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사회이야기

'경인축'의 어제와 오늘

작성자
유정훈
작성일
2022-03-31

서울과 인천을 잇는 이른바 경인축은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축과 함께 우리나라의 주요 교통축으로 분류되었다. 경인가도부터 시작해 인천항, 경인선 철도, 경인고속도로 등으로 이어지는 경인축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보자.

1. 경인간 교통망의 시초, 경인가도

인천항의 개항이 이루어지기 전부터 경인간의 이동에 이용되던 도로가 있었다. 바로 '경인가도'. 현재의 경인로와는 경유지는 비슷하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당시의 경인가도는 뱅뱅 돌거나 구비구비 언덕을 넘는 등 도로라기 보다는 길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2. 인천항의 개항, 경인선과 수인선 철도의 개통과 수탈

19세기 말, 강화도 조약과 제물포 조약이 체결되며 서해안의 작은 어촌 마을이던 제물포는 인천항이라는 이름으로 개항, 일본인 조계지를 비롯해 각국의 조계지가 인근에 설정되면서 인근이 매우 번화해졌다.

일본주택거리, 차이나타운 등 오늘날에도 개항 시기의 번화되었던 인근의 모습을 박물관이나 벽화, 분위기 등으로 엿볼 수 있겠다.

이후 인천항과 수도 서울을 잇는 물류 운송체계가 필요했기에, 또 식량과 물자의 수탈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 일제는 경인선 철도를 건설했다. 벼농사가 흥하던 여주와 수원을 잇는 수려선 철도, 또 수원에서 출발해 시흥, 소래 등에서 나는 소금을 수탈해 인천으로 들어와 일본으로 나가게끔 된 수인선 철도로 노골적인 수탈은 계속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수인선 철도는 지금의 수인분당선 광역철도가 아닌 90년대에 폐선된 꼬마열차협궤 수인선을 말한다. 남인천역 ( 현 숭의로터리 인근 )부터 송도, 소래, 고잔을 거쳐 수원까지 이으며 소래 염전의 소금 등을 수탈하던 그 철도.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교통의 중심지라는 면에서는 명예로운 타이틀도 있겠지만 수탈의 거점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는 가슴 아픈 역사라고 할 수 있겠다.

3. 경인고속도로의 개통

국내 최초로 완전 개통된 고속도로. 서울 목동과 인천항을 잇는 고속도로로 1960년대 후반에 개통되었다.

비록 30km가 좀 안되는 짧은 길이지만 고속도로 시대와 고도성장시대로의 발판이라는 그 역할이 아주 컸다. 도로교통으로 1시간이 넘게 걸리던 경인간의 이동을 20분 이내로 단축시켜 경인 생활권이라는 이름 하에 서울과 인천은 하나로 묶였다.

원래는 4차로로 건설된 이 도로는 교통량의 폭증으로 90년대 초에 신월~부평은 8차로로, 부평~인천은 6차로로 각각 확장되었다. 또 지속되는 교통량의 증가와 인구의 그야말로 폭발적인 증가로 기존의 경인고속도로의 통행량을 분산시키기 위해 90년대 중반에 제2경인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제2경인고속도로는 인천항에서 시작해 서창~시흥~광명~성남으로 이어지며 서울 시내로 진입하는 도로와 접속되도록 하며 추후 개통된 인천대교와도 이어지도록해 수도권의 큰 광역 교통망이자 공항으로의 고속도로가 된다.

4. 20세기의 인천의 급변, 다시 정리해보기

인천은 개항이라는 큰 변화를 통해 수도권 제일의 항만도시가 되었으며 경인선, 수인선 철도의 개통으로 철도의 중심지가 되었다.

또 경인고속도로와 제2경인고속도로의 개통을 통해 도로교통에서도 중심이 되었다. 이는 당연히 인천의 급격한 인구 증가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우선 일제강점기 때는 각국 조계지가 설정되어 인근에서 장사를 하거나 항만 관련 업무로 인한 인구의 유입이 있었다. 또 광복 이후에 황해도 지역의 피란민이 정착하거나 남부지역에서 이촌 향도해서 인천으로 정착하는 인구도 많았다. 도시는 인구가 증가하면 계속해서 확장되게 되어있다. 인천은 인구가 증가해 직할시로 승격되었고 서울과 인천의 팽창 속에 사이에 낀 김포나 부천의 빠른 도시화로 거대한 경인 생활권이 구축되었다. 따라서 서울로 오가려는 교통수요가 증가해 경인선 철도, 경인고속도로의 이용객이 늘어난 것. 그때까지는 경인선에 이용객이 너무 많아 문이 안닫히자 승객들을 안으로 밀어넣어 원활한 운행이 가능하도록 했던 이색 직업, '푸쉬맨'이 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승객이 몰리던 것은 당시 경인간의 철도교통은 경인선이 유일했지만 지금은 여러 노선으로 이용객이 분산되었기 때문이겠다.

5. 앞으로의 경인축, 인천의 미래

기존의 경인선 철도와 경인고속도로는 도심을 각각 남북과 동서로 단절시켜 원도심 쇠퇴와 지역의 낙후를 촉진한다고 늘상 지적받아왔다. 그래서 추진 중인 것이 바로 각각의 지하화 사업이다. 단절된 원도심을 재생시키고, 기존의 철도와 도로가 있던 자리에는 공원녹지 시설이나 공동주택 등을 건설해 도시재생을 이루겠다는 것. 또 경인고속도로는 인천대로로의 일반화 사업도 꾸준히 진행 중으로 서인천나들목부터 인천항까지는 인천대로로 바뀌었다. 또 서인천나들목에서는 청라국제도시를 관통해 제3연륙교로 연결, 영종국제도시까지 연결되는 봉수대로로 이어지게끔 하는 직선화 사업도 진행 중으로 비록 극심한 정체로 항상 막히는 고속도로지만 앞으로의 수없는 변화로 도약하려 하고 있다.

또 다른 것은 경인간의 철도이동에 새로운 공식이 될 GTX가 있겠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의 약자로서 광역버스 지하철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인천 지역에는 2032년에는 GTX-B노선이 들어오게 된다. 송도국제도시와 인천시청, 부평을 거쳐 부천, 용산, 서울역, 청량리를 거쳐 남양주에 이르는 이 노선은 지금까지 주안역까지 가서 경인선 철도를 이용하거나 광역버스, M버스에 의존하던 인천 남부지역의 교통량을 GTX로 끌어옴으로서 교통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인천신항의 개항, 인천크루즈터미널의 개항 등으로 항만교통 또한 계속 발전되고 있으며 세계로의 현관, 전국 항공교통의 중심인 인천국제공항 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인천은 육해공 모든 교통의 역사 깊은 중심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년 뒤, 30년 뒤 인천의 교통체계에는 어떤 변화가 생기게 될까? 참으로 기대되고도 다양한 생각을 해보게 되는것 같다.


공공누리
OPEN 공공누리 출처표시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의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글
등록된 게시물이 없습니다.
다음글
등록된 게시물이 없습니다.
자료관리담당자
  • 담당부서 청소년정책과
  • 문의처 032-440-2922
  • 최종업데이트 2025-03-12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