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관광

닭아 닭아 우지마라 맹장군의 인(人)닭이니라

2001-05-29 1997년 11월호

하나. 구월동의 영리한 며느리
예전에 구월동에는 ‘오닭이’란 곳이 있었다. 그곳은 옛날 인천도호부가 있던 문학동에서 서울로 가던 길목으로, 길가에 주막이 하나 있었다.

당시 주막은 오가는 나그네들로 항상 들끓었다. 주막의 주인은 맹(孟)가라는 사람이었다. 성질이 괄괄한데다 몸집이 크고 힘이 세서 모두들 그를 맹장군이라고 불렀다. 그는 겉으로는 주막주인의 행세를 했지만 사실 그의 본업은 도둑질이었다.

주막에 묵고 가는 손님들을 상대로 도둑질을 했던 것이다. 주막경영은 일종의 도둑질을 위한 위장술이었던 것이다. 숙박객 중에 돈이나 값나가는 물건을 가진 사람이 그의 목표물이었다. 맹장군의 강탈 수법은 참으로 절묘했다. 그는 자정이 넘으면 밖으로 나가 두손으로 허벅지를 치며 닭우는 소리를 냈다. 가짜 닭울음에 잠을 깬 손님들은 새벽이 된 줄 알고 깜짝 졸라 일어나 길을 재촉했다.

손님들이 허둥대며 길 떠날 차비를 할 때 맹장군은 먼저 앞질러 으슥한 길목에서 ‘먹이’를 기다렸다. 나그네들의 모습이 보이면 그가 불쑥 튀어나갔다.

기겁을 하며 도망치거나 반항을 해보지만 맹장군의 힘이 워낙 세서 당할 재간이 없었다. 심지어 맞붙어 싸우다가 죽임까지 당하기도 했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이런 소문이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퍼지고 결국 관가까지 들어갔다. 그러나 관가는 워낙 그의 존재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감히 손을 쓰지 못했다.

그런데 맹가에게는 영리하고 훌륭한 며느리가 한명 있었다.

구월동 오대라는 이의 딸이었다. 그녀도 시아버지 맹장군의 나쁜 행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며느리는 어떻게 하면 시아버지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고 못된 버릇을 고쳐줄까 고심했다. 어느날 맹장군은 여느때 처럼 닭우는 소리를 흉내내며 ‘작전’을 펴기 시작했다.

그때 며느리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닭아 닭아 우지마라, 맹장군의 인(人)닭이니라” 이 노래를 듣고 맹장군은 몹시 놀랬다. 길을 떠나려던 나그네들도 며느리의 노래를 듣고 맹장군의 계략을 눈치챘다.

이 일이 있은 후 간악했던 맹장군은 자기의 소행을 뉘우치고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안 관가는 며느리에게 큰 상을 내렸다. 그 후 사람들은 그 곳을 오닭이(오달기)라고 불렀다. ‘오닭’은 며느리의 친정아버지인 ‘오대’에서 온것으로 전해진다.  

첨부파일
OPEN 공공누리 출처표시 상업용금지 변경금지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의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료관리담당자
  • 담당부서 콘텐츠기획관
  • 문의처 032-440-8302
  • 최종업데이트 2025-08-28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