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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고개 하나 때문에 ….원통하다. 원통해
부평 경인국도변에 있는 원통이고개는 예로부터 인천서 서울로 가려면 꼭 거쳐야 하는 길목이었다. 이곳에는 여러가지 전설들이 전해오는데 지명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조선 중중때 영의정 김안로가 삼남지방의 쌀을 운반하기 위해 수로를 만들려고 했다. 수로공사는 김포군 고촌면 한강변 굴포교로부터 파기 시작해 부평들판을 가로질러 이 고개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이 고개는 단단한 바위가 밑에 깔려 있어 도저히 공사를 계속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의 공사가 수포로 돌아가자 한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에고 이 고개가 원수로고, 아 원통한지고, 이 고개만 아니었으면 수로를 낼 수 있을텐데.” 이리하여 이 고개는 ‘원통이고개’가 됐다고 한다.
이 고개의 또 다른 전설이 있다. 조선을 세운 이성계가 새로운 도읍지를 정하려고 무학대사에게 후보지를 두루 살피게 했다. 무학대사가 부평에 이르니 들이 넓고 기름지며 멀리 한강을 끼고 있어 가히 도읍지로 손색이 없었다. 그는 골짜기를 세기 시작했다.
예로부터 한나라의 도읍지가 되려면 골짜기가 1백개는 돼야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었다. 골짜기를 세던 무학대사는 가슴을 쳤다. 아무리 눈을 닦고 세어봐도 아흔아홉개 밖에 되지 않았다. “아, 원통하다 원통해. 골짜기 하나가 모자라는구나.”
무학대사는 그 자리에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이와 비슷한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무학대사를 대동하고 이 곳에 온 이성계는 부평땅의 골짜기가 딱 1백개인 것을 알고 기뻐서 어쩔줄을 몰랐다. 이성계는 주안산에 있던 주안사로 무학대사를 보내 산신께 제사를 지내도록 하고 개성으로 돌아갔다.
그 뒤 이성계는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이곳에 다시 왔다. 의기양양하며 골짜기를 세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하나가 모자라는 것이었다. 봉우리 하나가 얕은 언덕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봉우리가 언덕으로 변하다니, 아, 원통한지고 원통한지고!” 이성계는 탄식하며 발길을 돌렸다. 부평이 조선의 도읍지가 되지 못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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