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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줌인 | 병역명문가 특집

2026-05-22 2026년 5월호

“우리는 병역명문가다!”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 향토예비군 이야기가 아니다. ‘용사’였던 ‘가족’들의 이야기다. 4월의 어느 날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세 가정의 남자들이 한데 모였다. 한 가정에서는 6·25전쟁 당시 전장을 누비던 할아버지와 그의 아들, 손자가 참석했다. 가족을 대표해 한 명만 참석한 가정도 있었다. 참가 인원은 제각각이었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각 가정마다 자부심이 대단했다.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대를 관통하는 자부심이다. 이들은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을 둘러본 뒤 기념사진을 찍으며 힘차게 화이팅을 외쳤다. “우리는 병역명문가다!” 


글. 임성훈 본지 편집장   사진. 인천시병역명문가회


 

병역명문가회 회원들(사진 왼쪽부터 박세호·문흥기·전찬기·한상헌·박한준·한기성·한재광 회원)



한상헌 씨 가족


1대 한상헌(사진 왼쪽) - 수병 1953년 진해에서 동기생과


최근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을 찾은 한상헌 씨


2대 한기성(사진 왼쪽에서 첫번째) - 1986년 TS훈련


3대 한재광(사진 왼쪽) -  훈련병 각개 전투 교육 중


한재원(사진 왼쪽) - 전역 기념 사진


인천의 이색 병역명문가

“대를 잇는 헌신, 평화의 뿌리가 되다.”


# 할아버지가 지킨 바다, 손자가 지킨 육지

1대 한상헌 1934년생, 2대 한기성 1964년생, 3대 한재광 1994년생. 

공교롭게도 할아버지와 아들, 큰 손자가 각각 30년 간격으로 이 땅에 태어났다. 그리고 이 땅에 태어난 남자에게 주어지는 국방의 의무를 3대에 걸쳐 마쳤다. 막냇손자인 재원 씨까지 포함하면 4명이다.

할아버지 한상헌 씨의 군 복무기간은 33년을 훌쩍 넘는다. 6·25전쟁 발발 후 해군에 입대한 이래 준위로 전역하기까지 월미도 앞바다를 비롯해 강원도 묵호, 경남 진해 등 삼면의 바다에서 거친 파도를 갈랐다. ‘보국포장’과 ‘호국영웅기장증’은 푸른 영토에 새긴 그의 항적(航跡)이자 명예다. 인천상륙작전기념관에 인천시병역병문가회 회원들이 모이던 날, 이 노병은 금빛 단추의 제복에 ‘6·25 참전유공자’ 모자를 꾹 눌러쓴 모습으로 나타났다. 제복에는 훈장이 달려 있었다. 깊게 주름진 얼굴이지만 눈빛은 강렬했다. 노병과 자유 수호의 탑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한상헌 씨가 바다의 파수꾼이었다면 아들과 손자는 육지의 파수꾼이었다. 아들 한기성(인천시동구청소년수련관장) 씨와 손자 재광·재원 씨는 이 소금기 어린 명예를 육지로 이어받아 모두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다.


# 현역이 9명

이윤호(인천인재평생교육진흥원장) 씨 가문은 지난 2023년 열린 병역명문가 시상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병역이행 가족 수가 유달리 많았기 때문이다. 6·25참전용사인 아버지(이관식·1대)에 이어 본인 포함, 형(병만)과 동생(종호) 등 2대 3명, 그리고 아들 2명(돈욱·돈휘)과 조카 3명(돈재·돈혁·돈정)등 3대 5명이 모두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총 9명으로 육군이 7명, 해병대가 2명이다. 6·25전쟁 당시 경기도 가평 등지에서 중국인민지원군과 용문산 전투를 치른 아버지를 비롯해 연천, 철원에서 백령도에 이르기까지 3대의 근무지가 그야말로 ‘전국구’다. 그만큼 군복무 시절에 축적된 얘기도 많을 터이다. 여자들에게 군대 얘기는 고문(?)이다. 군대 얘기는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 가문의 며느리들은 집안 행사가 열릴 때마다 제발 군대 얘기가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것 같다. 하지만 이같은 바람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든든한 가문의 일원이기에 가능하다는 사실도 잘 알 것 같다.



# 병무청이 직접 달아준 명예


전찬기(사진 왼쪽)씨가 병역명문가 문패를 달아주기 위해 방문한 최구기 당시 인천병무지청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병무청 제공)


2021년 3월 4일은 전찬기(인천대학교 도시공학과 명예교수) 씨 가문의 가장 뜻깊은 기념일이다. 인천병무지청이 직접 가문을 방문해 병역명문가 문패를 달아주었기 때문이다. 병무청은 병역명문가 선양사업의 일환으로 그해부터 병무청에서 문패를 제작하여 교부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2015년에 병역명문가로 선정된 전찬기 씨 가문에서는 1대 전유찬, 2대 찬기·천기·명기, 3대 보원·홍의 등 6명이 현역으로 병역을 마쳤다. 카투사에서 특공대까지 다양한 군복무 이력이 눈길을 끈다.

전찬기 씨는 황조근정훈장을, 동생 명기 씨는 은탑산업훈장을 수훈하는 등 형제가 차관급 훈장을 받은 진기한 기록도 이 가문의 자랑거리다. 전찬기 씨의 처가도 병역명문가 못지않다. 장인인 故 김규태 박사는 서울대 의대 1회 졸업 후 군의관으로 입대해 6·25전쟁에 참전, 10여 년 군복무 후에 중령으로 예편했다. 충무, 화랑 무공훈장을 수훈해 동작동 현충원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사진 왼쪽부터 박한준·김광식·전찬기·권오선·송영석·한기성·장정구 회원


병역명문가는

병역명문가에게 군 복무 기간은 ‘멈춰버린 시간’이 아니라 ‘가문의 영광을 축적한 시간’이다.

병역명문가란 할아버지부터 그 손자까지의 직계비속, 즉 1대부터 3대까지의 직계비속 남성 모두 현역복무 등을 성실히 마친 가문을 말한다. 단, 3대째 가족 중 남성이 없고 「군인사법」 제7조에 따른 군 의무복무기간을 마친 여성이 있는 가문의 경우를 포함한다. 조부와 부·백부·숙부 그리고 본인·형제·사촌형제 등 조부의 직계비속 남성을 망라하는 만큼, 결코 가벼운 자격조건이 아니다. 

병역명문가를 선정, 예우하는 병역명문가 선양사업은 병무청 주도로 지난 2004년부터 시작됐다. 현재 전국적으로는 2만3000여 가문이 병역명문가로 선정돼 있다. 이 중 인천의 병역명문가는 올해 3월 현재 1,372가문이다. 이들 가문의 병역이행자는 6,355명. 병역명문가에게는 공공시설 이용료 감면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이들 병역명문가들이 얼마 전 협의체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지난 3월 13일 송도BT타워에서 발대식을 가진 ‘인천광역시 병역명문가회’다. 회장은 박한준 인천경제자유구역협의회 상임대표, 사무처장은 송영석 청운대학교 겸임교수, 상임고문은 전찬기 인천대학교 명예교수가 각각 선출됐다. 이처럼 지역단위의 병역명문가 협의체가 출범한 것은 전국적으로도 이례적이다. 이들은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한 사람의 자긍심을 높이고, 이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는 일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INTERVIEW  박한준 인천시병역명문가회 회장

박한준 회장이 인터뷰 장소로 택한 곳은 인천상륙작전기념관에 전시된 M47 전차 앞이었다. 

1980년대 강원도에서 육군 기갑병으로 근무할 당시 직접 다루었던 전차라고 한다.


“군필자를 존중하는 문화, 

인천시병역명문가회가 앞장서겠습니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동유럽의 전선에서는 수많은 젊은이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 소식까지 수시로 언론에 오르내리며 한반도의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다.

박한준 인천시병역명문가회 회장은 “그 어느 때보다 평화의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오는 시기”라며 “이럴 때일수록 젊은이들에게 투철한 안보 의식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보 의식은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닐 터다. 군복무를 성실히 수행한 사람이 다양한 혜택을 받는다면 젊은이들 사이에서 군대는 꼭 갔다 와야 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확산될 것이고, 실제로 병영생활을 통해 안보의 중요성을 체감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는 인천시병역명문가회의 출범 배경과도 맞닿아 있다. 

“우리 집의 경우, 몇 해 전 작고하신 아버지(故 박용대)와 동생 식구를 포함해 6명이 군복무를 마쳤습니다. 육·해·공이 다 있어요. 병과가 다양한 만큼 집안 행사 때 모이면 군대 얘기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모두가 현역으로 복무했다는 자부심이 상당해요. 무엇보다 평화의 수호자였다는 사실이 우리 가문의 긍지입니다. 이런 정서를 사회, 특히 요즘 젊은이들과 공유하고 싶어요.” 

박한준 회장은 이를 위해 다양한 사업 계획을 구상 중이다. 군부대와 훈련소 방문을 비롯해 병역명문가의 날 지정 등이다. 회원들로부터 아이디어도 접수하고 있다. 

“병역명문가는 전국에 다 있지만, 지역에 협의체가 구성된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인천시병역명문가회가 출범한 만큼, 군에 대한 인식개선을 선도하는 모범사례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회원가입 문의

이메일 hanjun-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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