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관광

여차하면 몸 숨기려던 사찰

2001-05-17 1999년 10월호
고찰 용궁사는 원래 구담사(瞿曇寺) 또는 백운사(白雲寺)라고도 불렸다. 이 절이 영종도(자연도)의 주산인 백운산 중턱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신라시대 명승 원효대사가 이 절을 창건하였다 하니 지금부터 1300여년 전이다.
원효는 신라시대 승려로서 오늘날 한국 불교의 횃불이라 일컬어진다. 깊은 학식과 사색을 통해 불교의 참뜻을 깨치고, 한국 고유 불교의 진리를 몸소 실천함으로써 불교 대중화에 앞장섰다. 또 240여권에 이르는 책을 쓰기도 했다. 그의 독특한 불교사상은 중국과 일본에도 전파되어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한편 조선조 고종황제의 친부 흥선대원군이 서해 바다 영종도 백운산 구담사를 자주 드나들며 소원성취를 부처님께 염원한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니었다. 대원군은 이 절을 중수한후 절의 이름도 용궁사로 개칭하고 현판도 친필로 써 걸었다. 그리고 천청에 다락까지 몰래 만들고 유사시에는 은신처로 삼을 작정이었다고 한다. 흥선군은 조대비의 친정조카들인 조성하, 조영하의 도움으로 자기의 아들을 철종 서거 후에 왕위에 오르게 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흥선대원군은 정권을 쥔 뒤 오랫동안 세도정치를 해오던 안동김씨 일파를 몰아내고 부패한 관리를 처벌했으며 유능한 인재를 고루 뽑고 백성의 생활을 개선시키는 등 많은 업적을 쌓았다. 그러나 그는 세계 정세에 눈이 어두워 10년간이나 완고한 쇄국정책을 씀으로써 우리나라의 근대화를 늦춘 잘못도 범했다. 그의 본명은 이하응이었다.
용궁사의 규모는 보잘 것 없이 작다. 그러나 이 절 경내에는 수령이 천년에 가까울 정도의 느티나무 고목 두 그루가 있어 1300여년의 고찰임을 말해주고 있다.

첨부파일
OPEN 공공누리 출처표시 상업용금지 변경금지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의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료관리담당자
  • 담당부서 콘텐츠기획관
  • 문의처 032-440-8302
  • 최종업데이트 2025-08-28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