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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제 살 베어 병든 남편 먹인 열녀

2001-05-23 1998년 11월호

어망에 걸린 돌부처

 

옛날 영종도 운북마을 예단포에 어민 손씨가 살고 있었다.

어느날 그는 연평도에 출항해서 조기잡이를 했는데 때마침 그물에 돌부처가 걸려 나왔다. 그는 돌부처를 그냥 바다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며칠 후 그 바다에서 조기잡이를 하는데 조기는 잡히지 않고 역시 돌부처가 다시 걸려들었다. 이번에도 재수없구나하고 돌부처를 바다에 던져버렸다.

그날 밤이었다. 손씨의 꿈에 한 백발노인이 나타나 말하기를 그 돌부처가 또다시 걸릴 것이니 돌부처를 영종도 구읍 태평암에 안치하라고 하였다.

다음날, 아니나 다를까 그물을 올리니 과연 그 돌부처가 그물에 걸려 나왔다. 그는 꿈의 현몽대로 태평암에 돌부처를 안치했다. 돌부처의 한쪽 팔에는 약병이 들려 있었다.

그후 영종도 방어영 군졸들이 이 돌부처를 보고는 기이하게 여겨 활로 쏘며 장난을 했다. 그런데 그 군졸들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백운사(白雲寺) 주지는 이곳으로 와 그 돌부처를 절로 모셔갔다.

그로부터 백운사에는 돌부처에 기도하는 신도들이 매일 수없이 모여들었다. 또 돌부처에 기원하면 모두가 소원을 성취했다. 그리고 이 절을 지날 때는 경건한 마음으로 공손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벌을 받았다고 한다.

이 돌부처는 오래도록 백운사에 안치되었지만 일제시대때 김모라는 주지가 어느 중에게 팔았다고 전해올 뿐 행방을 모르고 있다.


출전 《중구 향토지》


무당 열녀

 

옛부터 충신, 효자, 열녀는 명문 양반집안에서만 난다고 했는데 인천에서는 무당집에서도 열녀가 나왔다

인천에는 대표적인 재인촌(才人村)이 세군데 있었는데 첫째는 전재리(全才里- 구월동)이고 둘째는 운연리(雲宴里- 수산동)였다. 전재리란 전부(全部) 재인(才人)이란 뜻으로 이 마을에 사는 광대들중 줄타는 재주꾼이 많아서 붙은 이름이다.

연락동(宴樂洞)이란 연회를 열어 즐겁게 논다는 뜻으로 이 마을이 무촌(巫村)으로 굿만 하고 즐겁게 노는 데에서 연유했다. 경신리(慶信里)는 경신리(敬神里)의 오기인데 신을 공경한다는 뜻으로 신을 믿는 무당을 일컫는다.

이 경신리 무당촌에서 무당 열녀가 났다.

옛날 이 마을에는 무당으로 이름을 날리는 부인이 있었다. 그러나 남편이 50대에 이르러 병이 들었다. 병을 고치려고 백방으로 약을 구하고 굿을 해 정성을 들였지만 차도가 없었다. 그런데 그 병에는 사람의 고기를 먹이면 낫는다는 얘기가 있어 그 부인은 자기의 허벅지 살을 베어 남편에게 먹였다.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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