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관광

귀동냥으로 얻은 연수동 명당자리

2001-05-29 1997년 11월호
둘.귀동냥으로 얻은 연수동 명당자리
연수동은 옛날에 원우근면 함박리하고 불렀다. 함박리란 이름은 이 말에 함씨와 박씨가 많이 살기 때문이다. 어느날 이 말을의 부자 박씨가 부친상을 당했다. 갑자기 당한 일이라 박씨는 묘자리를 잡지 못해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마침 그때 그 마을에 한 스님이 지나갔다. 마을 사람들이 그 스님을 상가로 안내했다. 상주 박씨가 묘자리를 잡아 줄 것을 부탁했다.
상주와 함께 근처 산에 올라 이곳 저곳을 둘러본 후 스님은 가시넝쿨이 우거지고 습한 곳을 가리켰다. “저곳이 명당중의 명당자리요” 그러나 상주 박씨는 그 곳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다른 곳을 찾아 달라고 ?다. 스님은 명당이라고 재차 권했으나 상주는 끝내 거절했다.
어쩔 수 없이 스님은 다른 곳에 묘자리를 잡아줬다. 상주는 매우 흡족하여 그 곳에 장사지냈다.
스님은 매우 안타까워하며 ‘명당의 주인은 따로 있구나’하며 중얼거리며 그 마을을 떠났다. 이때 이집에 문상을 온 정씨 성을 기진 청년이 이 사실을 알게됐다.
몇 년이 지난 후 정씨 청년은 모친상을 당했다. 그는 박씨를 찾아가 산소자리 한 귀퉁이를 줄 것을 청하니 박씨가 승낙했다. 청년은 예전에 귀동냥으로 들어서 봤던 그 자리를 묘자리로 썼다.
그 후 그의 가문에서는 정승, 판서등 30여명이 배출됐다.
현재 동춘동 하나아파트 뒷편에는 후손들이 조상들을 모신 능형태의 문중묘가 잘 정돈돼 있다.

셋 장사가 난 작전동 우물
옛날 작전동에는 큰우물이 하나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우물 주위에는 숲이 우거져 까치들이 많이 살았다. 사람들은 이 우물을 까치우물, 이 마을을 까치 마을이라고 불렀다.
오늘날의 작전동은 ‘작정동’에서 온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예부터 이 우물을 마시면 힘센 장사가 된다고 했다. 실제로 이말에는 장사가 많이 났다고 한다. 그 중 김감찰이란 장사는 가을철에 타작을 할 때 통나무를 쓰지 않고 수백근이나 되는 큰바위를 안고 다니면서 타작을 할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약 90년전 어느날, 이 우물에 스님 한명이 빠져죽었다.
그 일로 결국 우물은 폐정됐고 그 후로는 이 마을에 장사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첨부파일
OPEN 공공누리 출처표시 상업용금지 변경금지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의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료관리담당자
  • 담당부서 콘텐츠기획관
  • 문의처 032-440-8302
  • 최종업데이트 2025-08-28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