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적 동물’ 이며, 늘 다른 사람과 어떠한 형식으로든 사회적인 관계를 맺는다. 그렇다면, 과연 방에서 나오지 않고 컴퓨터만 하는 사람도 사회적인 인간으로 볼 수 있을까? 뉴스를 보면 방에 틀어박혀 누구도 만나지 않고 게임만 하면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은둔형 외톨이의 사례가 나온다.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 라고도 한다. 그런데 사람이 ‘사회적 동물’ 이라면 이런 사회적이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사회적 동물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우리의 주변을 보면 두 가지의 인간들이 있다. 먼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주변에 지인이나 친구가 많은 외향적 인간이 있다. 우리는 이런 외향적인 인간들은 보고 ‘사회성이 좋다’ 고 표현한다. 반대로, 성격이 비교적 비사교적인 편에 속하고 자신만의 취미나 관심사가 있으며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내향적 인간’ 도 있다. 보통 대인 관계를 기준으로 이 두 가지의 인간이 나눠진다. 특히 한국인들은 이를 확인하는 심리테스트를 즐겨 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사회적 관계’ 의 뜻을 누군가를 직접 만나 얼굴을 마주 보고 무엇을 적극적으로 함께하는 개념으로만 이해하는 버릇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라는 말이 사람을 직접 만나 구체적인 교류를 하는 모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이 사회적 존재라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더 큰 의미가 숨겨져 있다. 아무리 방에만 있다고 해도 사회와 실시간으로 교류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실시간적인 교류는 이들이 주로 하는 온라인 게임을 통해서가 아니다. 게임을 한다는 것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개발자가 제작한 콘텐츠를 접하는 것이다. 또한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컴퓨터가 필요하다. 이 컴퓨터 또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디자인하고 조립한 부품들을 다시 조립하는 과정을 거친다. 또, 컴퓨터를 가동하려면 전기도 필요하다. 이 전기마저 중동에서 수입한 석유를 가공하여 우리나라 어딘가에 있는 사람들이 생산한 전기이다. 또, 유료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값을 지불하고 해당 게임을 구매해야 하며, 이를 어기고 불법으로 내려받았을 경우에는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처벌을 받게 된다. 게임을 하는 순간 이미 생산과 소비라는 사회적 관계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좋든 싫든 사회 안에서 살아간다. 우리가 하는 거의 모든 소비 활동들은 전부 누군가의 손을 거쳐 나온 생산물이다. 반대로 우리가 사회 안에서 하는 활동이 우리가 모르는 다른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직접 마주보고 있지 않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그 자체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우리 누군가는 타인과 어울리거나 사회적인 관계를 맺는 것에 관심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 누구도 우리가 사회 안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항상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