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에이에라 지경이요, 대한독립 만세
지경소리처럼 속인 만세소리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은 일본의 탄압속에도 우리나라의 자주독립 의지를 보여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3·1 독립만세운동은 인천에서도 벌어졌다. 인천읍내(관교동), 간석동, 만수동 등에서는 독립만세를 부르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주안에서는 밤새 봉화를 올리고 만세를 불렀지만 다행히 일본경찰에 체포된 사람은 없었다.
그 후로 주안동 송내마을 사람들이 또다시 만세를 부르려 하자 일본 경찰들이 긴장해 이들을 경계했다. 하는 수 없이 마을 사람들은 편법을 쓰기로 했다. 사람들은 커다란 지경돌에 팔방으로 새끼줄을 매어 이 돌을 높이 올렸다 떨어뜨리며 집터를 닦았다. 그리고 지경돌을 높이 올렸다 떨어뜨릴 때마다 '에이에라 지경이요, 대한독립만세'하고 지경소리와 만세소리를 함께 질렀다. 이렇게 하자 멀리서 들으면 집터 닦는 소리로 들렸기 때문에 인천사람들은 맘껏 만세를 부를 수 있었다.
장수하는 인천
옛날부터 인천은 장수하는 지방으로 이름이 나 있다. 인천에는 장수를 뜻하는 수(壽)자와 학(鶴)자가 붙은 지명이 많다.
수(壽)자가 붙은 지명은 네군데로 연수동(延壽洞), 만수동(萬壽洞), 장수동(長壽洞), 수산동(壽山洞)등이고 학(鶴)자가 붙은 지명은 송학동(松鶴洞), 문학동(文鶴洞), 청학동(靑鶴洞), 선학동(仙鶴洞), 학익동(鶴翼洞)등 다섯군데가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현종원년(1660년)에 '길주유세노인(吉州有歲老人) 199세 인천영평역유백년노인(仁川永平亦有百歲老人)'이란 기록이 나온다. 길주에는 199세나 되는 노인이 살고 있고 인천과 영평에는 백세노인이 살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장수하는 마을의 뒷 산을 만수산이라 부르게 된 것이며 만수동이란 지명도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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