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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전국 순회 개최 시작
1981년 유엔이 제정한 세계장애인의 해를 맞이하면서 국내 장애인체육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스포츠를 통한 재활과 사회적응력을 높이기 위한 전국장애인체육대회 개최가 결정된 것이다.
물론 전국장애인체육대회가 열리기 이전에도 전국지체부자유 청소년체육대회, 대한민국상이군경체육대회, 전국정신지체인 축구대회 등 각 장애별로 몇몇 대회가 있었으나 전체 장애인이 참여하는 종합체육행사는 전국장애인체전이 처음이다.
제 1회 대회는 81년 10월 2일부터 4일까지 사흘간 정립회관, 현대건설운동장, YMCA체육관에서 5개 종목에 761명의 선수가 참여하는 '운동회' 수준의 행사였다. 2회 대회부터 4회 대회까지는 여의도체육공원을 중심으로 경기가 치러졌고 종목 수도 7, 8개로 늘어나면서 전국 단위 체육대회로서의 기틀을 서서히 잡아갔다. 5회 대회부터 7회 대회까지는 서울장애인올림픽조직위원회가 주최하면서 장소도 성남공설운동장 등에서 치러졌으며 참가선수도 1천명을 넘어섰다.
특히 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둔 7회 대회는 16개 종목에 임원과 선수 등 총 2천명이 참여하는 매머드 행사로 발전했다. 8회 대회('88년)는 세계장애인올림픽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됨에 따라 열리지 않았고 제 9회 대회부터는 '다함께, 굳세게, 끝까지'라는 슬로건 아래 한국장애인복지체육회가 주최했다. 9회 대회는 서울장애인올림픽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전반적인 대회운영 면에서 더욱 능률적인 대회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0년에 열린 10회 대회는 개최시기를 10월에서 5월로 옮겼고 경기장을 국군체육부대 한곳으로 정해 선수단의 이동을 없애버렸다. 또한 경기장 주변에 공연행사를 비롯하여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축제분위기를 조성한 대회였다. 비공인세계신기록이 3개나 수립되기도 했다.
11회 대회는 '92 바로셀로나장애인올림픽에 대비해 새로운 의무분류 규칙하에서 치러졌고 비공인세계신기록 6개가 기록된 대회이다.
12회 대회부터 현재까지는 방송사가 개회식을 비롯해 일부 경기를 생중계함으로써 국민들의 많은 관심을 얻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개회식에서는 전국체전처럼 식전·식후 행사가 성대하게 벌어졌다. 그러나 전국장애인체육대회가 제 10회 대회 이후 국군체육부대 등 서울과 경기도 일원에서만 계속해서 개최됨으로써 문제점이 지적되기 시작했다.
우선 매년 같은 장소에서 경기가 열리다보니까 장애인 선수들의 참여의식이 결여될 뿐만 아니라 선수촌 및 경기장이 군부대인 관계로 일반시민들의 관람이나 참여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회의 질적 수준향상과 각 시·도의 장애인복지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전국 순회 개최 문제가 제기되었다.
1995년 7월 전국장애인체육대회 참가 시·도 선수단장 연명으로 지방순회 개최 건의서가 보건복지부에 전달되는 등 정부 내 관련 부서의 협의를 통해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마침내 1999년 5월 제 19회 대회 개막식에서 최기선 인천시장이 차기대회(20회) 개최를 공식 발표함으로써 전국장애인체육대회 순회 개최의 첫 번째 지역으로 인천이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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