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기획특집_모씨네 디지털 아카이브
흩어진 시간을 찾아,
인천을 기록하다
모씨네 디지털 아카이브
1951년, 포화가 지나간 인천 인근 마을. 한 소년이 미군 병사 앞으로 걸어 나와 작은 꽃다발을 내민다. 유엔군이 인천 인근 마을을 탈환하던 때의 일이다. 총성이 멎은 자리에 꽃을 들고 선 아이. 그리고 그 꽃을 받아 든 청년. 그들의 대화나 눈 맞춤까지 알 수 없지만, 그 온기만큼은 전해지는 듯하다. 이 사진은 바다 건너 어느 기록관의 서고, 빼곡하게 들어찬 상자 속에서 잠들어 있었다. 누군가 그 상자를 열어 마주하기 전까지 말이다. 우리가 흔히 ‘역사’라고 부르는 것들은 그렇게 흩어져 있다.
이번에 문을 연 모씨네 디지털 아카이브는 그렇게 흩어진 조각들을 찾아 나선 이들의 첫 번째 결실이다. 저 멀리 낯선 나라에 흩어진 시간들이 인천의 이름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전쟁의 한복판에서부터 다시 세워갔던 순간까지. 그 시간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글. 윤은혜 본지 편집위원 사진. 이재형 포토디렉터

여백 모씨네사회적협동조합 대표와 서은미 모씨네 디지털아카이브 수석연구원

화염 속에도 꽃은 핀다(1951)
RG111 BOX757 SC358212

인천전화국의 교환수들과 교환대(1956)
RG 111 SC BOX1121 SC507873

창영초등학교 교실에서 교사가 시청각 교재와 녹음기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1954)
RG 111 SC BOX980 SC454809

전쟁이 시작되던 해의 인천. 피난길에 오른 가족의 모습(1950)
RG 111 SC BOX980 SC454809
ⓒ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제공 모씨네 아카이브센터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모씨네 디지털 아카이브는 올해 탄생했다.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장장 10년이 걸렸다. 모씨네 사회적협동조합을 이끌어 온 여백 대표는 다큐멘터리 영상 작업을, 서은미 연구원은 사진 작업을 통해 인천의 기록을 쌓아 왔다.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하던 두 사람이 협업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강화 장인들의 구술 채록 작업이었다. 이후 여러 기록 작업을 함께하며 기록을 보존하고, 자료의 의미와 맥락을 정리해 남긴다는 공통의 지향점을 확인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 공간에서 인천의 기록을 다루게 됐다.
서은미 연구원은 1990년대부터 인천 화교의 기록을 쫓아왔고, 2013년 인천화교협회 소장 자료를 정리하면서 본격적으로 아카이브 작업에 발을 들였다. 작업을 하며 현장의 기록과 디지털 작업이 모두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점에서 모씨네와의 협업은 더할 나위 없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자료를 찾고, 보존 처리와 디지털화를 거치고, 현장을 기록하고, 그 지역을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구술로 듣는 일까지. 아카이브는 종합 예술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여러 분야의 손길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아카이브는 종합예술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여러 분야의 손길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인천을 찾는 일
자료를 수집하는 일은 대개 바다 건너로 이어진다.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곳은 미국 내셔널 아카이브(국립문서기록관)다.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서서 입장하고, 자신의 몸집보다 큰 스캐너를 직접 들고 들어간다. 일본이나 영국에선 스캔과 촬영이 쉽지 않지만, 미국은 자료를 훼손하지 않는 한 현장 스캔을 허용하고 있다.
이곳은 연구자가 서고에 직접 들어갈 수 없다. 필요한 자료를 상자 단위로 신청해 열람실에서 전달 받고, 그 안에 어떤 기록이 담겨 있는지 하나하나 확인해야 한다. 해군의 기억인지, 육군의 기억인지 혹은 공사 현장의 모습인지 살피다 보면 어느 순간 '인천'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서은미 연구원은 이를 두고 동물적인 감각이라고 설명했다.
“제가 인천 토박이다 보니, 지형만 보고도 ‘인천이겠구나!’ 하는 촉이 오더라고요. 다른 지역 출신 연구자분들이라면 지나쳤을 사진이 눈에 걸리기도 하는 거죠.”하도 많은 자료를 보다 보니 아침 이른 시간부터 폐관 시간까지 있어도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다.
모씨네가 스캔한 자료는 설명, 즉 해제를 다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공개할 수 있다. 이번에 공개한 자료는 1,188건이다. 사진 한 장씩을 센 수가 아닌 자료의 건수를 뜻하며, 앨범 한 권이 통째로 한 건으로 집계되기도 한다. 그만큼 방대한 양의 자료다. 아직 해제 작업을 진행 중인 자료도 많다.
“역사적인 의미가 아니어도 내 과거 일상의 기억과 모습을 자료에서 만났을 때 참 반가워요.”
여백 대표와 서은미 연구원은 서로의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살던 동네, 내가 다닌 학교가 낯선 나라의 서고에서 불쑥 튀어나올 때 도시의 삶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도 비로소 선명해진다. 인천은 그 변화의 폭이 유난히 큰 곳이기도 하다.

구술자 제공 사진 스캔 처리 작업

구술자가 제공한 사진과 앨범

개성에서 인천 월미도와 화성으로 수학여행을 온 당시의 자료
우리 삶에 대한
기억까지
‘너무 과거 자료만 찾는 것 아닙니까?’
누군가 모씨네 디지털 아카이브를 향해 던진 말이다. 하지만 도시의 변화를 기록하는 일은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할지 고민하는 일과도 맞닿아 있다. 여백 대표는 진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관에서 만든 기록은 공식적이다 보니 시민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 있기 마련입니다. 그 비어 있는 자리를 채우고 낱장으로 흩어진 기록을 서로 연결하는 일이야말로 모씨네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어요.”
모씨네 디지털 아카이브가 그리는 모습은 세 가지다. 먼저 믿을 수 있는 공식 자료실이다. 모씨네가 찾고 정리하고, 확인한 자료만 올리고, 잘못된 부분은 피드백을 받아 바로잡는다. AI가 만든 이미지가 실제처럼 퍼지는 시대일수록 정확하게 확인된 기록의 가치는 커질 것이라 본다. 앞으로는 다른 검증된 자료가 어디 있는지 안내하고, 아카이브 안에서 연결해 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마지막으로는 놀이터다.
“디지털로 열어 두어도 아무도 안 꺼내 보면 그저 장롱이거든요. 시민들이 기록을 가지고 놀면 좋겠습니다. 과거를 추억하기도 하고, 가지고 계신 자료를 기꺼이 기증해 주셔도 좋고요.” 모씨네는 시민이 건넨 기록이 실제 기록인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함께 정리하고 있다.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저마다의 기록이 이곳에 모여 흩어졌던 퍼즐이 완성되는 날까지, 모씨네의 여정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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