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한 세상이다.
법무부 산하 법무연수원이 발간한 ‘2017년 범죄백서’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6년까지 10년간 전체 강력범죄(흉악)는 52.4% 늘고, 성폭력은 105% 급증했다. 주목할 점은 강력범죄 가운데 성폭력만 늘고 있다는 점이다. 성폭력은 2007년 1만4344건에서 2015년 3만1063건으로 105% 급증했다. 같은 기간 강도 73.6%, 살인 15.7%, 방화 12.8% 감소한 것과 대비된다. 이에 따라 성범죄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도 더욱 매서워지는 듯하다. 성폭력 처벌에 관한 청와대 청원이나 정책 제안이 쏟아지는 추세다.
어떤 측면에서는 이런 흐름을 정의로운 사회를 향한 모습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나는 혹여나 이 같은 상황에서 국민의 시선이 피해자 중심적으로 편향되지는 않을까 두렵다. 범죄의 흉악성에 물들어, 정작 근본적인 발생 여부를 등한시하는 것은 아닐까. ‘피해자의 목소리가 증거’라는 입장이 다소 불편한 이유이다.
성범죄의 특성상 범죄의 구체적인 정황과 증거가 밝혀지지 않을 확률이 높다. 따라서 피해자의 진술이 큰 영향력을 갖지만, 동시에 잘못된 판결로 발생할 피고의 권리도 무시하면 안 된다. 피해자 진술만이 유일한 증거라는 사실은, 유죄와 무죄의 가능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에 따라 법원은 피해자의 측면에서 진술의 신빙성을 함부로 배척하지 말라는 원칙을 적시한다. 심지어 그 진술이 엇갈리거나 시간이 지나며 변화해도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 상황으로 인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고 명시한다. 하지만 이 같은 대처는 유죄의 가능성만을 고려한, 피해자 중심의 인식이다. 난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피고의 권리가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 조치가 필요함과 동시에 무조건적인 진술만이 존중받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법원은 2016도21231 판결에서 “진술 내용 자체의 합리성과 타당성뿐만 아니라 객관적인 정황과 경험칙에 비추어 피해자의 진술 또는 피해자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자의 진술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고, 피고인의 무죄 주장을 배척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신빙성이 있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즉 무조건적인 피해자의 진술만을 토대로 판결을 내리는 것이 아닌 피고의 주장을 무력화할 상황적 관계가 갖추어졌을 때 진술의 타당성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범죄가 절대적으로 부도덕한 것이며,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은 너무나 자명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범죄의 본질적인 것들을 무시하면 안 된다. 계속 물어야 한다. 그 범죄가 왜 일어났는지, 피해자가 옳기만 했는지, 나아가 그 범죄가 정말 존재했는지.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범죄의 처벌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자신의 상황에 상응하는 적절한 사회의 인식을 동반하여 스스로에 대해 반성함으로써, 사회는 발전하며 법의 의의가 발현된다. 흉한 세상은, 사실 그만큼 좋은 세상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