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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굿인이 만난 사람_박혁남 한국캘리그라피창작협회 이사장

2026-10-15 2026년 10월호

붓 끝에 새긴 한글

박혁남 한국캘리그라피창작협회 이사장


서예가이자 시인, 그리고 한국캘리그라피창작협회를 이끌고 있는 박혁남 이사장


시월, 한글이 태어난 달을 맞아 이 땅의 문자를 다시 한번 곱씹는다. 오백여든 돌을 맞은 한글은 K-컬처를 타고 세계로 뻗어나가는 우리 문화의 뿌리가 됐지만, 정작 그 글자 하나하나에 깃든 조형의 아름다움을 눈여겨보는 이는 많지 않다.

붓을 든 지 반세기. 그 한글을 평생의 화두로 삼아온 이가 있다. 서예가이자 시인, 그리고 한국캘리그라피창작협회를 이끌고 있는 박혁남 이사장이다. 그는 전통 서예의 뿌리 위에 자신만의 개성과 감성을 얹어 캘리그라피에도 발을 디뎠고, 9년째 그 길을 넓혀오고 있다. 지난 9월 인천에서는 그가 이끄는 협회 주최로 ‘대한민국캘리그라피창작대전’이 열리기도 했다. 한글이 태어난 뜻을 되새기는 날을 앞두고, 반세기 붓 인생과 한글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들어봤다.


글. 윤은혜 본지 편집위원   사진. 김범기 포토디렉터




 

결국 글씨는 그 사람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50년의 세월, 운명 같은 시작

박혁남 이사장이 붓을 잡은 지는 올해로 50년이 됐다. 40년 전 멋모르고 치렀다는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어린 시절 품었던 꿈을 한 번도 놓지 않고 걸어왔다. 2007년에는 시인으로 등단해 첫 시집을 내기도 했다. 서예가이자 시인, 두 개의 이름으로 살아온 그가 요즘 가장 힘을 쏟는 것은 캘리그라피다.

“시대가 급변하는데 전통 서예에만 매달리는 것은 시대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전통의 뿌리에 자신만의 개성과 회화성, 감성을 더하면 새로운 장르가 열릴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9년 전 만들어진 한국캘리그라피창작협회. 지금은 전국 26개 지회·지부·인증센터를 두며 전시와 축제, 교육, 학술 세미나, 자격증 검정 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그에게 한글은 단순한 문자가 아니다.

“한글은 이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만큼 독창성과 간편함, 우수성을 인정받은 문자입니다.”


전통과 창작 사이, 새로운 감성으로 피어나다

전통 서예와 캘리그라피가 결코 다른 길이 아니라고 설명하는 박혁남 이사장.

“서예가 순수 예술로 존재해왔다면, 캘리그라피는 영어권에서 손글씨를 총칭하는 말이 한국에 들어와 대중적인 신조어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그리스어로 캘리는 ‘예쁘다’, 그라피는 ‘문자’라는 뜻이니 결국 예쁜 글씨를 말하는 거죠.”

디지털 기기가 발달하고 있음에도 손글씨에 대한 수요는 여전하다. 더 빠르고 간편한 작업이 있음에도 손글씨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혁남 이사장은 분명하게 이유를 설명했다.

“80년대 후반, 컴퓨터가 확산될 때만 해도 손글씨의 효용이 떨어질 거라 예상했었죠. 그런데 오히려 그 이후로 캘리그라피가 상품과 디자인 영역에 스며들기 시작했어요. 타이포그래피에 비해 정감 있고 감성이 살아있기 때문이죠.”

AI가 발달할수록 사람의 손과 머리에서 나오는 것의 가치가 더 커질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결국 글씨는 그 사람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붓끝에 남을 다음 이야기

지난 9월 인천에서 열린 ‘대한민국캘리그라피창작대전’은 박혁남 이사장이 특히 공을 들였다. 이번 창작대전은 아마추어들이 작가로 성장하는 발판이 되는 공모전이다. “캘리그라피 분야에서는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열렸습니다. 수상작뿐 아니라 협회 초대 작가들의 작품도 함께 전시되기 때문에, 지망생들의 다양한 작품과 우리나라 작가들의 수준 높은 면모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었죠.” 그는 올해 출품작이 너무 많아 작품을 이중으로 걸어야 할 정도였다고 귀띔했다. 

반세기 가까이 붓을 잡아 온 그지만, 새로움에 대한 갈망은 여전하다. “어느 정도 완성된 작가라 해도, 지금의 퀄리티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아지고자 하는 마음은 늘 있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잠재성을 향한 갈증, 그것이야말로 그를 여전히 붓 앞에 서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글씨 쓰는 즐거움을 아직 모르는 이들에게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했다. 그림이 즉흥적인 형상으로 순간을 전한다면, 서예는 붓의 원리와 품격을 익히는 긴 배움의 과정을 요구한다. 알면 알수록 내면으로 향하는 예술이라는 것이 그의 오랜 믿음이다.

한글이 태어난 시월, 50년을 붓과 함께 걸어온 그의 걸음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인천에서 다시 피어난 이 아름다움이, 앞으로 또 어떤 글씨로 우리 앞에 놓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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