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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승의 시선(詩선)
무의도기행
함세덕(咸世德 ; 1915-1950)

젊은 어부 아, 뭣들 하구 있는 거예요? 빨리빨리 개루 나오시지들 않구? 어젯밤 물에 동아떼가 여덟미서 덕적으로 몰려가는 걸, 용유 준필 할아버지가 추수곡 싣구 지나가다 봤대요. 어떻게 떼가 큰지, 바다가 시꺼멓드라구 해요.
노틀할아범 곧 갈테니, 돛이나 올려놓게.
젊은 어부 동아떼가 이렇게 큰 것 보긴, 10년 만이라구 해요. 갔다 와서 쉬흔 독을 저릴랴믄, 어지간히 손등이 또 터질 껄요.
젊은 어부, 다시 개로 나간다. 공주학, 헌 고무장화를 한 켤레 들고, 길에서 나온다. 사금 파는 광부들이 신는 볼기짝까지 닿는 신이다. 뒤따라 그의 처.

글 김영승
위 인용문 바로 전 2막 「# 사면초가」에는 아래와 같은 대사가 놓여진다.
천명 죽어두 항구에 가서 죽지, 떼무리서 사공은 되지 말라구 했어요.
주학의 처 사공하구 무슨 대천지 원수가 졌다든? 지금 세상에 그래두 어수룩한 건 뭐니뭐니 해두, 백정하구 괴기잡이 밖엔 없어. 잡아먹는 덴 밑질 게 없거든?
천명 큰 성두 작은 성두 벌에서 죽었어요. 큰 성은 조기사리 나갔다가, 덕적서 황서방이 베 등거리만 찾어왔구, 작은 성은 새우사리 나갔다가 댐마다리 밑에 대가릴 처박구 늘어진 걸, 누나하구 어머니가 끌어 내왔었어요.
손턴 와일더(Thornton Wilder ; 1897-1975)의 희곡 『우리 마을(Our Town)』(1938)에 등장하는 그 전지적 시점의 스테이지 매니저처럼 작가인 함세덕 역시 그러한 인물로 무대에 직접 등장하는데 마치 무성영화의 변사처럼 아래와 같은 해설로, 17세에 용유초등학교를 일등으로 졸업한, 그리하여 경성 가서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던 주인공 천명의 좌절, 그 비극의 끝을 알린다.
함세덕 그 후 그 배는 동아를 만재하고 돌아오다, 10월 하순의 모진 파도를 만나 파선하였습니다. 해주 수상경찰서의 호출장을 받고, 공주학과 낙경이 달려가 천명의 시체를 찾어왔습니다. 부서진 널쪽에다 허리띠로 몸을 묶으고 해주 항내까지 흘러갔든 모양입니다.
작가는 「# 프롤로그」에서 “때는 노구교 사건으로 중일전쟁이 한창인 1930년대 말”이라고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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