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속으로 | 『인천의 초상 - 시간이 그린 도시, 사람이 남긴 풍경』
인천의 초상
시간이 그린 도시, 사람이 남긴 풍경
바다에서 시작해 섬을 건너
골목을 지나 경계를 따라 걸었습니다.
자유공원 언덕에 나이 든 사진사가 있었습니다.
낡은 카메라를 닦으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만석동 부둣가에서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아흔이 넘도록 굴을 캐는 그 손이 거칠지만 따뜻했습니다.
소래포구의 선장은 새벽 네 시면 어김없이 바다로 나갔습니다.
이십여 년, 하루도 쉰 적 없다고 했습니다.
그들 이야기에 귀 기울였습니다.
그들이 사는 풍경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그 사이 누군가는 떠났고 어떤 공간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살아온 시간은
아직 여기, 이 자리에 남아 있습니다.
인천이라는 캔버스 위에
스무 명의 화가가 붓을 들었습니다.
물감이 번지고 색이 스며들어,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한 폭의 수채화로 피어났습니다.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고
남아 있는 것들을 기억하려는 마음의 기록.
『인천의 초상』
시간이 그린 도시, 사람이 남긴 풍경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인천의 초상』
시간이 그린 도시, 사람이 남긴 풍경
발행인 인천광역시장
발행처 인천광역시 콘텐츠기획관
발행일 2025년 12월
문의 시 콘텐츠기획관 032-440-8302
“이 책은 인천이라는 거대한 캔버스 위에 300만 시민이 붓끝이 되어
그려낸 가장 아름다운 자화상입니다.
도시의 외형이 바뀌어도 그곳에 스민 시민 여러분의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치열했던 삶이 곧 인천의 역사입니다.”
- 인천광역시장, 발간사 중에서
“기록은 쌓일수록 깊어지고, 기억은 겹칠수록 단단해집니다.
그 기록과 기억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습니다.
이 책은 화려하지 않지만 진심이 있고,
조용하지만 오랜 울림이 있는 무명들의 노래입니다.”
- 유동현 전 인천시립박물관장, 추천사 중에서
“인천은 고정된 장소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나아가는 ‘현재 진행형의 도시’입니다.
이 책을 통해 각자의 기억과 감각 속에 자리한
저마다의 인천을 새롭게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 고제민 작가, 추천사 중에서
“‘지금 처한 장소의 주인이 나고,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진리의 자리.’
인천에 살면서도 정작 인천의 가치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에게
명품 도시 인천을 새롭게 깨닫게 하는
지침서가 되었으면 합니다.”
- 유사랑 커피 화가, 추천사 중에서

김재열, 「인천만개仁川滿開」
488×112cm, 종이에 수채, 2013
자유공원 남쪽 기슭에서 내려다본 풍경. 시간이 켜켜이 고인 집들 사이로 붉은 지붕과 푸른 지붕, 녹슨 함석이 햇살을 받아 빛난다. 그 너머로 인천 앞바다가 펼쳐지고 섬들이 아득히 떠 있다.
풍경, 그리고 사람

소래일기
기다림의 바다
소래포구 | 김영임
삼십여 년을 새벽마다 선창으로 나갔다. 남편이 바다로 가고 아들이 그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의 뒷모습이 검은 바다 너머로 아득해질 때마다 말없이 눈물을 삼켰다. 안개가 짙은 날에는 잠들지 못했다. 파도가 높다는 말이 들리면 가슴이 먼저 내려앉았다. 그래도 참아냈다. 돌아올 때까지, 그저 기다렸다.
나이 육십 고개를 넘으니 젊을 때는 몰랐던 통증이 밀려온다. 뼈끝이 시리고 허리가 휜다. 그래도 손을 놓을 수 없다.
“바다가 야속할 때도 있었어요. 그래도 원망은 못 해요. 평생 이 바다가 우리 식구들 먹여 살렸으니까요.”
포구의 밤은 짧다. 새벽빛이 차오르기 전, 그는 다시 선창으로 향한다. 바다로 간 사람들의 뒷모습을 가슴에 묻은 채.
하나. 바다에서 시작하다
만석동·개항장·월미도·연안부두·소래포구

교동이발관

인생의 순리
교동도 | 나의환, 방은녀
사십여 년,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약을 지었다. 시장 골목의 작은 약방. 아픈 사람이 오면 약을 짓고, 돈이 모자라면 말없이 외상을 내주었다. 곧 오겠노라 손 흔들며 돌아서는 뒷모습을 끝까지 배웅했다. 한 번이라도 더 얼굴을 보려는 마음이었다.
약방인지 사랑방인지 분간이 안 됐다. 밤새 뒤척였다며 아침 첫 발걸음으로 찾아오는 사람, 밥 잘 먹고 건강해야 한다며 잔소리를 보태는 할머니, 그 사이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몇 해 전, 다시 찾았을 때 할아버지는 혼자였다. 할머니는 큰 병원 가야 산다며 자식들 곁으로 갔다고 했다.
“나도 곧 가겠지. 사람 사는 게 다 그래. 이게 인생의 순리야.”
목소리는 낮고 담담했다. 그 골목을 지날 때면 아직도 그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지금은 두 사람 모두, 이 섬에 없다.
둘. 섬의 시간
교동도·영종도·동검도·강화 장화·내리·남촌·도림동


용동 권번 돌계단 골목
평생, 그 자리
용동 | 이순희
스물다섯에 시집와 칠십 평생, 이 골목을 벗어난 적이 없다. 연탄불에 육수를 올리고 반죽을 치대고 면을 썰었다. 끓여 내기가 무섭게 손님이 밀려들던 시절이 있었다. 주름이 깊어지고 허리가 굽어도 멈출 수 없었다.
자식들은 오래전 도시로 떠났다. 대신 단골들이 왔다. 머리가 하얗게 센 얼굴들, 젊어서부터 이 집을 드나들던, 식구 같은 사람들이다.
“내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어. 자식들한테 미안하고, 창피해.”
말은 그리해도 그래도 쉽사리 문을 닫지 못했다. 손님이 끊긴 오후, 홀로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제 팔십이 넘었다. 굽은 등 위로 햇살이 나지막이 내려앉는다.
그는 아직 그 자리에 있다.
셋. 도시의 속살
도화동·용동·송현동 중앙시장·차이나타운·간석동


송도어촌계
아버지를 삼킨 바다
송도 먼우금 | 오세철
열두 살에 아버지를 바다에서 잃었다. 1976년, 한 해를 한 달 남긴 겨울이었다. 짙은 해무가 온 바다를 뒤덮은 날. 서울 고모에게 줄 갯것 캐온다며 집을 나서던 뒷모습이 마지막이었다.
다섯 형제가 아버지 하나에 매달려 살았었다. 살아내야 했다. 어머니는 바다 근처에도 못 가게 했다. 그래도 그는 아버지를 삼켜버린 그 갯벌에서 악착같이 삶의 희망을 캐냈다.
어느덧 예순이 됐다. 아직도 이 바다를 떠나지 못한다. 고작 스티로폼 하나에 몸을 싣고 새벽에도 한밤에도 갯벌로 나간다. 하루를 버텨도 손에 쥐는 건 이삼만 원. 그래도 품을 내어주는 바다가 고맙다.
“바다 아니면 내가 뭘 하겠어.”
2027년, 어업면허가 끝나면 이 바다도 사라진다. 아버지가 잠든 바다, 자신을 먹여 살린 바다가 콘크리트 아래 묻힐 것이다. 그래도 오늘, 물때는 어김없이 바다를 부른다.
넷. 경계에 서다
강화도 북단·노동의 시간·송도 먼우금·송도역전시장·정서진
스물한 번째 스케치
스무 개의 풍경을 마음에 그렸습니다.
그리고 여기, 한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당신의 인천은 어디이며,
당신이 기억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제, 당신이 기억할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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