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네 효성이 지극해 하느님이 도우신게로구나…"
관교동의 남촌 동해도로에서 문학산의 서쪽 비탈을 끼고 오르면 문학산과 무덤이 많은 노적산이 흘러내려 서로 어울리는 마루턱에 이른다. 이 마루턱이 사모지고개(三亥酒峴·三呼峴·思慕峴)이다.
이 사모지고개를 넘어서서 약 15m 가량 청학동쪽으로 내려가면 왼쪽 벼랑에 큰 바위가 눈에 띈다.
이 바위를 그곳 사람들은 '술이 나오는 바위' 또는 '중바위'라고 부른다. 이 바위에는 지금도 뚜렷하게 움푹 파인 두 무릎자국과 두 손자국을 볼 수 있는데 여기에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사모지고개 너머 어느 마을에 한 효자가 살고 있었다. 그 효자의 아버지는 원래 술을 몹시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집안 살림이 워낙 구차하여 효자는 아버지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술을 사다드릴 형편이 못되어 늘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이 효자가 사모지고개를 넘다가 마루턱에서 쉬고 있는데 어디서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효자는 목이 마르던 참이라 벌떡 일어서서 주위를 살펴보니 길가 바위에서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것을 보자 효자는 얼른 그 곳으로 다가가서 그 물을 받아 마셨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것은 물이 아니라 술이었다. 효자는 눈이 번쩍 뜨였다. 참으로 뜻밖이요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효자는 하느님이 도우신 것이라고 생각하고 술 석잔을 받아다가 그의 부친께 드렸다. 효자가 그 뒤에도 매일 술을 석 잔씩 받아다 드렸더니 그의 부친은 여간 기뻐하지 않았다. 그리고 술을 어디서 받아 오느냐고 물었다.
효자는 하는 수없이 그 술이 생긴 내력을 아버지께 소상히 알려드렸다. 그러자 그의 부친은 기쁨을 금하지 못했다.
"응 그래. 이건 네 효성이 지극하니 하느님이 도우신 게로구나. 헌데 말야 내일부터는 석 잔만 받아올 것이 아니라 더 많이 받아오도록 해라."
부친의 이 말을 듣자 효자는 그 이튿날엔 그 바위에서 넉 잔의 술을 받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지금까지 흘러내리던 술 줄기가 갑자기 뚝 끊어지더니 그 이상 술이 나오지 않았다. 일이 이렇게 되자 안타까운 효자는 바위에 엎드려 술이 다시 나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그러나 술은 영영 나오지 않고 무릎을 꿇은 자국과 손을 짚은 자국만이 바위에 남게 되었다.
우리고장 큰 인물
곽상훈 (郭尙勳 : 1896-1980) 3.1운동 가담한 독립운동가, 제헌국회의원, 국회부의장 역임
부산동래출신으로 경성공업학교를 다니면서 인천으로 이주해 이곳에서 성장·활동했다. 1919년 3·1운동에 가담한 이래 조선소년군 대장으로 활동했고 1924년 동경대지진때는 조선인 학살실태 파악을 위해 일본에 파견되기도 했다. 1925년 이우구락부를 조직해 항일운동을 전개했으며, 광복이후에는 동아일보 인천지사장을 맡기도 했다.
1948년 인천에서 제헌국회의원으로 선출됐으며, 1949년 반민족행위처벌재판소 검찰차장에 선임되기도 했다. 제2대 국회의원부터 5대까지 국회의원에 당선돼 국회전원위원장·국회부의장·민주당 최고위원·민의원 의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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