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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시애틀’ 음악으로 충만하길
‘한국의 시애틀’ 음악으로 충만하길
글 홍수경 문화 칼럼니스트
1990년대 인천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던 나에게 인천은 음악의 도시로 기억된다. 그 시절 나의 세계는 음악으로 충만했다. 당시 ‘인천의 명동’이라 불렸던 동인천 거리와 지하상가는 조금 과장하면 두 집 건너 한 집이 음악 매장이었다. 학교 앞 분식집에는 디제이가 있어 떡볶이를 먹으면서도 새로 나온 팝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 당시 베이시스트로 막 밴드에 들어간 친구의 오빠는 미약하게나마 인천의 록밴드와 인연을 맺었다. 이 때문에 친구는 인천 록 음악계의 셀러브리티를 꿰게 됐고 나는 그런 친구가 한없이 부러웠다.
주말이 되면 우리는 입장료가 1,500원이던 음악 감상실 ‘심지’에 들어가 하루 종일 뮤직비디오를 봤다. 좋아하는 음악은 많았지만 앨범을 살 능력이 안 되는 가난한 고등학생이었기에 음악 감상실에서 그 갈증을 풀었다. ‘심지’와 더불어 주기적으로 찾았던 곳은 동인천과 배다리 등 잡지 ‘핫뮤직’을 파는 공간이었다. 매월 ‘핫뮤직’을 정독하며 음악 감상실 신청곡 리스트를 갱신하는 건 고등학생 음악팬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게다가 내 짝과 친구들은 음악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밴드를 결성해 주안 라이브클럽 무대에 서는 쾌거(!)를 이뤘다. 오프닝 밴드였던 그들의 공연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지만, 록밴드 연주를 처음으로 눈앞에서 목격한 나로선 친구들이 자랑스러울 뿐이었다.
한국의 첫 대형 록 페스티벌이 인천에서 열린다는 소식도 ‘당연하게’ 들렸다. 트라이포트 락 페스티벌은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하루 만에 끝나버렸지만 그곳에서 처음 봤던 드림 시어터와 딥 퍼플의 라이브 공연은 평생 못 잊을 감동의 순간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2018년. 뉴욕에 거주하며 인천을 오가다가 문득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음반이 생겨 대형 마트에 들렀다. CD 코너의 위치를 묻자, 직원은 CD가 대체 무엇인지 약 5초간 생각하는 듯했다. 곧 CD는 팔지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혹시나 싶어 동인천 지하상가에 가봤더니 입구 쪽에 잡화를 즐비하게 늘어놓은 음반 매장이 보였다. 가게 주인은 35년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했다. 디지털 음악이 일반적인 시대에, 이렇게라도 살아남아 있는 레코드 가게가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이런 경우 말고는 인천에서 음악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인천은 한때 ‘한국의 시애틀’이라 불렸다. 시애틀은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으로 세계의 음악 트렌드를 휩쓴 미국의 대표적인 음악 도시다. 현재는 음악보다 커피점 ‘스타벅스’의 고향으로 유명하지만, 그 원조 스타벅스 매장 앞에서도 인디 밴드가 열심히 공연을 하는 동네다. 몇 년 전 시애틀에서 시민들의 음악 사랑을 깨닫게 된 순간이 있었다. 식당이나 카페, 술집에서 듣도 보도 못한 다양한 음악들이 흘러나올 때였다. 거대한 음악 박물관이나 시를 대표하는 록밴드 ‘너바나’의 기념품 가게보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음악을 듣거나 연주하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이 훨씬 더 인상적이었다. 시애틀을 다녀온 후 인천의 음악 사랑도 유산으로 남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인천의 한 라이브 클럽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을 때도 비슷한 기분이었다. 지금 글을 쓰는 심정도 씁쓸하다. 음악 관련 필자로서 추억담을 늘어놓기보다 새로운 뮤지션들이 활보하는 도시의 모습을 그릴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쁠 텐데. 음악이 짜장면만큼 도시의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천이 증명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다시 한 번 거리에 음악이 넘쳐나기를!
내 가슴에 새긴 한 구절
“햇살이 한 줌 들지 않던 시절엔 / 어디든 갈 수 있던 지름길로 우린 / 오색빛깔 휘청이던 거리를 지나가네 / 조그만 빛을 찾아 / 헤매이면 우린 꿈을 / 꾸네 부평지하상가 / 힘겨운 꿈을 부평지하상가”
- ‘빛과소음’의 곡 ‘부평지하상가’ 중
새롭고 젊은 인천의 노래를 만들자는 취지로 완성된 컴필레이션 앨범 ‘인천 - Sound of Incheon’ 수록 곡. 10대 시절 음악을 찾아 동인천 지하상가를 헤매던 내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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