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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왜 가. 여기오면 다 낫는데…”

2016-12-06 2016년 12월호


“병원에 왜 가. 여기오면 다 낫는데…”

몸이 아프거나 찌뿌둥할 때 우리는 흔히 ‘찜질이나 하자’ 말한다. 후끈한 열기에 몸을 맡겨 흠뻑 땀을 빼고 나면 무거웠던 몸이 새털처럼 가뿐해지고, 마음속까지 개운해진다. 여기, 80년 동안 고집스럽게 한자리를 묵묵히 지켜온 한증막이 있다. 도시 한복판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지만, 눈에 쉽게 띄지 않아 존재조차 잘 알지 못했던 그곳, ‘송현한증막’을 찾았다.

글 김윤경 본지편집위원  사진 최준근 자유사진가



세월 가득 담은 ‘송현한증막’

송현 시장 근처의 ‘송현한증막’. 높이 내걸린 주변 간판들과 달리 나지막한 곳에 자리한 작고 낡은 간판이 세월의 흐름을 말해준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입구는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만큼 작았고, ‘여탕’이라고 적힌 작은 천이 간판 아래 입구를 막고 있었다. 입구와 연결된 짧고 어두운 통로 끝의 작은 문을 조심스럽게 열자, 조금 전 대로변과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것처럼 눈앞의 모든 풍경이 낯설다.
“한증하러 왔소?” 나이 지긋한 주인 할머니가 친절하게 반긴다. 꽤 넓은 공간에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들이 몸을 감쌀만한 크기의 포대를 쓰고 삼삼오오 앉아 있다. 젊은 방문객의 등장에 호기심 가득한 눈길이 폭포처럼 쏟아진다.
벽면을 빼곡하게 채운 사물함에는 열쇠가 없다. 손님 대부분이 단골인 송현한증막은 가족 같은 분위기라 열쇠가 없어도 지금껏 물건 하나 잃어버린 적이 없다. 오히려 사물함이 거추장스럽다고 다들 노란 플라스틱 상자에 개인 소지품을 담아 놓는다. 그 모습이, 어릴 적 엄마를 따라가 봤던 공중목욕탕의 기억을 되살려준다.


배영화 사장은 어르신들이 황토방의 묵직한 문을 쉽게 열고 나올 수 있도록 긴 끈을 매달아 문을 열어준다. 일종의 자동문(?)인
셈이다.



전통방식 고집하는 80년 한증막

한증막이 궁금하다고 하자, 주인 할머니가 포대 하나를 건네준다. “뜨거워서 그냥 들어가면 큰일 나.”
만들어진 지 80년이 넘었다는 황토방은 지금도 전기가 아닌, 나무 땔감으로 가마에 불을 올린다. 그러고 보니 둥그런 황토방 입구의 두꺼운 나무문은 그을음으로 까맣게 변해있었고, 한편에는 나무 장작이 켜켜이 쌓여있었다.
“내가 여기서 한증막을 운영한 지가 20년 가까이 됐어. 원래 식당 했는데, 한증막 주인 할머니가 나이가 많아서 내가 한증막을 물려받았지. 오래됐지만 없앨 수가 없어. 이렇게 큰 막장(황토방)이 얼마나 좋은데 없애. 이곳을 찾는 어르신들이 아주 많아. 우리 한증막이 없어지면 그분들 다 어디 가.” 배영화(70) 사장은 한증막에 대한 진한 애정을 내비쳤다. “매일 새벽 2시에 장작을 때기 시작해서 6시쯤 재랑 숯을 꺼내. 재랑 숯은 따로 통에 담아서 그 열기로 먹을 물도 끓여. 한증막은 아침 9시부터 들어갈 수 있어. 그 전에는 뜨거워서 사람이 들어갈 수 없지.”
막장 안에 나무를 쌓아서 서너 시간 남짓 불을 지피면 막장의 온도가 200도를 훌쩍 넘는다. 그래서 아무리 열기를 잘 참는 사람이라도 가마에 들어갈 때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반드시 포대를 뒤집어써야 한다.





뜨거운 열기가 몸과 마음을 치유하다

커다란 가마니 두 개를 겹쳐 두르고 뜨거운 열기가 얼굴에 닿지 않도록 고개를 푹 숙이고 가마솥 같은 황토방으로 들어갔다. 훅~ 후끈한 열기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만든 지 80년이 넘었지만 황토방의 성능만큼은 최고다. 좁고 낮은 입구와 달리 황토방은 천장이 높고 널찍했다. 나무 향기가 가득 배어있는 황토방에 앉아 있으니 금세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눈을 감고 온갖 상념을 내려놓는다.
“여기에 들어오면 아무 생각이 안나. 몸은 편해지고, 마음은 안정되고… 오늘 어깨가 조금 아파서 왔는데, 두 탕 하니까 벌써 부드러워지고 좋아졌어.”
한번 황토방에 들어와 찜질하고 나가는 걸 ‘한 탕’이라고 한다. 올해 85세가 되었다는 방정남 어르신은 30대부터 이곳을 이용했다. “요즘 찜질방하고는 비교가 안 돼. 전기로 하는 거랑은 달라. 병 고치려면 나무 때는 한증막을 다녀야 돼. 아픈 사람들 여기 와서 많이 고쳤지. 중풍에도 좋대.”
어르신의 얘기를 좀 더 듣고 싶었으나 뜨거운 열기를 참을 수 없어 밖으로 뛰쳐나왔다. 서늘한 공기 속으로 나오니 그제야 살 것 같았다.



“내가 살아있는 한증막 역사야”

열기와 땀을 식히며 어르신들이 들려주는 송현한증막의 역사에 귀를 기울였다. “한증막? 이거 엄청 오래된 거지. 내가 올해 아흔두 살이야. 스물한 살 때 처음 이용했으니까 최소한 70년은 넘었잖아. 첫애 낳고 해산바람에 고생이 말이 아니었는데, 친정엄마가 한증시켜야 낫는다고 해서 그때부터 다녔어. 이거(한증막 시설) 우스워보여도 정말 좋은 거야. 허리를 펴지도 구부리지도 못했는데, 여기 다니면서 다 나았어. 혈액 순환이 잘돼. 옛날에 병원이 어디 있어? 여기 오면 병이 싹 나으니까 여태 다니는 거지. 첫애 낳고 아들 하나 더 낳았는데, 지금까지도 건강하잖아.” 92세 나이가 무색하리만큼 박순옥 어르신의 목소리는 정정하다.
“한증도 요령이 있어. 한 탕 하고 나면 누워서 푹 쉰 뒤에 여유를 가지면서 다시 들어가야지. 자꾸 들락거리면 쉽게 지치고 기운 빠져. 우린 아침에 와서 점심도 먹고, 낮잠도 자면서 편안하게 쉬어. 다섯 탕 정도는 해야 몸에 좋아”
어르신의 충고대로 편하게 쉬면서 한증막 내부를 둘러보았다. 샤워시설도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목욕실은 샤워기가 없어 바가지로 물을 떠서 사용해야 했고, 목욕탕 한가운데는 온기를 책임지는, 낡았지만 커다란 난로가 놓여 있었다.



사라지면 아쉬울, 역사가 가득한 곳

찜질방, 숯가마가 있기 전에 한증막이 있었다. 한증막은 뜨거운 열기로 피부를 자극해 땀과 함께 몸속의 노폐물을 배출시키는 역할을 한다. 체온보다 훨씬 높은 열기가 모세혈관을 확장해 몸 구석구석까지 혈액순환이 잘 이뤄지게 한다. 돌과 흙을 이용해 돔 형태로 만든 한증막에서 나오는 원적외선도 건강에 매우 이롭다고 한다.
예전 어머니들은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한증막을 이용했다. 김장철이나 명절 후, 몸이 아플 때는 마치 소풍이라도 가듯 음식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말이다. 오래전 송현한증막은 하루는 여자, 하루는 남자를 받는 시스템이었다. 전화가 없던 시절, 손님들이 헛걸음을 치지 않도록 기다란 대나무에 흰 천(여자), 검은 천(남자)을 매달아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게 했다. 이제 송현한증막 입구에는 오로지 ‘여탕’이라는 천만 걸려있다.
너무 오래돼서 함부로 손 댈 수 없을 것 같은 ‘송현한증막’. 깔끔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좋아하는 젊은 사람들에게는 불편하고 낯선 곳이라, ‘여탕’이라는 천마저도 볼 날이 머지 않을 듯하다. 아쉽고 섭섭한 마음이 벌써 가득하다.

Tip |  송현한증막은 보통 오전 9시에 문을 열고, 마치는 시간은 손님의 유무에 따라 다르다. 대부분이 단골이라 알아서 그들이 귀가하는 시간이 문을 닫는 시간이라고. 토요일 저녁은 손님이 머무는 한 밤 새도록 운영한다. 이용료는 8천 원. 여탕만 운영하기 때문에 남성의 방문은 사절! ☎773-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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