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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 빛 끊어진 시간을 잇다

2018-03-29 2018년 4월호




어둠 속 빛 끊어진 시간을 잇다

때론 오래된 것이 더 새롭고 아름답다.
인천은 과거와 미래가 조화로운 도시, 최초와 최고가
공존하는 도시다. 시간의 흔적을 온전히 보듬어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탄생시킨 공간으로 들어가 본다.
그 네 번째로 100여 년 시간과 공간,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을 ‘잇는’ ‘잇다스페이스’를 찾았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잇다스페이스’는 공연, 전시를 비롯해
실험적인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잇다’에 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청춘의 꿈 자라던, 싸리재 골목 모퉁이
하마터면 스쳐 지날 뻔했다. 개항장에서 배다리로 넘어가는 싸리재 고갯길. 그 길 골목 모퉁이 낡고 오래된 벽돌 건물에 ‘잇다스페이스’가 있다. 이곳은 공연, 전시를 비롯해 실험적인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 입구에는 ‘동양서림’ ‘새전과·표준학력고사·중학전과·새산수완성’이라는 정겨운 단어가 빛바랜 채 새겨져 있다. 추억으로 통하는 시간의 문처럼 느껴진다. “나를 만나기 전 이 건물의 마지막 역사, 그 시간의 연속성을 이어가고 싶었습니다.” 닫힌 공간 멈춘 시간이, 목(木) 조형 작가 정희석(45) 씨를 만나면서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이곳은 1920년대 소금 창고로 첫 숨을 텄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은 화약을 제조하는 원료로 쓰기 위해 소래에서 소금을 만들었다. 그 탐욕의 결정체가 이곳 바닷가 창고에 쌓여 바다 건너 섬나라로 속절없이 흘러 들어갔다. 아픈 역사가 깃든 건물은 1940년대 일본식 한증막으로 쓰이다, 10년 후 서점 ‘문조사’에 자리를 내어주었다. 대부분 동네 사람의 기억에는 헌책방 ‘동양서림’으로 남아 있다. 너도나도 어렵던 시절, 배움에 목말랐던 사람들이 부지런히 책방을 드나들었다. 젊은 지성인들과 소년 소녀들이 이 안에서 지문의 때가 스민 책을 넘기며 내일을 꿈꾸었다.




단단한 벽에 뿌리내리며 줄기차게 이어온 생명력.
나무줄기를 따라가면 놀랍게도 건물 밖에 있는
나무의 몸체로 이어진다.



폐허에 움튼, 나무 한 그루
책방이 문을 닫고 20여 년간 숨죽이고 있던 공간은, 3년 전 정 작가를 만나면서 서서히 기지개를 켰다. 사방이 꽉 막힌 경남 거창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언젠가는 소금기 밴 바닷바람을 맞으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릴 적 브라운관에서 보던 인천이라는 도시에 막연한 호기심을 품기도 했다. 그 운명 같은 끌림이, 15년 전 그를 이 땅에 뿌리내리게 했다.
살다 보니 작업 공간을 만들고 싶어져, 무작정 배다리 주변을 배회했다. 몇 달을 골목골목 헤매었지만 마음에 드는 곳이 없어 그만두려고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심코 시선을 던진 후미진 골목 사이에서 오래된 벽돌 건물의 옆면을 ‘발견’했다. 순간, ‘아, 여기다’ 마음속으로 외쳤다.
하지만 20여 년 시간이 멈춘 옛 공간은 자욱한 먼지와 쓰레기 더미에 묻혀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다. 곁에서 지켜보던 아내의 한숨이 깊어져만 갔다. 하지만 그는 어둠이 깔린 폐허를 비추는 한 줄기 빛을 놓치지 않았다. “놀랍게도 죽어있는 공간에 나무 한 그루가 숨 쉬고 있었어요. ‘내가 꼭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 잃고 버려진 존재가 되어 몸뚱이가 잘려나간 오동나무. 하지만 나무는 기어코 단단한 벽면에 뿌리를 내리고 부서진 슬레이트 지붕 위로 가지를 뻗어, 틈으로 스미는 빗물과 햇살 한 줌으로 버티고 있었다. 평생 나무를 만지며 살아온 사람이 아니던가. 폐허에 움튼, 생명을 지키고 싶었다.


함께 만든 모두의 공간이다.
‘잇다스페이스’를 짓겠다고 하자, 주변 예술가들이 ‘소셜펀딩 (Social Funding)’으로 마음과 마음을 모았다.


시간의 증거들을 붙잡고 싶었다.
그래서 옛 공간의 흔적들을 온전히 남겨 두었다.
벽면에 걸린 빛바랜 태극기도
처음 발견했던 모습 그대로다.



마음과 마음, 문화를 ‘잇다’
묵직한 시간의 문을 여는 순간, 나무 향기가 진하게 밀려든다. 100여 년 켜켜이 쌓인 긴 시간과 오늘이 혼재된 공간이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잇다스페이스’가 둥지를 틀고 어둡고 음침한 골목에 활기가 돌자 가장 반긴 건 동네 주민이었다. 그들로부터 이 일대에 깃든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마음이 더 각별해졌다. “당시 젊은 문인들이 이곳을 드나들며 문학과 인생을 논하고 낭만을 이야기했다고 해요. 공간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어요.”
그 오래됐지만 빛나는 시간의 증거들을 붙잡고 싶었다. 그래서 동양서림의 간판을 대문에 걸고, 마루로 쓰던 자투리 나무를 덧대어 문을 만들었다. 틈 사이로 빛이 새어드는 낡은 벽돌 벽, 나무가 숨을 내쉬던 지붕의 구멍도 온전히 남겨 두었다. 벽면에 눌어붙은 오래된 신문, 누렇게 빛바랜 태극기도 처음 발견했던 모습 그대로다. “언젠가 술에 거나하게 취한 어르신이 오셔서, 저 태극기를 절대 옮겨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마치 지나온 시간과 역사를 함부로 거스르지 말라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벽을 감싸는 나무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놀랍게도 건물 밖에 있는 나무의 몸체와 하나로 이어진다. 한 세기 가까이 부침 많은 세월을 견뎌 온 이 공간의 강인한 생명력을 말해주는 듯하다. 모두 떠나고 먼지 속에 침잠하던 공간에 오롯이 핀 생명. 잇다스페이스에 가면, 시간과 공간,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을 ‘잇는’ 희망이 ‘있다’.
 
잇다스페이스 [itta space]
중구 참외전로 172-41
Ⓗ itta1974.modo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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