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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인천에서 인천으로 | 한 평, 인천

2026-07-06 2026년 6월호

한 평, 인천 


몸 하나 

겨우 들어가는 자리.

그 한 평이, 누군가의 

평생이었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사진. 에이이미지스튜디오 165


삼십 년을 시장 골목에서 머물렀다. 그 한 평에서 두 아이를 키웠다.


‘딸랑─’ 새벽 시장 골목, 작은 종 하나가 흔들린다.


종이컵에 담긴 커피가 손에서 손으로 건네진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어떤 사람은 설탕을 반만 넣고, 어떤 사람은 프림을 빼 달라고 한다. 

여기 저마다의 입맛을 삼십 년 가까이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 

아직 잠에서 덜 깬 시장 안으로 커피 향이 번지고, 

골목 첫머리에 서린 냉기가 조금씩 걷힌다.


‘딸랑─.’, 이 작은 종 하나가 

삼십 년, 목소리를 대신했다.


커피 한 잔에 사백 원, 지금은 

칠백 원. 삼십 년이 그렇게 지났다.



시장에서 멀지 않은 지하상가. 멈춰있던 에스컬레이터에 불이 켜진다. ‘철커덕─’ 셔터가 올라간다. 

형광등 불빛 아래 오래된 시계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어떤 것은 아직 시간을 붙들고 있고, 어떤 것은 이미 오래전에 멈췄다. 

주인이 찾아가지 않은 시계들이다. ‘째깍─, 째깍─.’ 


빈 통로에 초침 소리가 낮게 울린다. 

오래된 기계기름 냄새가 눅눅한 공기 사이에 엉겨 있다.


바깥세상은 아직 어스름하다. 희뿌연 새벽 공기 사이로 첫차가 지나가고, 부두 쪽 도로로 컨테이너 트럭들이 줄지어 빠져나간다. 다리가 놓이고, 바다가 메워지고, 

높은 건물들이 올라가고 신도시가 세워졌다. 

인천은 멈추지 않는, 늘 움직이는 도시였다. 

그 안에서 오래도록 같은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손님의 발길이 줄어도 다음 날이면 가게 문을 열었다. 

몸이 아파도 새벽이면 어김없이 나왔다. 

누군가는 삼십 년을 시장 귀퉁이에서 보냈고, 

누군가는 사십 년을 지하에서 초침 소리와 함께 보냈다. 

한자리에서 아이를 키우고, 빚을 갚고, 하루를 버텨냈다. 찾아오는 얼굴을 하나씩 기억했다.


몸 하나 겨우 들어가는 자리.

그 한 평이, 누군가의 평생이었다.


 

사십 년 동안 고장 난 시계를 매만졌다. 그 한 평이 한 사람의 전부였다.


멈춘 시간 사이에서, 

오늘도 그의 손이 움직인다.


이십 년 된 공구. 손에 익은 무게가 느껴진다.



째깍─, 사십 년


진열장 안에 시계 하나. 뒷면에 날짜가 적혀 있다. 2022년 

3월. 맡긴 지 4년이 지났지만 주인이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시곗줄 위로 먼지가 얇게 내려앉아 있다. 문재천 어르신이 시계를 다시 진열장 안으로 밀어 넣는다.

“버릴 수도, 딴 사람 줄 수도 없어. 주인이 찾아올 수 있잖아.”

그가 확대경을 끼우고 다른 시계를 집어 든다. 눈 가까이 바짝 가져간다. 초침 끝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드라이버를 손에 쥔다. 손잡이가 손바닥 모양으로 움푹 패여 있다. 

20년 넘게 쓴 것이다. 작은 나사를 집는 손끝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새동인천지하도상가 시계 수리점 ‘미주사’. 형광등 불빛이 진열장 유리 위에 고르게 내려앉는다. 가게 안이 단정하다. 오래된 것들이 제자리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한켠에는 화분 하나가 있다. 조카가 부자 되라고 사다 준 ‘돈나무’다. 햇빛 한 줄기 들지 않는 지하에서 긴 세월을 함께 버텼다. 

올봄, 꽃이 폈다. 


 

사십 년, 멈춘 시간을 되돌렸다. 오늘도 웃는다.


주인이 찾아가지 않은 시계들.  

그때가 2022년 3월, 오늘도 그 자리에 있다.



‘째깍─, 째깍─.’

멈춘 시간 사이에서

오늘도 그의 손이 움직인다.

‘주인이 찾아올 수 있으니까’,

주인 잃은 시계를 

가게 한켠에 그냥 둔다.



이 자리에서만 십오 년. 동인천지하도상가 시절까지 더하면 사십 년이 넘는다.

“집에서 놀면 뭐 해. 그냥 나오는 거지.”

1980년대, 동인천지하도상가는 지금과 달랐다. 어깨를 부딪치며 지나갈 정도로 사람들로 넘쳤다. 소매치기가 들끓을 정도였다. 상인들끼리 돈을 걷어 놀러 갈 만큼 장사가 잘됐다. 지하상가 밖으로 나가면 시계골목이 따로 있었다. 고장 난 시계를 들고 오는 사람, 새 시계를 사러 오는 사람, 지나가다 진열장 앞에 멈춰 서는 사람들이 종일 끊이지 않았다. 작업대 위에는 수리를 맡긴 시계가 늘 대여섯 개씩 놓여 있었다.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물건을 가져다 팔던 시계 회사가 부도났다. 외상으로 넘긴 물건값을 받지 못했다. 거래처 문을 두드려도 이미 닫혀 있었다. 서울 송파구에 살던 집을 내놨다. 그 돈으로 빚부터 갚았다.

“10원 한 장 안 떼먹었어.”




오늘도 찾아온 얼굴들. 지하도상가 시곗방은 사십 년째 이렇게 따뜻하다.


삶과 꿈, 

이 모든 것이 이 한 평 안에 있다.



그 뒤로도 손에서 시계 일을 놓지 않았다. 때마침 아는 사람이 자리를 하나 내놨다.

“형님, 나 그만두려니까 이 일 하려면 해요.”

카파 시계 서비스센터 자리였다. 달리 갈 데도 없었다. 그렇게 2002년, 새동인천지하도상가 지금 이 자리에 ‘미주사’ 간판을 걸었다. 처음 몇 년은 가게 불 꺼질 틈이 없었다. 작업대 위에 시계가 쌓여 있어도 손이 모자랐다.

“이 일이라도 붙들고 있었으니까 여직 먹고살았지.”


며칠 가게 문을 열지 않으면 단골에게서 전화가 온다.

“야, 너 어디 아팠냐? 죽어뿐 줄 알았네.”

동인천지하도상가 시절부터 얼굴을 보던 사람이다. 정년퇴직을 한 지금도 하루에 한 번은 지하상가를 들른다. 어디서 쇠붙이 하나 주워 와서는 “이거 쓸 수 있는 거냐” 하고 툭 내려놓고 간다. 문 씨가 말없이 받아 든다.

이 공간이 좁지 않냐고 물었다. 그가 진열장 안 시계들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오래전에 멈춘 것도 있고, 아직 초침이 가는 것도 있다. 

“내 마음에는 이것이 딱 맞아. 너무 크게 해놓으면 사람 속만 타. 조그마하게 하는 게 마음 편하지. 크게 일 벌여놓고 어려워진 사람들을 내가 많이 봤어.”

말끝에 짧은 웃음이 번진다. 

지금은 예전만큼 손님이 많지 않다. 그래도 매일 아침이면 지상에서 지하로 내려온다. 눈은 침침해지고 손끝은 무뎌져 간다. 고칠 수 있는 것은 고치고 어려운 것은 윗집 수리점으로 올려보낸다.

“못 고치는 걸 억지로 두드리다 보면 버리게 돼. 그러면 안 되지.”


오후 여섯 시. ‘철커덕─.’

벌써 셔터가 내려간다. 마지막 시계를 진열장 안으로 넣고 오래된 공구를 하나씩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낡은 형광등 불빛이 유리 위에 희미하게 걸려 있다. 2022년 3월. 먼지 쌓인 시계가 오늘도 그 자리에 남아 있다.

“오늘 장사도 끝났네.” 

문 씨가 사람이 없는 지하상가 통로를 천천히 걸어 나간다.

‘째깍─.’

아무도 없는 가게 안에서 초침 소리만 머문다.

지하 긴 통로 끝, 오래된 초침 소리가 머문다.



+ + 

딸랑─, 삼십 년


해 뜨기 전 신기시장 골목. 아직 문 열지 않은 가게들 사이로 커피차 하나가 들어온다. 바퀴가 젖은 시장 바닥을 밀고 지나간다. 은색 주전자 뚜껑이 달각 열리고 뜨거운 김이 확 올라온다. 노란 조끼를 입은 마순자 할머니가 한 손으로 커피통을 붙들고, 다른 손으로 종을 한 번 흔든다. ‘딸랑─.’

생선 비린내와 젖은 채소 냄새가 깔린 골목에 커피 냄새가 섞인다. 가게 문 열 준비를 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돌아본다.

처음 커피차를 끌고 시장에 나왔을 때였다. 쉰이 넘은 나이에도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이 쉽지 않았다. 손님을 불러 세우는 말이 목구멍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차마 말을 못 하겠는 거야.”

예전에 다니던 가구공장 통근버스 기사 아저씨가 작은 종 하나를 달아줬다. 마 씨를 오래 지켜봐 온 사람이었다. “이거 흔들면 사람들이 올 거야.” 그날부터 마 씨는 말 대신 종을 흔들었다.

‘딸랑─, 딸랑─.’

작은 종소리가 골목 끝까지 번졌다. 손때 묻은 종은 지금도 커피차에 매달려 있다.


”인심을 안 잃어서 이렇게 삽니다.” 

그 삼십 년이 얼마나 길었는지, 그 웃음이 먼저 안다.


삶과 생계가, 한 평 위에 차곡차곡 쌓였다.



‘딸랑─.’

말 대신 종을 흔들었다.

그 소리 하나로

삼십 년을 버텼다. 

시장 귀퉁이 한 평, 누군가에겐

이 자리가 명당이다.


새벽 다섯 시면 일어난다. 물을 끓이고, 커피통에 물을 채우고, 종이컵을 차곡차곡 커피차에 올린다. 그리고 여섯 시 오십 분이면 이 골목에 선다. 삼십 년 가까이 같은 시간이다. 

바람 부는 날이면 천막이 들썩거렸다. 벽돌로 모서리를 눌러놓고 뜨거운 주전자를 두 손으로 붙든 채 차를 탔다. 겨울 새벽에는 커피차 손잡이를 쥔 손끝이 얼어 감각이 둔해질 때도 있었다.

충청남도 당진에서 태어나 인천으로 시집왔다. 남편은 돈을 벌어오지 않았다. 대신 가구공장에서 일했다. 두 아이의 학비며 밥값이며 혼자 감당해야 했다. 커피차를 시작한 건 그즈음이었다.

“나 혼자라도 벌어야 애들하고 먹고 살지. 뭐 별수 있나. 그냥 한 거지 뭐.”

손등 마디마디가 툭 불거져 있다. 손바닥엔 굳은살이 단단하게 박여 있다. 바지락 껍데기에 베이고 뜨거운 물에 데인 손이다. 지금도 그는 연안부두에서 바지락을 사다 좌판에 앉아 깐다. 손끝이 갈라지고 터져도 좀처럼 일을 멈추지 않는다.


커피 한 잔은 처음에 사백 원이었다. 지금은 칠백 원이다. 삼십 년, 그동안 시장 간판은 몇 번이나 바뀌고, 가게들은 들어섰다 사라졌다. 그래도 할머니는 여전히 같은 자리를 돈다.


 

시장 골목이 누군가의 한 평이었다. 삼십 년째 오늘도 그 안에 머문다.


손끝이 갈라지고 터져도, 바지락 까는 손을 멈추지 않는다.



햇살이 유난히 밝던 오월이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며칠 시장에 나오지 못했다. 새벽이면 들리던 종소리가 끊기자 상인들이 서로에게 물었다.

“이모 어디 가셨어? 편찮으신가?”

며칠 뒤, 그는 평소처럼 커피차를 끌고 골목 안으로 들어왔다. 은색 주전자 뚜껑을 열고, 종을 한 번 흔들었다. ‘딸랑─.’


시장 사람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말없이 커피를 받아 들고 각자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뜨거운 김이 새벽 공기 속으로 천천히 흩어졌다.

“내가 여직 살아온 게 다 이 딸랑이 덕이지. 이거 하나로 우리 식구들 먹고 살았어.”

시장 상인이 지나가며 커피 한 잔을 받아 간다. 그가 뜨거운 종이컵을 두 손으로 감싸 건넨다. “인심을 안 잃어서, 여직 이렇게 삽니다.”


골목 끝에 다다르자 누군가 웃으며 말을 건넨다.

“이모, 오늘도 일찍 나왔네.”

그도 따라 웃는다. 

“명당 자리잖아.”

시장 지붕 위로 아침빛이 번져오고 있었다. 커피차 바퀴가 천천히 방향을 튼다.

‘딸랑─.’ 종소리가 막 깨어나는 신기시장 골목 사이로 퍼져 나간다. 


신기시장 골목 어딘가, 딸랑이 소리가 퍼져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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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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