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김정열 (金正烈 1892~1979)
2001-05-17 1999년 8월호
소래 태생. 1933년 보성전문 법과를 졸업하고 광복이전까지 법원의 직원으로 근무했다. 광복이후 서울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인천지원 판사를 역임했고 1950년에는 인천지원장과 부장판사로 승진했다.
법관 재직중 1954년 제2대 민선 인천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다. 재임중 인천체육회장과 한국문화단체 인천지부위원장을 맡아 인천 체육의 육성발전과 인천의 문화진흥 발전에 공헌했다. 제3대 민선 인천시장에 무투표 당선되어 국내 유일의 무투표 당선 시장이 되기도 했다.
5·16혁명 이후 관계(官界)를 떠나 변호사로 개업했으나 이후에는 정계(政界)에 뜻을 두어 1967년 인천에서 민정당으로 출마해 제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4년간의 국회의원직을 마친 이후 1974년 67세로 작고할 때까지 변호사업을 계속했다. 그가 작고하자 인천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려 하상훈에 이어 두 번째로 향토사회장으로 치뤘다.
지난달에 소개한 김민선(金珉善)부사는 김민선(金敏善)으로 바로잡습니다.
법관 재직중 1954년 제2대 민선 인천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다. 재임중 인천체육회장과 한국문화단체 인천지부위원장을 맡아 인천 체육의 육성발전과 인천의 문화진흥 발전에 공헌했다. 제3대 민선 인천시장에 무투표 당선되어 국내 유일의 무투표 당선 시장이 되기도 했다.
5·16혁명 이후 관계(官界)를 떠나 변호사로 개업했으나 이후에는 정계(政界)에 뜻을 두어 1967년 인천에서 민정당으로 출마해 제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4년간의 국회의원직을 마친 이후 1974년 67세로 작고할 때까지 변호사업을 계속했다. 그가 작고하자 인천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려 하상훈에 이어 두 번째로 향토사회장으로 치뤘다.
지난달에 소개한 김민선(金珉善)부사는 김민선(金敏善)으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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