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김은호 (金殷鎬 1892~1979)
2001-05-17 1999년 10월호
인천 문학 태생으로 1906년 15세 때 인천 관립 일어학교에 들어갔지만 다음해 집안이 파산해 중퇴하고 인천사립 인흥학교 측량과에 입학해 1908년 졸업했다. 다음해 부친이 억울한 옥고로 쓰러지자 패가한 집을 정리하고 서울 남대문 근처에서 이발소 잡역에서부터 제혁공에 이르기까지 참혹한 생활을 했다.
임시 측량기사로 다니던 어느 날 우연히 어느 집에서 동양화 한 폭을 감상하고 충격을 느껴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1912년 서예가 현채와 문사 김교성의 소개로 당대의 대가중 쌍벽인 안중식과 조석진이 주도하는 경성서화미술원에 들어가 거기서 뛰어난 재주로 교수진을 놀라게 했다.
1915년 서화미술학원 3년 과정을 이수하고 미술전람회에 세필화‘조선의 가을’을 출품해 포상을 받고 창덕궁의 하명으로 이왕전하(李王殿下)의 대원수군복(大元帥軍服) 차림을 완성시켜 어용화가(御容畵家)의 영광과 명성을 획득했다.
1926년 일본 동경미술학교 청강생이 되었으며 제국미술전에 출품, 전통화가로서 처음 입선했다. 1928년 제7회 조선미술전시회에 출품해 특선했고 같은 해‘동경 동양화 회화전’에 출품해 1등상을 타기도 했다.
1939년 남원 춘향묘의‘춘향의 상’을 비롯해 이충무공상·논개상·안중근상·엘리자베드여왕상 등을 그렸으며 1961년 제10회 국전심사위원회 고문으로 추대되었다. 1971년 대통령장의 문화훈장을 받았으며 1965년 3·1문화상 본상을 수상했고 1966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추대되었다.
임시 측량기사로 다니던 어느 날 우연히 어느 집에서 동양화 한 폭을 감상하고 충격을 느껴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1912년 서예가 현채와 문사 김교성의 소개로 당대의 대가중 쌍벽인 안중식과 조석진이 주도하는 경성서화미술원에 들어가 거기서 뛰어난 재주로 교수진을 놀라게 했다.
1915년 서화미술학원 3년 과정을 이수하고 미술전람회에 세필화‘조선의 가을’을 출품해 포상을 받고 창덕궁의 하명으로 이왕전하(李王殿下)의 대원수군복(大元帥軍服) 차림을 완성시켜 어용화가(御容畵家)의 영광과 명성을 획득했다.
1926년 일본 동경미술학교 청강생이 되었으며 제국미술전에 출품, 전통화가로서 처음 입선했다. 1928년 제7회 조선미술전시회에 출품해 특선했고 같은 해‘동경 동양화 회화전’에 출품해 1등상을 타기도 했다.
1939년 남원 춘향묘의‘춘향의 상’을 비롯해 이충무공상·논개상·안중근상·엘리자베드여왕상 등을 그렸으며 1961년 제10회 국전심사위원회 고문으로 추대되었다. 1971년 대통령장의 문화훈장을 받았으며 1965년 3·1문화상 본상을 수상했고 1966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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