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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빛... 그들에게 한줄기 빛이 되다
송암 박두성은 '맹인들의 세종대왕'이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한글 점자를 창안하고 맹인교육에 평생을 바친, 암흑세상에 한줄기 빛이 되었던 인물이다. 송암 선생은 구한말인 고종 25년(1888년) 4월 26일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상용리 516번지에서 태어났다.
강화 보창학교에서 신교육을 접한 송암은 한성사범학교에 입학한다. 학교를 졸업한 후 어의동(於義洞) 보통학교에 근무하다가 1913년 현 서울맹아학교 전신인 제생원 맹아부 교사로 발령 받으면서 맹인 교육에 첫발을 내디딘다.
당시 맹교육은 말그대로 캄캄하기 그지없었다. 점자책 없이 가르치던 교사는 한낱 녹음기에 불과했고 혼자 중얼대다가 지쳐버리기 일쑤였다. 무의미한 청각교육과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에 한계를 느낀 그는 일본에서 점자 인쇄기를 들여와 비록 일본어이기는 하나 우리나라 최초로 점자 교과서를 출판한다.
"비록 눈은 잃었으나 우리말 우리글까지 잃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 송암은 민족의식을 일깨우며 조선어 교육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제생원에 부임한지 7년이 지났으나 한글 점자가 없는 것을 늘 안타까워하던 그는 1920년에 본격적으로 한글점자 연구에 몰두했다.
제자들을 모아 '조선어 점자 연구위원회'를 비밀리에 조직해서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1926년 11월 4일 한글 점자 '훈맹정음(訓盲正音)'을 반포하기에 이른다. 그것은 실로 이 땅의 맹인들에게는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와 비길 만한 역사적 복음(福音)이었다. 맹인들의 눈을 밝히려다 한때 실명위기에까지 빠졌던 송암은 1931년에 성경전서를 비롯해 이광수 전집, 명심보감, 천자문, 임꺽정전, 이솝우화, 소공자 등 2백여종의 점자책을 발간한다.
1935년 송암은 제생원을 사퇴하고 인천영화학교 교장에 오르지만 늘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맹인들의 생각으로 가득 차있었다. 3년만에 교장직을 사임하고 밤나무골 율목동에 정착해서 세인의 눈을 피해 숨어사는 맹인들을 전국방방곡곡에서 찾아내어 통신교육 등을 이용해 그들이 새로운 세상에 접할 수 있게 한다.
그의 집을 찾는 맹인들의 발걸음이 잦아지자 그는 대문에 커다란 태극문양을 그려 넣어 동네사람들이 맹인들에게 자기 집을 쉽게 가리켜 줄 수 있도록 한 일화도 전한다.
한국전쟁 중에 신약성서 점자 원판이 소실되자 1957년 다시 한번 성서의 점역을 완성하는 등 일평생을 오로지 맹인들의 '흰지팡이' 역할을 하며 살았다. 송암은 중풍으로 쓰러져 9년 동안 병상에 누워있다가 1963년 8월 25일 76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한마디 유언을 남기며 애맹(愛盲) 정신을 보여줬다. "점자책을 쌓아 두지 말고 꽂아놓아라…." 점자책을 쌓아두면 돌출부가 평평하게 납작해져 손끝으로 읽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송암기념관>
박두성 선생의 뜻과 업적을 기리고 한글점자 창제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조명하기 위한 송암기념관이 인천시각장애인복지관(남구 학익동) 1층에 자리잡고 있다.
약 45평의 전시장에는 송암 선생의 외손녀인 유명애 교수가 그린 초상화와 전국의 시각장애인들의 성금을 모아 만든 흉상이 있다.
1926년부터 1949년까지 선생이 직접 기록한 맹인사업 관련 일지와 당시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학습자료와 도구 등 유품들도 전시돼 있다.
특히 일본에서 들여 온 초창기 점자 제판기가 방문객의 눈길을 끈다. 이밖에 맹인들을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을 담은 빛바랜 사진들과 점자의 발달사가 전시되고 있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동절기는 오후 5시까지, 토요일은 오후 1시까지)이며 일요일과 공휴일은 휴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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