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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소방관으로 산다는 건
대한민국 소방관으로 산다는 건
세상 어디에도 인천 같은 도시는 없습니다. 세계의 하늘 아래 긴긴 역사와 미래가 공존하는 땅, 가깝고도 아름다운 바다, 그리고 168개의 섬. 하지만 무엇보다 인천을 빛나게 하는 건 그 안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사람, 바로 당신입니다. 그 아름다운 사람들과 만나 인천의 어제와 오늘을 확인하고 내일을 그려 봅니다. 이번 호에는 내 가족과 이웃을 위해 그 누구보다 뜨겁게 살아가는 소방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인천서부소방서 김용수 홍보팀장. ‘홍보는 소방의 얼굴’이라고, 그는 말한다.
안개 낀 세상 한가운데 희망
순식간이었다. 짙은 안개 속에서 갑자기 ‘쾅!’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차들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찌그러지고 서로 뒤엉켜 아수라장이 됐다. 지난 2015년 2월 11일 오전 9시, 국내 최다 추돌사고로 기록된 인천 ‘영종대교 106중 연쇄 추돌’. 서부소방서의 김용수(50) 소방위는 이 사건 현장의 구조대장이었다.
“그야말로 암흑세계였습니다.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요. 안개가 걷히고 나서야 시야에 들어온 현장은 처참했습니다. 그래도 대원들이 침착하고 빠르게 대응해서 서너 시간 만에 사건 현장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김 소방위는 구조 경력 21년의 베테랑이다. 직업군인이었던 그는 199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보고 사람 구하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는 입사 후 얼마 되지 않아 우연히 불이 난 집을 보고 뛰어 들어가 자고 있던 임신부를 구해냈다. 주택가에서 피어나는 검은 연기만 보고도 소방관의 직감으로 화재를 알아챌 수 있었다. 인천시장으로부터 인명구조 유공 표창을 받았고, 소방관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상인 ‘KBS 119상’의 영예도 안았다. 천직 소방관이었다.
오랫동안 구조 현장에서 활약한 김 소방위는 현재 서부소방서 홍보팀장을 맡고 있다. 평소에 권역을 둘러보며 소방안전을 살피고, 사건 때는 현장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해 언론에 알리는 역할이다. “홍보는 소방의 얼굴입니다. 우리가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땀 흘리는 만큼 그 사실을 시민에게 알려야 합니다. 그래야 시민 스스로도 안전의식을 키울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소방관, 하루 평균 20분에 한 번, 50차례 이상 출동.
언제든 위험 속으로 뛰어들기 위해, 미리 준비해 놓은 방화복
인천서부소방서 김준태 서장. 행정과 현장에 강한 기획 통으로, 대원들 간의 ‘소통’을
강조한다.
출동벨 소리 끊이지 않는, 서부소방서
서구를 관할하는 인천서부소방서는 인천에서 가장 바쁜 소방서로 통한다. 서구는 인구가 50만 명에 이르며 강화도 다음으로 관할 지역이 넓다. 또 구도심과 노후한 공장지대가 있고, 루원시티 건설을 비롯해 도시 곳곳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만큼 사건 사고율이 높아 소방대원들 사이에선 기피 지역으로 여겨질 정도다.
김준태 서장은 지난 10월 1일 인천소방본부에서 인천서부소방서로 옮겨왔다. “부임하고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서구의 소방안전을 지킬지’ 잠을 못 이룰 정도로 고민했습니다. 관할 범위가 넓고 특수성이 있는 지역이라 힘들지만, 사명감 넘치는 우리 대원들을 믿습니다. ‘안전도시 인천’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시민의 안전을 지키겠습니다.”
30여 년 경력의 김 서장은 풍부한 행정경험을 쌓은 기획 통이다.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다른 시·도보다 3교대 근무를 먼저 시작하고, 인천 공항소방서를 신설하기도 했다. 그 유명한 ‘몸짱 소방관’도 그의 머릿속에서 시작됐다. 서부소방서를 진두지휘하는 지금은 ‘특수시책’으로 인천지하철 2호선 안전운행과 폐기물 관련 업체의 화재 예방과 대응에 힘쓰고 있다. 전통시장 내에 구간 번호를 부착해 진입로를 확보하고 신속하게 화재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좋은 아이디어로 평가받는다. “지금까지 선배들이 조직을 탄탄하게 만들어준 덕분에 오늘의 우리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후배들이 자긍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조직문화와 근무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는 행정뿐 아니라 현장에서도 소방인의 소임을 다한다. 지난 2010년 연평도 포격 당시, 주민들 모두 육지로 피신해 나올 때 그는 대원들과 함께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갔다. 마치 ‘불가능한 작전’을 하듯 짙은 어둠 속에서 섬으로 들어가 불길을 잡았다. 스스로가 대견스러웠다. 소방인이 되길 잘했다는 생각이 그날만큼 든 적이 없었다.
선명히 새겨진 이름처럼, 소방 장비는 그들에게 생명과 같다.
노후 된 생명줄을 교체하는 것, 영웅들이 갖는 소박한 바람이다.
불길 속 위험보다 더 아픈 현실
서구는 폐기물 화재 예방과 대응을 소방안전 ‘특수시책’으로 정해 관리할 만큼 그 피해가 막심하다. 최근 5년간 폐기물 업체에서 난 화재만 해도 28건에 이르고, 올해만 두 건 모두 15시간과 19시간이나 걸려 화재를 진압했다. 하지만 대원들을 정말 힘들게 하는 건, 사력을 다해도 꺼지지 않는 불이 아니다. 바로 불속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잔혹한 현실이다.
“육체적으로 힘든 건 한숨 자고 일어나면 지울 수 있어요. 하지만 불속에서 좋지 않은 상황을 대면할 때면 견디기 어려워요.” 화재 진압대원인 조성우(36) 소방장은 젊은 날, 시 ‘어느 소방관의 기도’를 읽고 운명처럼 소방관의 길에 들어섰다. 그날 뜨겁게 끓어오르던 감정은 지금도 변함 없지만, 죽음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아야 하고 때론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는 현실은 그를 힘들게 한다.
구제홍(37) 소방교의 아버지는 의용 소방대원이었다. 어린 시절 치솟는 불길 속으로 달려 들어가시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다. 영웅 같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소방관이 되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육체적으로 힘든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일인걸요. 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불길을 잡았는데, 소방관의 실수로 물건이 파손되었다든지 해서 되레 질책을 받을 땐 허탈해져요.”
영웅 대접을 받고 싶은 게 아니다. 그저 따듯하게 손잡아 주며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일 끝나고 따듯한 컵라면이라도 받아들면 너무 보람돼요. 그러면 ‘내가 이 일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성욱 구급대원과 김현우 구급대원. 그들에게 심장을 살리는 일은 크나큰 영광이고 명예다.
부디, 더 많은 생명을 구하길
소방서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출동 벨 소리를 듣고 현장으로 달려 나간다. 하지만 대부분 길 가다가 발목을 다치거나, 배가 아프거나, 집에 열쇠가 없다는 이유로 119를 찾는다.
“다급한 마음으로 달려갔는데, 택시보다 빨라서 불렀다며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하면 회의감에 들어요. 그런 경우가 많을수록 분초를 다투는 응급환자들을 살릴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해요.” 구급대원인 김현우(34) 소방사는 나보다 더 아픈 사람이 있다는 생각으로 신중하게 119를 불러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었을 때는 그렇게 뿌듯할 수 없다. 구급대원에게 심장을 살리는 일은 크나큰 영광이고 명예다. 구급대원 김성욱(31) 소방교는 달리는 구급차 안에서 새 생명이 세상의 빛을 보게 했다. 양수가 터져서 출산이 임박한 임신부를 40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병원까지 이송하던 중이었다. 순간, 신생아의 머리가 반짝하고 보였다. 놀랐지만 침착하게 구급 지도의사와 통화하면서 처치를 이어갔다. 이내 우렁찬 아이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내 길이구나. 뿌듯하고 기뻤어요. 아이 옷과 미역을 들고 동료들과 아이가 태어난 산후조리원에도 찾아갔지요. 훗날 백일 떡이라도 해서 찾아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는데…. 안 오시더라고요. 하하. 제가 직접 탯줄을 자른 아이인데, 잘 자라고 있는지 궁금해요” 김현우(34) 소방사도 멈춘 심장을 뛰게 한 적이 있다. “심정지 상태였는데, 그분을 제 손으로 살려냈어요. 힘들었던 모든 것이 다 날아가는 순간이었어요.”
구급대원들은 늘 디스크와 무릎 관절의 통증을 달고 다닌다. 환자를 들것에 태워 옮기느라 얻은 직업병이다. 하지만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얼마든 감수할 수 있는 영광의 상처다.
정서진 119 구조대.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뼛속까지 시린 한겨울에도 물속으로 뛰어든다.
한태수 구조대원과 이신우 구조대원. ‘위험 속에서 남을 돕는 것’ 그것은 그들에게 본능과도 같다.
본능처럼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들
몸에 진 장비 무게 30킬로그램, 하루 평균 20분에 한 번, 50차례 이상 출동. 매년 평균 7명 순직, 300여 명 부상. 평균 수명 58.5세….
대한민국 소방관의 현실이다. 하지만 힘든 환경 속에서도 소방관의 바람은 단 하나. 한 사람이라도 더 위험으로부터 구해내고, 한 사람이라도 더 안전하게 지키는 것. 하지만 동료가 목숨을 잃기라도 하면, 열악한 현실이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정서진 119 구조대의 부대장 이재영(48) 소방위가 대원들에게 강조하는 건 무엇보다 ‘대원의 안전’이다. “‘출동에 만전을 기하라. 하지만 그전에 대원의 안전부터 확보하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다치거나 목숨을 잃으면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요.” 아라뱃길에 있는 정서진 119 구조대의 대원들은 물속으로 뛰어드는 수난구조를 한다. 뼛속까지 시린 한겨울에도 투신자를 찾아 물속에서 며칠을 헤매곤 한다. 그들의 안전과 생명 역시 소중하다.
구조대원인 한태수(33) 소방교도 소방인의 삶이 녹록치는 않다고 말한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에요. 함께 하던 동료를 두 명이나 떠나보내야 했을 때 가장 힘들었어요.” 하지만 그는 열악한 현실 속에서도 남을 도울 때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이신우(45) 소방장도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현장에선 구조를 먼저 생각한다. 또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딸아이들을 보면, 고단했던 모든 것이 눈 녹듯 사라진다. ‘위험 속에서 남을 돕는 것’ 그것은 소방관에겐 본능과도 같다.
고달프지만, 뜨거운 사명감으로 버티는 대한민국 소방관. 그들은 모두가 도망쳐 나올 때,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험 속으로 오늘도 뛰어든다. ‘아무리 뜨거운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소방관의 기도’를 마음속에 되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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