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특별 기획 | 과정음악회
인천시립교향악단 기획공연
‘과정음악회’ 관람기
“과정의 가치를 음악에서 엿보다”
글. 임성훈 본지 편집장
사진. 황지현 포토디렉터, 인천시립교향악단
과정음악회 모습(사진1).


정기연주회(사진2, 3)와 달리 자유분방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다.
영화 ‘더 콘서트’(감독 라두 미하일레아누)는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위해 존재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는 마지막 15분을 장식할 단 한 번의 무대를 위해 쉼 없이 달려간다.
과거 러시아 볼쇼이 오케스트라의 단원이었던 연주자들은 정치적 탄압으로 뿔뿔이 흩어진 지 30년 만에 파리의 한 극장에 모인다. 생계를 위해 음악을 놓았던 이들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공연 직전까지 제대로 된 연습 한 번 해보지 못했다. 연주가 제대로 될 리 없다. 소음만 가득한 산만한 무대. 그러나 협연자의 바이올린 선율이 울려 퍼지는 순간, 단원들은 30년 전의 열정과 감각을 마법처럼 되찾는다. 기적 같은 하모니로 막을 내리는 이 영화는 코미디 영화지만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아무리 천재적이라 해도 30년의 공백을 깨고 단번에 완벽한 호흡을 맞추는 게 가능할까. 오케스트라 음악을 접하다 보면 종종 소소한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완벽한 선율을 위해 단원들은 몇 번이나 연습할까, 곡을 해석할 때 지휘자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일까 같은 것들이다. 지난 3월 26일, 인천시립교향악단이 올해 처음 선보인 ‘과정음악회’는 이 물음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들려주었다.
커튼 뒤 가려진 음악의 ‘민낯’을 드러내다
과정음악회는 음악이 형성되고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관객과 나누는 기획공연이다. 정기연주회가 정제된 ‘결과’를 보여준다면, 과정음악회는 이름 그대로 그 ‘과정’을 공유한다. 커튼 뒤에 가려진 음악의 민낯을 드러내는 일종의 오픈 리허설(Open Rehearsal)인 셈이다. 이 무대는 보통 정기연주회 하루 전날 열리기에, 두 공연을 모두 감상하는 것은 음악의 인과관계를 이해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된다.
올해 예정된 4회의 시리즈 중 첫 무대의 주인공은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다. 영화 ‘더 콘서트’를 관통하는 바로 그 곡이다. 음악 애호가들에게 가장 사랑하는 곡 중 하나지만, 작곡 당시에는 기교의 난해함 탓에 명연주자들로부터 외면당했다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음악회 시작 20여 분 전, 무대에 자리를 잡는 연주자들의 모습은 낯설었다. 우아한 연주복 대신 티셔츠와 청바지, 운동화 등 동네 편의점에서 흔히 볼 법한 편안한 차림이다. 각양각색의 복장만큼이나 소리도 제각각이었다. 조율과 개인 연습이 뒤엉킨 소음은 악기 간의 조화 없이는 음악이 성립될 수 없음을 실감케 했다.
프로의 세계, 두 번의 연습으로 빚어내는 기적
최수열 상임지휘자와 협연자 이수빈 바이올리니스트가 등장하며 본격적으로 과정음악회의 막이 올랐다. 지휘자가 의자에 걸터앉아 악보를 펼치고, 청바지에 가디건 차림의 협연자가 활을 켜는 모습은 오히려 신선했다. 관객들은 2, 3층에 앉아 무대를 내려다보았고, 지휘자는 몸에 장착한 마이크를 통해 단원들과의 소통 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지휘자는 특히 종종 관객들과도 대화를 나누면서 곡에 대한 관객들의 이해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줬다.
“내일이 공연인데 프로 오케스트라는 몇 번이나 연습할 것 같습니까? 열 번? 다섯 번?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연습을 시작하는 겁니다. 협연자와도 처음 맞춰보는 것이죠. 내일 저녁 공연 전에 또 한번 연습을 합니다. 그러니까 두번 연습을 하는 셈이죠. 난해하거나 생소한 협주곡을 연주할 경우에는 한 번 정도 더 늘어납니다.”
지휘자의 말에 객석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오늘 만난 협연자와 오케스트라가 딱 두 번 연습하는 게 전부라니. 협연자는 물론 단원 모두가 고도의 예술적 역량을 갖추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역시 프로의 세계는 달랐다. 음악을 완성하는 공정은 치밀하고 정교했다.
“첫 노트를 조금만 더 에스프레시브(Espressivo)해 주세요. 첫 노트는 조금 더 호소력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휘자는 음악의 흐름을 수시로 끊어냈다. 그럴 때마다 선율을 해체하는 디테일한 주문이 어김없이 이어졌다. 단원들 역시 찰나의 완벽함을 위해 수십 번의 멈춤을 견뎌냈다. 어떤 때는 “객석에서도 소리가 잘 들리나요?”라며 음량에 대해 지휘자가 관객들에게 직접 묻기도 했다. 바이올린 독주음과 오케스트라 음량 간의 균형을 맞추는 데 관객들도 한몫을 하는 순간이었다. 지휘자와 협연자가 악보를 사이에 두고 머리를 맞대는 모습도 수시로 포착됐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될수록 음악은 생명력을 얻는 듯했다.
사진1, 2, 3 과정음악회에서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단원들.
다큐멘터리가 선사한 색다른 감동
인터미션 없이 1시간 30여 분간 진행된 과정음악회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 같았다. 관객은 단순히 음악을 듣는 수동적 태도에서 벗어나, 작품의 구조와 해석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동적 주체가 됐다. 영화 <더 콘서트>의 감동이 다소 비현실적이었다면, 과정음악회는 현실의 치열함이 주는 묵직한 여운을 남겼다.
오는 6월,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으로 이어질 두 번째 무대는 또 음악의 어떤 민낯을 보여줄까.
“오케스트라의 리허설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호기심 때문에 관람을 했는데 음악이 변화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참 흥미롭고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클래식 전공 학생들에게는 작품 해석과 연습의 핵심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결과보다 빛나는 과정의 가치를 목격한 관객들의 시선은 벌써 6월의 무대로 향하는 듯했다.

추후 과정음악회 일정
•6월 18일(목) 오후 7시 30분: 차이콥스키 교향곡6번 ‘비창’
•10월 22일(목) 오후 7시 30분: 브람스 교향곡 3번
•12월 18일(금) 오후 7시 30분: 말러 교향곡 7번
•장 소: 아트센터인천 콘서트홀
•관 람 료: 전석 1만 원(인천문화예술회관 누리집 및 엔티켓, NOL 티켓에서 예매 가능
•관람연령: 초등학생 이상
•문 의: 인천시립교향악단 (032-420-2781)
Interview

최수열 인천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
과정음악회의 기획자는 최수열 인천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다. 그는 어쩌다가 ‘결과’가 아닌 ‘과정’을 무대에 올릴 생각을 했을까. 최수열 예술감독에게 이 실험적이고 획기적인 기획공연의 탄생 배경을 들어보았다.
‘과정음악회’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관객들은 음악회에서 오케스트라의 결과물을 감상합니다. 하나의 음악회를 준비하기 위해 오케스트라가 겪는 반복연습과 시행착오, 지휘자와 연주자 간의 소통 등의 리허설 과정은 관객들에게 노출 되지는 않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를 노출시킬 때 분명 또 다른 흥미로운 부분이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몸담았었던 두 개의 악단, 서울시향(리허설룸콘서트)과 부산시향(미완성음악회)에서 모두 시도해서 큰 호응을 얻었던 프로그램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인 정기연주회는 어떤 점이 다른가요?
악단 입장에서 달라지는 것은 사실 크게 없습니다. 리허설 과정은 연출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우리의 일상 그대로거든요. 우리는 연주복이 아닌 평상복을 입고 작품을 부분적으로 끊어가면서 연습합니다. 제 말이 관객들에게도 전달되도록 마이크를 착용하는 것, 그리고 우리의 리허설을 보는 관객 여러분들이 계신것 정도가 다릅니다. 보통 오전, 오후에 진행되는 리허설이 저녁 시간에 이루어진다는 점도 다르네요.
클래식 음악을 어렵게 느끼는 시민들이 많습니다. ‘과정음악회’가 시민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기를 바라십니까?
클래식은 기호식품입니다. 들어야만 하는 강제성은 없죠. 다만 클래식 음악을 전공으로 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이 장르가 우리의 정서에 분명 많은 안정감, 기쁨, 위로를 줄 수 있는 요소가 많다고 자부합니다. 그래서 시민 여러분께 적극 권하고 싶네요. 이미 시민들께서는 인천시향공연의 좌석을 가득 메워 주고 계십니다. 이번에 우리의 과정을 소개하는 신선한 시도를 하니, 찾아주신다면 분명 후회하지 않는 색다른 경험을 얻고 돌아가실 겁니다.
첫 과정음악회 연주곡으로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선정한 이유는?
과정음악회의 첫 번째 문을 여러분들이 아는 작품으로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과정음악회는 항상 협연자와 같이하는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이번 회차에는 인천시향 올해의 예술가로 활동하게 될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빈 씨의 첫 무대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과정음악회가 세 차례 열리는 동안 하나의 협주곡이 어떻게 완성이 돼가는지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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