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IncheON | 물과 꿈
수면(水面)과 수면(水面) 사이
사진가 김노천,
아버지의 바다에서
물과 꿈을 찍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사진. 김노천 조형사진가

해불양수(海不讓水). 2024.
바다는 어떠한 물도 사양하지 않는다.
수면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세상을 비춘다.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면
옷자락에서 낯선 냄새가 났다.
바깥세상의 공기,
바다의 기운 같은 것이었다.
아이는 네 살이었다.
아버지가 반갑기보다 먼저 낯설었다.
1969년 백령도 항로.
1971년부터는 해외 상선을 탔다.
짧게는 일 년, 길게는 삼 년.
아버지는 일흔이 될 때까지 수평선 너머에 머물렀다.
아이는 해안도로를 따라 혼자 자전거를 탔다.
바다를 오래 바라보다 울었다.
멀리 물빛이 흔들렸다.
그리움인지, 설명할 수 없는 상실인지 알 수 없었다.
어느 날부터, 바다가 아버지였다.
말없이 곁을 지키는, 닿을 수 없지만 사라지지 않는.
아버지는 수면 위에서 수평선을 보았다.
아들은 수면(水面)과 수면(水面) 사이,
그 경계에서 몸을 낮춘다.
빛이 흔들리는 자리에서, 오늘도 셔터를 누른다.

모성. 2011.
아버지 없는 밤, 바다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화려한 외출. 2020.
파도는 쏟아지고, 빛은 흩어진다.
닿을 수 없던 세계가 마침내 눈앞에 왔다.

물의 변화. 2024.
수면 아래에서 올려다보던 그 빛.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빈자리
용현동 해변도로 끝, 작은 조선소.
수리를 받으러 들어온 화물선들이 갯벌 위에 정박해 있었다.
그 시절, 집으로 돌아오면 창가에 검은 가방이 놓여 있었다.
오래된 손잡이가 닳아 있었다.
항해를 떠나기 전, 아버지는 그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문이 닫히고 나면 집 안은 금세 조용해졌다.
어머니는 결혼할 때 몰랐다고 했다.
항해사 아내의 삶이 어떤 것인지.
“아버지는 가까이 계실 때도 이미 떠나 있는 사람 같았습니다.”
귀항한 아버지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아이는 먼저 눈치를 살폈다.
몸에 밴 바깥 공기, 옷깃에 스민 짠 내.
뱃사람의 낯선 냄새가 집 안으로 스며들었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다. 말수가 많지 않았다.
손을 잡았던 기억도 없다.
떠나는 뒷모습만 오래 기억에 남았다.
‘철썩’.
파도가 방파제 모서리를 치고 물러난다.
열세 살이었다. 먼바다를 오가는 큰 배를 찍고 싶었다.
눈으로는 보였지만 렌즈로는 닿지 않았다.
발길이 멈춘 곳이 조선소였다.
거대한 선체가 갯벌 위에 솟아 있었다.
녹슨 철판이 햇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수리를 기다리는 화물선들이 무겁게 몸을 기대고 있었다.
아버지는 3만 톤급 화물선의 선장이었다.
닿을 수 없던 아버지의 세계가 바로 눈앞에 와 있었다.
‘찰칵’.
거대한 선체가 프레임 안으로 들어왔다.
아버지였다.

겸손. 2024.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수면 높이에서, 그는 오늘도 몸을 낮춘다.

해불양수2(海不讓水). 2020.
파도가 밀려온다.
바다는 아무것도 거절하지 않는다.

물의 소리. 2024.
파도 소리가 멀어지고, 고요가 남는다.
수면 아래에서
물치도 앞바다.
여름이면 물빛이 조금 더 투명해졌다.
수면 아래로 햇빛이 흔들리고,
바위틈마다 작은 물고기들이 몸을 숨겼다.
스킨스쿠버 장비를 메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숨을 들이마신다. 몸이 천천히 가라앉는다.
수면 아래에서 올려다본 세상은 달랐다.
햇빛이 물결을 따라 잘게 부서져 내렸다.
파도가 지나갈 때마다 일그러지고, 흔들리고,
꿈처럼 번졌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으면서도, 금세 멀어졌다.
고요했다.
그러나 멈춰 있는 순간은 없었다.
물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빛은 한곳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것.
수면 너머로 흔들리던 그 감각이 오래 남았습니다.”
수면과 같은 높이.
그가 서는 자리다.
아버지는 수면 위에서 수평선을 보았다.
항로를 보았다. 삶의 방향을 보았다.
아들은 수면 높이에서 바다를 찍는다.
기억을 본다. 존재의 깊이를 본다.
“아버지와 저는, 결국 같은 물 위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던 것 같습니다.”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의 『물과 꿈』.
물은 기억과 상상, 무의식의 깊은 곳과 이어진 존재라고 했다.
김노천은 그 문장을 오래 붙들었다.
물치도의 바다가 떠올랐다.
그 너머로 아버지가 건넜을 수많은 항로가 이어졌다.
“물은 제게 기억이고, 꿈이고, 슬픔이고, 위로입니다.”

융통성. 2023.
물은 무엇이든 담아낸다.
수평선도, 기억도, 꿈도.
해불양수(海不讓水)
물안경 하나. 닳도록 신은 오리발.
하얀 염분 자국이 고무 위에 말라붙어 있다.
김노천의 작품에는 물의 이름이 붙어 있다.
해불양수(海不讓水 )— 바다는 어떠한 물도 사양하지 않는다.
겸손 —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침잠과 고요 — 말보다 먼저 찾아오는 정적.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고,
무엇과도 섞이고, 오래된 것들을 고요히 품는다.
물의 성질이자, 아버지의 성질이기도 했다.
“저와 가장 닮은 건 침잠과 고요입니다.
아버지를 가장 잘 설명하는 건 해불양수고요.
저는 침잠으로, 아버지라는 해불양수에 다가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인천에서 국제사진전을 열겠다는 꿈이 있었다.
이십 년이 걸렸다.
2025 인천국제현대사진기획전.
14개국 126명의 시선이 한자리에 모였다.
‘경계를 넘어, 바다와 뭍의 사이(間)를 품은 도시’.
그것이 인천이었고, 그의 바다였다.
전시가 끝난 뒤에도 그는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빈 전시장을 돌아본 뒤 낮게 말했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
아버지가 항해하던 바다와
지금 그가 찍는 바다가 같은 바다인가, 물었다.
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말 대신 얕은 숨이 먼저 흘러나왔다.
“같은 물이고, 같은 수평선이며, 같은 파도입니다.”
시선이 바다 쪽으로 향했다. 눈가가 젖어 들었다.
해불양수.
바다는 어떠한 물도 사양하지 않는다.
흘러온 시간까지도 깊이 품는다.
아버지도, 그리움도, 꿈도.
한 사람이 오늘도 바다로 간다.
수면 높이로 몸을 낮춘다.
빛이 흔들리는 자리에서, 셔터를 누른다.
김노천 조형사진가
조형사진가·전시기획자·포토 칼럼니스트. 한국시각예술문화연구소 소장. 가스통 바슐라르의 『물과 꿈』에서 영감을 받아 물을 인간의 기억과 꿈, 감정의 매개체로 해석한다. 1993년 인천 프로야구단에 입사해 삼십여 년간 인천 야구의 현장을 기록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유공자 장관표창 수상. 한국미디어저널 이사장. 2024년 개인전 ‘물과 꿈: 들어가서 바닷물이 왜 짠지 물어봐?’를 열었으며, 2025 인천국제현대사진기획전 총감독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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