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해군 석탄고
월미 행궁 터로 추정되는 북사면 일대가 일본 해군 석탄고로 무단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1885년, 일본은 이 부지를 사들이려다 월미행궁 터이기에 매매가 불가함을 알고는 1888년 조선에 석탄고 터를 빌려줄 것을
요구하였다. 조선은 행궁 터가 있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월미도에 다른 나라의 군사시설을 들일 수 없다고 하여 이를 거절하였다.
1891년 조선의 독판교섭통상사무를 맡고 있던 민종묵과 일본의 근둥 대리공사 사이에 임차계약이 체결되면서 이미 일본이
사용하고 있던 월미도 북사면의 4900평을 매년 은화 80냥에 빌려주게 되었다. 이 석탄고는 월미도가 관광지로 본격 개발되면서
철거된 것으로 보인다.
* 첫번째사진
양력으로 1891년 1월 12일 일본은 조선정부를 강압하여 일본해군의 석탄창고 설치를 위한 월미도 기지조차조약을 체결
하였다.월미도 북단의 4,900여평을 연세로 은화 80원에 빌리기로 조약을 맺으면서 일본은 선박급수소까지 설치하였다.
이 지도는 월미도내에서 석탄고와 그 부대시설을 설치하기 가장 좋은 곳을 미리 조사하여 차입 신청할 때 첨부한 지도이다.
* 두번째사진
930년대 인천부에 의해 제작된 월미도와 소월미도의 상세지도이다.
매우 높은 축척을 통해서 월미도의 토지이용 및 건물 용도까지 섬세하게 표시되어 있다. 관광시설 등이 전혀 표시되지 않고 무선전신소,검역소, 스탠다드석유회사창고, 등대와 같은 행정, 산업시설 위주로 표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 행정자료로
이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며,당시의 월미도 토지 이용실태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지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