. 그런 분들이 있으면 직원들이 네 일 내 일 할 것 없이 휠체어에 태워서 배까지 안내해 드려요. 노약자나 임신부는 줄 서는 불편함이 없도록 미리 개찰해 드리고요.”
30여 년, 늘 첫 마음으로 바다를 달려온 김성칠 선장
노장, 늘 처음처럼 키를 잡다
하늘빛이 불그름해질 무렵, 땅 끝 부두에 서서 바다를 바라본다. 바람 끝에 진한 짠내가 묻어난다. 뱃고동 소리가 바다 건너 귓가에 울려 퍼지며 오늘 마지막 배의 입항을 알린다. 오늘 아침 백령도로 떠났던 코리아킹호가 아홉 시간여 만에 연안부두에 닻을 내렸다.
“아, 힘들다. 빨리 쉬고 싶어. 내 이야기 뭐 할 거 있다고…. 난 그저 안전하게 운항하는 걸로 만족해.” 김성칠(57) 선장은 30여 년 전에 처음 키를 잡은 이래 지금껏 바다와 동고동락해 왔다. 백령 항로를 오간 세월만 20여 년이다. 같은 항로를 매일 같이 오가는 것이 답답하고 외롭지 않으냐 물으니, 그가 긴장하느라 그럴 틈이 있겠냐며 되받아 묻는다. 인천 앞바다는 어장이 발달해 있고 오가는 배들이 많아, 늘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인천에서 백령도까지는 뱃길로 네 시간이야. 서울에서 대전까지 거리, 왕복이면 부산까지도 가는 거리지. 어장이 있으면 피하고 배가 보이면 또 피하고…. 매 순간 집중해야 해.” 노장은 긴 세월 비바람과 안개를 헤치며 신중하고 노련하게 바다를 가로질러 왔다. “사람들이 배를 믿고 타는 건 당연한 거야. 선장이 그 배를 안전하게 운항해야 하는 건 두말할 것도 없고.”
이제 그만둘 때도 되었다고 하지만, 머리 희끗한 이 바다 사나이는 검게 그을린 두터운 손으로 30여 년 잡아온 키를 쉽게 놓지 못할 것이다.
육지와 섬을 잇는 정거장,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 이 안에선 그 누구도 오래 머물지 않는다. 바다 건너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과 육지로 돌아오는 사람들, 그리고 기다리는 사람들. 같은 공간 안에 있지만 각자 다른 곳에서 와 다른 곳으로 향한다. 하지만 이 안에는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애환이 담겨 있다. 터미널의 하루가 끝나간다. 불빛이 꺼지고 북적이던 대합실은 텅 비었지만, 숱한 사연이 남긴 온기는 아직 남아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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