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경술국치로 조선에서의 통치권을 확보한 일본은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던 월미도를 관광지로 변모시키게 된다
1918년 풍치지구로 지정한 것을 시작으로 군수물자를 운반하던 월미도 중턱 순환도로에 벚나무, 아카시 등을 심어 봄이면 벚꽃이 만발하였다
1920년 월미도 북쪽해안에 해수욕장을 개장한데 이어 수족관, 체육시설, 야외극장, 바다물을 끓여 목욕하게 하는 조탕 등이 들어서고 1930년 초반에는 매립된 터에 호텔등의 편의 시설이 들어서면서 전국 제일의 관광지(임해 유원지)가 되었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 어려운 삶을 살았던 당시 사람들의 삶과는 무관한 일본 사람이나 조선 상류층의 관광지였다. 만주사변등 각종 전쟁을 위한 군비확장으로 극도로 피폐했던 1939년 7월 19일에는 인천에 사람 사태가 났다고 보도할 정도였다.
위 사진은 월미도 조탕 전경과 월미도 유원지 전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