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더이상 예술체험은 없다
우리가 의미 있는 예술교육을 하지 않는다면,
생활 속에서 예술을 향유할 가능성 있는 세대를 소멸시키는 것이다.
(1997년 미국의 ‘예술·인문학에 관한 대통령위원회’에서 발간한 『창조적인 미국』에서 인용)
유·소년기의 예술체험에 대한 인상과 내용과 빈도 등이 장년기 나아가 일생을 거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이는 많은 문화향수 실태조사, 관객조사 등에서 그 상관도가 높게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청소년 프로그램은 체계적으로 접근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해 보인다. 입시위주의 학교교육은 예술교육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에 빠져있는 듯하다. 또한 문화공간이나 예술단체도 이를 수용할 준비나 노력이 미미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총체적 문제로 인한 피해는 그대로 학생들의 몫으로 이어지고 있다.
해마다 거듭되고 있는 예술체험 숙제는 이제 위험수위를 넘고 있는 듯하다. 학부모와 학생들로부터 수도 없이 걸려오는 문의전화에서 아침부터 공연장 앞에 늘어선 티켓구매 행렬까지 그 심각성에 통감한다.
우선 학교에서는 객관적 평가를 한다는 명분으로 본래 의미를 상실한 채 해당 프로그램의 티켓이나 홍보물 등 결과물로 쉽게 접근하려는 교사중심의 과제를 버렸으면 한다. 예를 들어 음악감상이 목적이라면 왜 국악이나 영화음악 등은 음악회가 되지 않고 CD 등을 통해 클래식을 접하는 것은 과제가 될 수 없는지 모르겠다. 박물관까지 와서 미술관이 아니라고 돌아가는 학생들을 보았다. 미술전시 관람이 과제라면 박물관에서 고미술을 감상하는 것이 왜 그 범주에 들지 않는지 궁금하다.
또한 예술체험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학생 스스로 주체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기 어렵다. 대부분 부모가 문의하고 티켓을 구입한다. 나아가 작품에 대한 작가 인터뷰도 학생을 대신해 부모가 나선다. 심한 경우는 학생은 없고 부모가 팜플렛만 구입해 가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예술단체나 작가는 양식을 가지고 양질의 프로그램을 생산하고 제공해야 한다. 또한 문화공간에서도 내실있는 기획으로 이들의 예술체험을 도와 미래의 관객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그 만남을 주선해야 할 것이다. 예술체험 프로그램과 학생 과제물이 본래의 목적에 부합하려면 프로그램 수용자(학생, 교사, 학부모 등), 공급자(예술단체, 작가 등), 매개자(문화공간, 기획사 등) 측면이 균형있게 다뤄져야 한다.
이는 일부 언론에서 예술단체나 문화공간, 기획사 쪽의 문제만을 부각하는 방식으로는 문제해결에 큰 도움이 될 수 없다. 삼자가 참여하는 네트워크를 통해 통렬한 자기반성을 전제로 심도있게 문제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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