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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찹쌀 떡으로 벽을 만들어…

2001-05-15 2000년 3월호

중봉 조헌은 김포태생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 되어 충청도 옥천에서 왜병을 무찌르고 전공을 세웠으며 금산 싸움에서 전사한 공신이다.

조중봉이 과거에 급제하여 통진부사로 재직하던 중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부평에 유배되었다. 그때는 임진왜란 전이었는데도 조중봉은 일본이 쳐들어 올 것에 대비하여 국방을 튼튼히 할 것을 주장했다. 하루는 조중봉이 한양에 다녀오는 길에 어떤 총각 한 사람을 데리고 왔다.

그 총각의 성은 김씨였는데 조중봉은 그를 자기 집에 두고 글도 가르쳐 주고 바둑과 장기를 함께 두며 친자식처럼 보살펴 주었다.

그 총각이 장가들 때가 되어 조중봉이 중매하여 마을 처녀와 결혼을 시켰는데 장가를 들어서도 여전히 무위도식했다. 조중봉은 그의 장인에게 김총각이 장사기술이 있는것 같다고 하면서 장사밑천을 반씩 대어 장사를 시키자고 해 그렇게 했다.

그런데 김씨는 돈을 가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몽땅 다 쓰고 나타났다. 그 후에도 조중봉은 계속 장인을 달래어 세 번이나 사위의 장사밑천을 대주었는데 그 때마다 돈을 다 써버리고 돌아왔다. 조중봉은 임진왜란을 예견하고 김씨를 피난지를 개척하라고 율도에 보냈던 것이다.

김씨는 장사밑천이라며 대준 돈으로 무인도인 율도의 산을 일구어 밭을 만들고 바다를 막아 논을 만들었던 것이다. 또 집을 지었는데 찹쌀로 떡을 지어서 벽을 만들었다.

난리가 일어났을때 그 벽을 뜯어내어 끓이면 다시 떡이 되어 먹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조중봉이 부평에서 귀양살이를 했을 때 미리 생각해 둔 것이었다. 몇 해 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중봉의 가족들은 물론 김씨네 가족 및 김씨의 장인 가족들까지 모두 전란을 피해 율도에서 지내며 7년동안이나 끌었던 전쟁의 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임진왜란이 끝나자 조중봉의 가족들은 율도에서 나왔고 김씨 가족만이 계속해서 살았다고 한다.

<출전 仁川地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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