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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소리로 기억한 시간-답동성당 종소리

2026-01-31 2026년 2월호

답동성당 종소리


글. 안병진 (90.7 경인방송 편성제작국장)

사진. 유동현 (전 인천시립박물관장)




답동성당의 종


답동성당 종소리


1978년 2월 21일. 인천 동일방직 여성노조원 똥물 투척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양진채 작가의 소설 「언제라도 안아줄게」에는 답동성당 종소리가 ‘등장’한다. 모멸과 좌절을 겪은 여공 미은, 선자, 명숙을 위로하고 안아주고 함께 울어 준 성당의 종소리. 소리에 등장이란 표현을 쓴 이유는 지금은 소리가 퇴장했기 때문이다. 산업화 시대 여공들이 은퇴했듯, 1990년 초 도시화가 심화 되며 소리는 소음으로 분류되어 사라졌다. 지금 우리가 도심에서 교회와 절의 종소리를 들을 수 없는 이유다.


인천에서 라디오 일을 오래 하며, ‘인천의 소리’를 녹음해왔다. 인천항 뱃고동, 백령도 콩돌해변, 부평지하상가, 연안부두 공판장, 강화성당 범종, 전등사 도량석, 도둑처럼 몰래 내리교회 종도 치고 박물관에 있는 자유공원 사이렌도 꺼내 녹음했다. 소리가 있고 이야기가 있는 곳에 귀를 기울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끝내 녹음하지 못한 소리는 답동성당 종소리이다. 1930년대 인천 8경으로 꼽았다는 은은하고 고고한 답동성당의 종소리. 언젠가 한 번 그 온화한 소리를 다시 듣고 싶다. 종소리는 사라졌지만 세 개의 종은 아직 종탑에 살아있다. 소설에서 종을 치는 ‘종지기’ 태오의 모델, 이종복 시인도 신포시장 성광떡집에서 떡을 빚고 있다, 미은, 선자, 명숙 여공들도 아직 우리 곁에 있다. 사라진 것이 아니다.


링크는 이용현 베드로 신부님의 촬영이다. 답동성당 종과 소리를 잠시나마 들을 수 있다.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위로하고 품었던 너그러운 소리. 인천시민의 날이나 제야의 밤에 한 번쯤 종을 울려보면 어떨까. 그런 소리가 그리운 2026년 2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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