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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특별 기획 | 인천시향 창단 60주년

2026-07-06 2026년 6월호

환갑 맞은 인천시향

선율로 써 내려간 인천의 현대사


글. 임성훈 본지 편집장  사진. 인천시립교향악단


인천시립교향악단



인천시민관에서 아트센터인천까지

1966년 6월 1일 오후 7시 30분, 인천 중구의 ‘인천시민관’에서 웅장한 교향악이 울려 퍼졌다. 초대 상임지휘자 김중석의 지휘 아래 ‘인천시민행진곡’과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서곡’ 등 10여 곡이 초여름의 공기를 갈랐다. 시민들은 인천시립교향악단(이하 인천시향)이 처음 선사하는 하모니에 귀를 쫑긋 세우며 음악 속으로 녹아들었다. 첫 연주회가 열린 인천시민관은 지금의 인성여고 다목적관 자리에 있던 인천공회당이 6·25전쟁 중 포격으로 파괴된 후, 미군의 도움으로 새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연주회장에 깃든 애절한 역사만큼이나 이날의 무대가 완성되는 과정 또한 녹록지 않았다. 공연을 앞두고 단원들은 활이나 스틱 대신 망치를 들고 공연장을 직접 수리해야 했다. 공연 당일, 그 귀한 그랜드피아노를 구해 트럭으로 실어 나른 이들도 단원들이었다. 악보를 올려놓을 보면대조차 변변치 않던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2026년 5월 15일 같은 시각, 아트센터인천 콘서트홀에서는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이 울려 퍼졌다.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는 클래식 전용 연주홀에서 열린 제443회 정기연주회였다. 

인천시민관에서 시작된 인천시향의 주 활동무대가 인천시민회관과 인천문화예술회관을 거쳐 아트센터인천으로 자리를 옮기는 동안, 인천의 역사 또한 변천에 변천을 거듭했다.

인천시향의 60년사는 단순히 한 악단의 기록이 아니다. 인천이라는 도시가 예술과 함께 어떻게 성숙해 왔는지를 증명하는 생생한 현대사다.



인천시향 제5회 정기연주회 모습


피아니스트 백건우 초청연주회(1998)


인천의 성장을 노래한 인천의 배경음악

인천시민관에서 성공적인 창단 연주회를 마친 인천시향은 보름 후인 1966년 6월 24일, KBS홀에서 ‘슈베르트 미완성 교향곡’을 연주하며 전국에 창단 소식을 타전했다. 서울, 부산, 대구에 이어 인천의 음악적 무게감을 만천하에 드러낸 일종의 ‘선언’이었다. 이후 인천 역사의 변곡점에는 언제나 인천시향의 선율이 흘렀다. 어떤 때는 축가였고, 어떤 때는 시민에게 전하는 메시지였다.

1968년은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천에 중구·남구·동구·북구 등 4개 구가 처음 설치된 해다. 그해 1월 12일, 인천시향은 인천시민관에서 ‘인천시·구별 실시 축하기념 제5회 정기연주회’를 가졌다. ‘모차르트 호른 협주곡’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3번’ 등이 주요 레퍼토리였다. 솔리스트와 오케스트라의 협연. 어찌 보면 ‘부분과 전체’의 조화를 암시하는 듯한 선곡이었다. 시와 구처럼. 오는 7월 1일 11개 군·구로의 본격적인 행정체제 개편을 앞둔 지금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실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1981년 7월 1일, 인천은 경기도에서 분리되어 ‘직할시’로 승격하는 대전환기를 맞이했다. 승격 전날인 6월 30일, 인천시향은 인천시립합창단, 부평감리교회 성가대 등과 함께 시민회관에서 대규모 경축 예술제(제71회 정기연주회)를 개최하며 온 도시를 축제 분위기로 달궜다. 이듬해 12월 18일에는 ‘인천상륙작전기념관 건립 모금 음악회’(제84회 정기연주회)를 열어 시민들의 마음과 정성을 한데 모으기도 했다. 이 힘이 보태어져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은 2년 뒤인 1984년 9월 15일 마침내 문을 열었다. 

1983년 10월 6일에는 인천에서 제64회 전국체전이 개최돼 6일간의 열전에 돌입했다. 인천 개항 100주년과 맞물려 도시는 그야말로 축제의 도가니였다. 인천시향은 전야제인 10월 5일과 개막 당일인 6일, 이틀 연속으로 제90회 정기연주회를 열어 축제의 서막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교육사에 한 획을 그은 현장에도 이들의 연주가 있었다. 1994년 3월 3일 열린 ‘인천대·인천전문대 시립화 축하공연’은 의미가 남달랐다. 파행적 학사운영에 맞선 교수와 학생 등 학내 구성원의 개혁 의지와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이뤄낸 값진 승리를 인천시향은 승리의 하모니로 축하했다. 

인천이 세계적인 국제도시로 거듭나는 현장에서도 인천시향은 든든한 문화 사절단이었다. 2001년 3월, 인천국제공항 개항을 일주일 앞두고 열린 기념 연주회에서는 인천시향의 반주에 맞춰 ‘인천환상곡’이 울려 퍼졌다. 이날 행사에는 인천시립합창단은 물론, 수원과 안산의 시립합창단도 무대에 올랐다.

전 국토를 붉게 물들인 2002년 FIFA 월드컵의 열기도 음악으로 먼저 지폈다. 인천에서의 첫 경기(코스타리카 대 튀르키예) 전날인 6월 8일, 인천문학경기장 야구장 무대에 오른 인천시향은 베르디의 ‘축배의 노래’ 등을 연주하며 한바탕 축제를 벌였다. 이 축배의 기운 덕분이었을까. 5일 뒤 같은 경기장에서 치러진 조별예선 3차전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박지성의 환상적인 결승 골에 힘입어 포르투갈을 1대0으로 꺾고 극적으로 16강 진출을 확정 지었다. 인천시향이 미리 든 축배가 기적으로 이어진 셈이다. 이후에도 인천세계도시축전(2009년) , 인천아시안게임(2014년) 등 인천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대규모 국제 행사의 중심에는 언제나 인천시향이 있었다. 



아트센터 인천 콘서트홀에서의 공연 모습


대한민국 격동의 순간을 함께하다

인천시향의 시선은 지역 사회를 넘어 국가적 대사의 순간으로도 향했다. ‘UN 가입 경축 제143회 정기음악회’(1991년) , ‘광복 50주년 기념 경축공연’(1995년) , ‘정전 60주년 평화음악회’(2013년) , 그리고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한미수교 130주년 기념 콘서트’(2014년)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음악을 통해 범국가적인 평화와 축하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타전했다. 

지난 60년 동안 인천시향이 빚어낸 선율은 인천이라는 도시의 성장 기록이자, 대한민국이 걸어온 역사적 순간들의 배경음악이었다.


공연연보로 엿보는 인천시향의 발자취


인천시향이 가장 많이 찾아 간 곳은 ‘학교’

인천시향은 정기연주회 외에도 기획연주회를 비롯해 기획연주회, 찾아가는 연주회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시민 삶에 파고들고 있다. 올해부터는 관객들이 음악의 완성과정을 직접 볼 수 있는 ‘과정음악회’까지 선보이며 소통의 깊이를 더하는 중이다.

그중에서도 찾아가는 연주회는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허물고 시민과 교감하는 최고의 프로그램 중 하나다.

‘초청 연주회’ 등 이전에도 비슷한 내용의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공연 연보에 ‘찾아가는 연주회’라는 이름으로 기록이 기재되기 시작한 것은 1998년부터다. 그 해부터 2024년까지의 26년간의 공연 연보를 분석한 결과, 인천시향의 발걸음이 가장 많이 머문 곳은 다름 아닌 ‘학교’였다. 이 기간 열린 총 412회의 찾아가는 연주회 가운데 학교에서 열린 무대는 224회로 절반을 웃돈다. 학교별로는 중·고등학교가 136회로 가장 많았고 초등학교 76회, 대학교 12회로 뒤를 이었다. 이와 별도로 소외되는 아이들이 없도록 대안학교나 특수학교에서도 10회 이상 찾아가는 연주회가 열렸다.

청소년수련관 등 청소년 관련 시설에서의 공연까지 더하면 인천시향이 만난 최대 관객은 단연 ‘청소년’이다. 창단 초기, 변변한 무대가 없어 인천여상, 동산고 등 관내 학교 강당을 전전하면서도 아이들의 가슴에 음악의 씨앗을 뿌렸던 그 고귀한 전통이 60년이 흐른 지금까지 한결같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춘 발걸음도 흥미롭다. 2010년 이후에는 아파트에서도 인천시향의 선율이 울려 퍼졌다. 아파트 단지 내에 모두 35차례 찾아가는 연주회가 열렸는데 가는 곳마다 주민들의 환호와 박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밖에 병원, 사회복지시설, 군부대, 인천지방법원, 인천지방검찰청, 소방서 등에도 인천시향의 선율이 파고들었다. 


아파트에서 열린 ‘찾아가는 연주회’ 모습


인천시향이 사랑한 교향곡은?

1966년 6월1일 첫 연주회를 통해 창단을 알린 인천시향은 지난 5월15일 제443회 정기연주회를 열었다. 

인천시향이 443번 정기연주회를 여는 동안 단원들의 호흡을 가장 많이 모으고 관객들에게 가장 자주 선물한 교향곡은 무엇일까.

영예의 1위는 거장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이었다. 이 곡은 제64회 정기연주회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이래 모두 15회 연주됐다. 흥미롭게도 두 번째로 많이 연주된 교향곡도 차이콥스키의 손에서 탄생한 6번 ‘비창’으로 총 14회 연주됐다.

차이콥스키의 뒤를 이어서는 악성 베토벤의 강세가 뚜렷했다. 베토벤 3번 ‘영웅’과 베토벤 9번 ‘합창’은 각각 13차례 무대에 올랐다. 베토벤 5번 ‘운명’(11회)과 베토벤 7번(10회) 또한 각각 10회 이상의 연주되며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작곡가 별로 보면 베토벤이 가장 많이 초대된 셈이다. 이밖에 두 자릿수 이상의 연주 횟수를 기록하며 인천시향의 무대를 풍성하게 채운 단골손님으로는 드보르자크 8번(13회), 브람스 4번(12회), 브람스 1번(11회), 브람스 2번(11회), 슈베르트 8번 ‘미완성’(11회), 드보르자크 9번 ‘신세계’(10회) 등이 있었다. 이번 조사는 지난 2016년 창단 50주년 당시 언론에 보도된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이후 축적된 10년간의 공연 연보를 토대로 이뤄졌다.


인천시향이 사랑한 작곡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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