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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획_국가명승 예정지, 정족산 전등사 일원을 가다

2026-10-05 2002년 10월호

29년 만의 품격, 

인천의 두 번째 국가명승이 온다


전등사를 아늑하게 품은 정족산에는 역사의 자기장이 흐른다. 마치 자석에 이끌리는 쇠붙이처럼, 방문객은 전등사 경내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거부할 수 없는 역사의 자력에 몸을 맡기게 된다.

고려시대 가궐과 국가 불교의례, 조선시대 사고와 선원보각, 병인양요 승전지 등 여러 시대의 

역사와 문화가 중첩되어 있는 곳. 자연 지형의 수려함과 인문 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역사문화경관은 가히 독보적이다. 강화 정족산·전등사 일원의 국가 명승 지정을 앞둔 초가을의 어느 날, 이곳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았다.


글. 임성훈 본지편집장  사진. 이재형 포토디렉터, 대한불교조계종 전등사



역사의 자력이 이끄는 

정족산·전등사 일원 둘러보기


전국에서 137번째, 수도권에서 11번째.

강화 정족산·전등사 일원이 국가 명승으로 지정되면 부여받게 될 순번이다. 인천으로 범위를 한정해 보면 그 의미는 남다르다. 지난 1997년 백령도 두무진이 명승으로 지정된 이후, 무려 29년 만에 탄생하는 인천의 두 번째 명승이기 때문이다.

명승이란 뛰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거나 자연과 인공물이 조화를 이루는 장소 중, 역사적· 예술적·학술적 가치가 커서 국가가 법으로 지정한 문화유산을 말한다. 전등사 일원은 정족산의 산봉우리와 자연지형을 활용해 조성된 삼랑성, 잘 보존된 사찰림과 노거수, 개방감 있는 조망경관이 조화를 이루며 자연과 인문환경이 하나의 경관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서해의 비경을 담은 해안 명승에 이어 깊은 산사까지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인천으로서는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알수록 궁금해지는 

천년고찰 이야기


정족산 품에 고즈넉이 자리 잡은 전등사는 강화도에서 1,600여 년의 세월을 이어온 한국의 대표적인 고찰이다. 불교 전래기인 서기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년), 아도화상이 창건할 당시의 이름은 ‘진종사’였다. 1282년 전등사로 이름을 바꾼 이 사찰은 우리나라 불교문화의 상징으로 꼽히고 있다.

전등사로 향하기 전 먼저 강화역사박물관을 찾았다. 강화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시 ‘강화의 불교미술 Ⅱ: 전등사’를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담은 경전 ‘묘법연화경’ 목판을 비롯해 전등사 ‘명경대’, 전등사 ‘현왕도’ 등 다양한 유물이 전시돼 있었다.

오랜 역사만큼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절. 박물관의 기획전시회는 일종의 맛보기였다. 전시물을 통해 사찰의 깊이를 조금이나마 접하자 ‘아는 만큼 보일 것’이라는 기대감보다는  ‘알수록 궁금해지는’ 설렘이 더 커졌다. 실제로 전등사는 맛보기만으로는 실체를 가늠할 수 없는 무궁무진한 스토리텔링의 보고였다.


 

병인양요 당시 군사들이 대웅전 벽과 기둥에 남긴 이름들


전등사 대웅전


전등사 대웅전 처마밑의 나부상



성문 너머 펼쳐지는 

이야기의 장



주차장을 지나 호젓한 숲길을 오르면 터널 같은 아치형의 성문이 나타난다. 일반적인 사찰의 출입문인 일주문 대신 성문이 맞아주는 까닭은, 전등사가 산성으로 둘러싸인 독특한 구조를 지녔기 때문이다. 산성과 연결된 아치형의 성문이 출입문 역할을 하다 보니 방문객이 터널을 지나 경내에 진입하는 독특한 풍경이 연출된다.

경내로 들어서 ‘바닷물이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누각’이라는 뜻의 대조루를 통과하면 조선 중기 이후 사찰건축의 백미로 꼽히는 대웅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대웅전 내부에는 보물 1785호인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등 섬세한 목조불상을 비롯해 수미단과 닫집의 정교하고 화려한 장식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강화역사박물관에서 맛보기로 접했던 불교미술의 현주소가 바로 대웅전인듯했다. 강화역사박물관에 전시 중인 명경대가 있던 자리에는 같은 모양의 대체전시물이 임시로 비치돼 있었다. 화재로 전소된 후 광해군 때 재건해 조선 전기의 양식이 남아 있는 대웅전은 조선 중기 이후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대웅전 내부의 기둥과 벽에는 잊지 말아야 할 호국의 서사가 새겨져 있다. 1866년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점령하는 병인양요가 발발했다. 서양의 신식 무기로 무장한 프랑스군은 강화읍성과 외규장각에 불을 지른 뒤 전등사로 향했다. 당시 전등사와 정족산성에는 양헌수 장군이 이끄는 547명의 군사가 주둔해 있었다. 그들은 전투를 앞두고 전등사 대웅전의 기둥과 벽에 저마다의 이름을 써 내려갔다.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전투를 앞두고 훗날 누군가 자신을 기억해 주길 바라며 먹과 붓으로 다진 결전의 의지였다. 병사 중에는 관군 외에 승려와 농민들도 있었다. 그들의 치열한 항전 덕분에 프랑스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그들이 남긴 이름은 전등사 동문 앞 승전비와 함께 호국의 기록으로 남아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대웅전 밖으로 나오면 또 다른 이야기가 기다린다. 고개를 들어 대웅전의 지붕을 보면 벌거벗은 여인상(나부상)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에는 사랑과 배신으로 얼룩진 로맨스가 얽혀있다. 대웅전을 짓던 목수가 사랑했던 주모에게 품삯을 맡겼으나 공사 막바지에 주모가 도망치자, 목수가 처마 네 귀퉁이에 주모의 모습을 조각해 지붕을 떠받치게 했다는 전설이다.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며 참회하라는 뜻이라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지만, 단순한 복수라거나 야차 또는 원숭이의 형상이라는 견해도 있다. 때로는 벌을 받으면서도 꾀를 부리고 있는 듯한 익살스런 모습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해학과 풍자를 품은 전설이 열린 결말처럼 전해 내려오는 점이 흥미롭다. 대웅전에는 이처럼 기둥과 벽, 지붕에까지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가 살아 숨 쉬고 있다.



스님이 법고를 치는 모습


 삼랑성 역사문화축제를 알리는 현수막



역사의 지층이 

쌓인 공간 

전등사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경내에는 중국 송나라 때 만들어진 중국식 철종이 자리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병기를 만들려고 부평 병기창으로 수탈해 간 것을 광복 후 전등사로 거두어 보존해 온 유물이다. 

전등사에 왔다면 반드시 들러야 할 역사의 현장이 있다. 약사전 뒤편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면 나타나는 ‘정족산 사고’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장사각과 왕실 족보를 모시던 선원보각이 있던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철거(추정)되었다가 1998년 복원되었는데, 수호사찰이었던 전등사에 옛 현판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제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비록 문틈이나 담장 너머로만 볼 수 있지만, 국가의 기록을 지키고자 했던 선조들의 숭고한 정신이 현판 너머로 전해진다.

정족산 사고에서 내려오는 길목에도 고려와 조선, 일제강점기의 역사가 겹겹이 쌓여있다. 고려 시대 임금이 대궐을 멀리 떠났을 때 임시로 머무는 곳인 가궐이 있던 ‘고려가궐지’, 조선 시대 실록을 지키던 군사 주둔지 ‘정족산성진지’, 그리고 1908년 강화의병이 일본군과 싸워 승리한 ‘강화의병 전투지’가 한곳에 모여 있다. 시대별로 역사의 지층이 겹겹이 쌓인 역사의 ‘공유공간’인 셈이다.


전등사 약사전 앞에서 관람객을 반기는 어린왕자



천년고찰에 어린왕자, 

전통과 현대가 소통하는 쉼터

전등사는 과거에만 머물지 않는다. 뜻밖에도 약사전 앞에는 어린왕자 조형물이 서 있다. 천년고찰과 어린왕자의 만남이라니.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지만 이는 전등사가 현대 예술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어린왕자 조형물은 세계 최초로 발굴기법을 창안한 이영섭 작가로부터 구입한 것이다. 이 작가가 전등사에서 전시회를 가진 적이 있는데 전시회가 끝난 후 사찰 측에서 몇 점을 사들였다고 한다. 전등사는 이 외에도 ‘무설전’을 ‘그림이 있는 법당’이라고 명명하며 전시회 공간으로 제공하는 등 예술가들을 발굴, 후원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산사에서는 매년 ‘삼랑성역사문화축제’ 기간에 음악회가 열리는데 수천 명이 한꺼번에 운집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경내 탐방을 마친 후 '죽림다원'에서 즐기는 차 한 잔의 여유도 빼놓을 수 없다. 국내 최초의 맛집 안내서인 블루리본 서베이에 5년 연속 이름을 올린 이곳의 대표 메뉴는 깊은 맛의 대추차와 쌍화차다. 전등사 연밭에서 채취해 아홉 번 덖어낸 연잎차도 풍미를 자아낸다.

매년 10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고 전국 톱 5 템플스테이 명소로 꼽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얼마 전에는 이탈리아 대사 부부도 템플스테이에 동참해 한국의 전통문화를 체험했다고 한다.


전등사의 가을풍경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전등사 일원



성곽길 따라 만나는 

천하의 비경


전등사 탐방의 마무리는 정족산성(삼랑성) 성곽길이다.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삼랑성은 능선을 따라 2.3km에 걸쳐 이어진다. 빠른 걸음으로 한 시간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돌 하나하나에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을 물리치던 병사들의 함성이 스며있는  곳. 고대 토성으로 시작해 민초들이 돌을 다듬어 쌓아 올린 이 성곽은 우리 민족 자존의 역사 그 자체다. 

성곽길을 따라 걸음을 옮기다 보면, 마치 하늘에서 내려다보듯 정족산이 전등사를 포근히 품어 안은 절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최고의 전망 포인트가 나온다. 오직 발품을 파는 이에게만 허락되는 선물 같은 풍경이다.

황찬익 전등사종무실장은 “강화 지역은 안보 이슈나, 교통 체증 등과 맞물려 관광객들이 다소 감소하는 추세인데 정족산, 전등사 일원이 국가 명승으로 지정되면 보다 많은 분들이 강화를 방문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등사의 역사나 문화유산, 전설 등에 대해 사전 지식을 좀 갖추고 방문하면 보다 알차게 전등사를 탐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팁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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