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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이야기

500년 조선왕조의 근간, 종묘

작성자
박세빈
작성일
2021-11-29


조선 사회의 근간이 되었던 사상은 무엇인가? 이 질문을 던지면 십중팔구 유교’, 또는 성리학이라는 답이 돌아올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시 했고, 현재까지도 그러한 영향이 남아있는 것은 바로 이다. 자식이 부모에게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이자, 이를 통해 사회의 기본 구성단위인 가정 내에서의 질서를 바로 세워 사회 전체의 질서를 세운다는 이 는 민간인이 아닌 왕실에도 적용되었고, 어떤 면에서는 훨씬 엄격하기도 했다.

이러한 조선의 이념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 바로 종묘이다. ‘종묘라는 단어는 한국의 사극, 특히 조선 배경의 사극을 자주 접한 사람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단어일 것이다. 왕과 신하 사이에 의견충돌이 발생할 경우 종묘사직을 보전하시옵소서하는 말이 빠짐없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종묘가 전래되기 이전, 고조선 시기부터 조상 숭배의 전통은 시작되었다. 또한 고구려의 기록에서 종묘라는 단어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중국 주나라 시기 정립되어 통일신라 시기에 들어온 유교적 형태의 종묘와는 거리가 멀었다.

 

고려 성종 이후 기본 통치 이념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유교는 조선조, 성리학의 발달과 함께 그 꽃을 피웠고, 이는 종묘라는 건축물에 고스란히 담겼다. 종묘는 조선왕조의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셔져있는 곳으로, 이곳에 배향하는 종묘제례가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건축물은 정전, 영녕전 등 여러 건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정전의 경우 가로로 길게 뻗은 모습이 장엄함과 엄숙함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종묘의 성격과 건축물의 아름다움은 전세계적으로 인정받아, 1995년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기준 중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을 만족시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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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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