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세번 소리치며 넘던 이별고개
2001-06-26 1998년 2월호
옛날 백제때 사신이 중국에 가려면 서울을 출발해서 부평의 별리현(別離峴)을 넘고 또 삼호현(三呼峴)을 넘어야 한다. 삼호현을 뒤로하고 송도에 잇는 능허대로 나가 한나루에서 배를 타고떠났다. 삼호현은 예전의 문학산과 그 서쪽의 노적산이 어울려 야트막한 마루턱을 이룬 고개다. 일명 사모지고개라고도 불렸다.
배웅나온 가족들과는 별리현에서 이별을 고했는데 사신들은 헤어짐이 아쉬워서 이 삼호현에 서서 멀리 아늑하게 보이는 가족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때 "모두들 잘있으시오. 그동안 잘있으시오, 다녀올때까지 잘 있으시오" 라고 세번 소리쳐 부른뒤 이 고개를 넘었다. 세번 소리쳐 불렀다 하여 그 때부터 이 고개를 삼호현(三呼峴)이라고 했다.
여지도서에는(輿地圖書) 이 고개를 삼해주현(三亥週峴)이라고 적혀있다. 이 고개 위에는 아주 큰 바위가 있었는데 그 바위 꼭지에는 마치 동이와 같이 생긴 구멍이 뚫려 있었다. 옛날엔 그 구멍에 삼해주(三亥週)가 가득 차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고개를 넘느라고 숨이 찬 사람들은 그 술을 마시며 갈증을 풀었다고 한다. 한잔만 마셔도 능히 목마름을 풀 수 있었는데 어느날 한 나그네가 욕심을 부려 한잔을 더 마셨다. 이후 구멍에는 더 이상 술이 고이지 않았다. 그때부터 이 고개를 삼해주현이라고 불렀다.
일설에는 이 고개를 사모현(思募峴)이라고도 한다. 이 고개만 넘으면 울창한 소나무숲이 있어서 중국으로 떠나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그를 못내 그리워하고 사모한 곳이라 하여 이렇게 불렀다.
이 밖의 사모잿고개라고도 불린다. 문학산 서쪽일대가 선인독서형(仙人讀書形)이기에 의당 '스승고개' 가 있을것 이고 이 스승고개의 짝이 바로 이 고개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배웅나온 가족들과는 별리현에서 이별을 고했는데 사신들은 헤어짐이 아쉬워서 이 삼호현에 서서 멀리 아늑하게 보이는 가족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때 "모두들 잘있으시오. 그동안 잘있으시오, 다녀올때까지 잘 있으시오" 라고 세번 소리쳐 부른뒤 이 고개를 넘었다. 세번 소리쳐 불렀다 하여 그 때부터 이 고개를 삼호현(三呼峴)이라고 했다.
여지도서에는(輿地圖書) 이 고개를 삼해주현(三亥週峴)이라고 적혀있다. 이 고개 위에는 아주 큰 바위가 있었는데 그 바위 꼭지에는 마치 동이와 같이 생긴 구멍이 뚫려 있었다. 옛날엔 그 구멍에 삼해주(三亥週)가 가득 차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고개를 넘느라고 숨이 찬 사람들은 그 술을 마시며 갈증을 풀었다고 한다. 한잔만 마셔도 능히 목마름을 풀 수 있었는데 어느날 한 나그네가 욕심을 부려 한잔을 더 마셨다. 이후 구멍에는 더 이상 술이 고이지 않았다. 그때부터 이 고개를 삼해주현이라고 불렀다.
일설에는 이 고개를 사모현(思募峴)이라고도 한다. 이 고개만 넘으면 울창한 소나무숲이 있어서 중국으로 떠나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그를 못내 그리워하고 사모한 곳이라 하여 이렇게 불렀다.
이 밖의 사모잿고개라고도 불린다. 문학산 서쪽일대가 선인독서형(仙人讀書形)이기에 의당 '스승고개' 가 있을것 이고 이 스승고개의 짝이 바로 이 고개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 첨부파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