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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양조장에서, 삶과 문화를 음미하다
골목양조장에서,
삶과 문화를 음미하다
때론 오래된 것이 더 새롭고 아름답다. 인천은 과거와 미래가 조화로운 도시,
최초와 최고가 공존하는 도시다. 시간의 흔적을 온전히 보듬어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탄생시킨 공간으로 들어가 본다. 그 여덟 번째로 ‘Made in Incheon’
수제 맥주의 산실인 신포동 양조장, ‘칼리가리 브루잉(Caligari Brewing)’을 찾았다.
이곳은 그때 그 시절 네온사인 불빛 아래 젊은이들이 모이던 디스코텍 ‘팽고팽고’가 있던 자리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장 대행│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단순히 마시고 즐기는 술이 아니다.
수제 맥주는 20, 30대 ‘젊은이들의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팽고팽고’가 있던 자리
신포동 후미진 골목. 오랫동안 비어 있던 1950년대 지은 벽돌 건물은 처음엔 창고로 새 숨을 텄다. 하지만 한 남자가 기억하는 이 건물 역사의 첫 페이지는 술집이다.
“1980~1990년대 신포동은 인천에서 가장 ‘잘 나가는’ 동네였어요. 밤낮으로 젊은이들이 몰려들었지요. 1990년대 초반 이곳은 당시 전국에서 보기 드문 술집이었어요. 429m²(130평) 규모에 복층으로 된 구조였는데, 낡고 허름한 건물에 새로운 감각을 덧입혀 멋스럽게 꾸며놓았지요. 천장에 걸린 거대한 상어 모형이 지금도 기억나네요.”
스무 살, 생에 가장 빛나던 시절. 문턱이 슬도록 이 공간을 드나들던 한 청춘이 불혹을 넘기고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Made in Incheon’ 수제 맥주를 빚어내는 양조장을 차렸다. 바로 칼리가리 브루잉(Caligari Brewing)의 대표 박지훈(42) 씨의 이야기다.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건물을 매만지다 보니, 멈춘 시간 속 화려했던 시절의 흔적이 쏟아져 나왔다. 1980년대 신포동 일대에는 ‘쌍쌍’, ‘팽고팽고’, ‘우산 속’, ‘다빈치’ 등 유명 디스코텍이 있었는데, 이 자리에 바로 ‘팽고팽고’가 있었다.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젊은이들을 유혹하던 간판과 무대 장식은 빛바랜 채 그 시절을 붙잡고 있었다. 도나 서머의 ‘핫 스터프(Hot Stuff)’에 맞춰 땀이 흠뻑 젖도록 손가락 찌르기를 하던 언니 오빠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어딘가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른다.
“소신을 버리면서까지, 돈을 좇고 싶지 않아요.”
영화를 공부하고 음악 활동을 오래 해온 박지훈 대표의 지향점은 뚜렷하다.
수제 맥주로 새로운 문화와 예술을 창출하는 것.
퍼브를 찾는 손님들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신기해 한다.
진짜 양조장이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고.
결국, 다시 돌아오다
전성기는 끝이 났다.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중심에서 변두리로 밀려난 신포동은 침묵 속으로 깊이 침잠해 버렸다. 그도 동네를 등졌다. 덜컹거리는 경인 철도를 타고 달려 나간 1호선 끝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인천에서 온 그를 사람들은 인‘촌’놈이라고 불렀다. 고향도 동네 사람도 잊고 한참을 놀다 보니, 촌놈은 어느새 ‘서울 사람’이 됐다. 뮤지션이라는 타이틀을 폼 나게 걸고 한때 음악으로 돈을 만지기도 했다. 몸값이 높아지고 메이저 음악기획사에 불려 들어가 ‘돈 되는’ 음악을 찍어냈다. 하지만 머지않아 한계를 맞았다. 회의감에 젖어 제주도로 도망치듯 떠났다. 한 골프 리조트에서 손님의 짐을 옮기고 사우나에서 수건을 정리하는 일부터 다시 시작했다. “음악 하는 놈이 여기서 뭐하는 거래?”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 안에서 그는 사회를 배우고 세상을 알아가면서, 더 큰 사람으로 성장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그는 다시 인천으로 왔다. 구월동 로데오거리 골목 뒤편에 간판도 잘 보이지 않는 작은 칵테일 바를 냈다. 사람도 돈도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힘든 시기였지만, 묵묵히 견뎌냈다. 그리고 오늘, 인천을 대표하는 수제 맥주 컴퍼니인 ‘칼리가리 브루잉(Caligari Brewing)’을 세상에 당당히 선보였다. 이 회사는 2015년 브랜딩을 시작해, 2016년 송도국제도시에 브루어리 퍼브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을 열고, 올 3월 신포동에 양조 설비를 들여놓았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현재 인천은 물론이고 전국 각지에 12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달리고 달려서 여기까지 왔어요. 신포동은 인천 사람들의 꿈과 추억이 깃든 동네예요. 맥주는 단순히 술이 아닌 하나의 문화이자 삶의 일부입니다. 오래된 도시의 깊은 맛과 향이 흠씬 밴 맥주를 세상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싶어요.” 브랜드를 소개할 때마다 늘 ‘인천에서 만든 맥주’라고 강조하며 자랑스러워하는 그다.
양조장 한편에는 연주실이 있다.
뮤지션 출신인 박 대표는 수제 맥주와 예술, 공간을 결합해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골목 양조장에서,
‘신포우리맥주’ 한잔
꿈을 찾아 떠났지만, 결국 돌아왔다. 그는 타 지역뿐 아니라, 인천 사람들조차 인천의 본모습과 가치를 알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특히 한때의 자신처럼,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서울행을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애정 어린 조언을 하고 싶다.
“그때는 왜 ‘인천은 안 된다’라고 생각했을까요.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꾸준히 기다리고 행동하면, 반드시 된다는 사실을. 젊은 친구들이 지역에 애정을 갖고, 이 자리에 머물며 꿈을 키우면 좋겠어요.” 젊은 사람이 원도심에 많아야 자신도 돈을 많이 벌지 않겠느냐며, 그가 유쾌한 웃음을 던진다. 하지만 원도심 한복판에 뚝심 있게 세운 양조 시설, 그 안에서 ‘개항장’, ‘신포우리맥주’라는 이름을 새긴 술을 빚어내는 그에게서, 지역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낀다. 칼리가리 브루잉은 곧 서브 브랜드 ‘인천 브루잉’을 론칭한다. 다채로움이 공존하는 인천처럼, 개성 넘치는 브루어리들이 의기투합해 실험적이고 재미있는 시도를 할 것이다.
“맥주를 ‘술’ 그 자체로 보는 시선이 안타까워요. 수제 맥주는 개개인이 창조하는 하나의 ‘문화 콘텐츠’입니다. 음료, 예술, 공간 등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것이 우리의 최종 목표입니다.” 단순히 마시고 즐기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수많은 고민과 시행착오 끝에 완성된 맛, 단 한 잔에도 만든 이의 철학이 담겨 있다.
맥주의 나라 독일에는 ‘맥주는 양조장 굴뚝 아래서 마실 때 가장 맛있다’라는 속담이 있다. 신포동 후미진 골목의 양조장 굴뚝 아래서 마시는 맥주 한 잔에, 지나온 추억과 오늘의 삶을 담아 음미해 본다.
원도심 한복판에 뚝심 있게 세운 양조 시설, 그 안에서
‘개항장’, ‘신포우리맥주’ 라는 이름을 새긴 술을 빚어내는 그에게서,
지역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낀다.
“이제 반 왔어요. 나쁘지 않지만
아주 맛있는 술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요.”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맥주 맛을 점차
만들어가는 단계다.
하지만 지역에 대한 자부심과 고객과의 소통으로
곧 ‘칼리가리 브루잉’만의 브랜드를
완성시킬 것이다.
information
칼리가리 브루잉
중구 신포로15번길 45(해안동3가)
퍼브 | 월~금요일 17:00~01:00, 토·일요일 17:00~03:00
양조장 | 월~금요일 09:00~18:00
Ⓣ 766-0705 / Ⓗ www.caligaribrew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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