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제 살 베어 병든 남편 먹인 열녀
어망에 걸린 돌부처
옛날 영종도 운북마을 예단포에 어민 손씨가 살고 있었다.
어느날 그는 연평도에 출항해서 조기잡이를 했는데 때마침 그물에 돌부처가 걸려 나왔다. 그는 돌부처를 그냥 바다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며칠 후 그 바다에서 조기잡이를 하는데 조기는 잡히지 않고 역시 돌부처가 다시 걸려들었다. 이번에도 재수없구나하고 돌부처를 바다에 던져버렸다.
그날 밤이었다. 손씨의 꿈에 한 백발노인이 나타나 말하기를 그 돌부처가 또다시 걸릴 것이니 돌부처를 영종도 구읍 태평암에 안치하라고 하였다.
다음날, 아니나 다를까 그물을 올리니 과연 그 돌부처가 그물에 걸려 나왔다. 그는 꿈의 현몽대로 태평암에 돌부처를 안치했다. 돌부처의 한쪽 팔에는 약병이 들려 있었다.
그후 영종도 방어영 군졸들이 이 돌부처를 보고는 기이하게 여겨 활로 쏘며 장난을 했다. 그런데 그 군졸들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백운사(白雲寺) 주지는 이곳으로 와 그 돌부처를 절로 모셔갔다.
그로부터 백운사에는 돌부처에 기도하는 신도들이 매일 수없이 모여들었다. 또 돌부처에 기원하면 모두가 소원을 성취했다. 그리고 이 절을 지날 때는 경건한 마음으로 공손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벌을 받았다고 한다.
이 돌부처는 오래도록 백운사에 안치되었지만 일제시대때 김모라는 주지가 어느 중에게 팔았다고 전해올 뿐 행방을 모르고 있다.
출전 《중구 향토지》
무당 열녀
옛부터 충신, 효자, 열녀는 명문 양반집안에서만 난다고 했는데 인천에서는 무당집에서도 열녀가 나왔다
인천에는 대표적인 재인촌(才人村)이 세군데 있었는데 첫째는 전재리(全才里- 구월동)이고 둘째는 운연리(雲宴里- 수산동)였다. 전재리란 전부(全部) 재인(才人)이란 뜻으로 이 마을에 사는 광대들중 줄타는 재주꾼이 많아서 붙은 이름이다.
연락동(宴樂洞)이란 연회를 열어 즐겁게 논다는 뜻으로 이 마을이 무촌(巫村)으로 굿만 하고 즐겁게 노는 데에서 연유했다. 경신리(慶信里)는 경신리(敬神里)의 오기인데 신을 공경한다는 뜻으로 신을 믿는 무당을 일컫는다.
이 경신리 무당촌에서 무당 열녀가 났다.
옛날 이 마을에는 무당으로 이름을 날리는 부인이 있었다. 그러나 남편이 50대에 이르러 병이 들었다. 병을 고치려고 백방으로 약을 구하고 굿을 해 정성을 들였지만 차도가 없었다. 그런데 그 병에는 사람의 고기를 먹이면 낫는다는 얘기가 있어 그 부인은 자기의 허벅지 살을 베어 남편에게 먹였다.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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