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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개척정신으로 세운 미추홀

2001-05-17 1999년 9월호
인천의 역사는 '미추홀'에서 시작한다. 미추홀은 기원전 18년경 백제 시조 온조(溫祚)의 형인 비류(沸流)가 고구려에서 남하한 후 새나라 건설의 큰 뜻을 품고 도읍한 곳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비류백제는 오래가지 못했다. '인천은 땅이 습하고 척박하여 여기에 도읍지를 세우면 망한다'는 풍수지리적 숙명으로 멸망했다는 설과 강력한 해상왕국으로 발전 한 후 요서지방에 식민지를 건설할 정도로 강성했는데 고구려 광개토왕과의 싸움 끝에 패퇴했다는 설이 맞선다. 비류백제의 몰락과 함께 인천지역은 오랫동안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삼국의 쟁패지역으로 남는다. 예전부터 인천지역은 '근기(近畿)' 또는 '기전(畿甸)'으로 불리었는데 이는 왕의 직할영지를 뜻한다. 역사를 돌이켜 보건대 이 근기지방을 차지하는 사람이 통일의 주체세력이 되었기 때문에 이 지역의 주인은 삼국의 부침과 더불어 바뀌었다. 이름도 고구려 땅이었을 때는 매소홀(買召忽)로, 신라가 차지했을 때는 소성(邵城)으로 변경되었다. 비류백제의 몰락 이후 인천이 역사의 중심지로 새롭게 부상하는 전환적 계기는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다. 고려왕조의 건립과 더불어 인천은 중심도시의 하나로 급격히 떠오른다. 숙종조에 숙종의 어머니 인예순덕태후의 고향이라 하여 경원군으로 승격되었고 인종조에 이르러서는 인종의 어머니 문경태후의 고향이란 이유로 인주라고 명명되었다. 고려 말기인 공양왕에는 경원부로 다시 승격되었다. 이곳이 7대어향(七代御鄕)이란 명목이었다. 인천은 인천이씨가 고려왕실과 인척관계를 맺음으로써 7대에 걸친 왕의 어머니 혹은 왕비의 고향이 되었다. 지금으로 얘기하면 '퍼스트레이디'를 5명이나 배출한 명문지역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선왕조에 들어와서는 강등과 승격을 반복하면서 발전했다. 태조 원년(1392)에 인주로 강등되었다가 태종 13년(1413)의 지방제도 개편 때 군이나 현에 '州'자가 들어가 있는 고을은 모두 '山'자나 '川'자로 바뀌었다. 따라서 인주는 인천군이 되었다. 비로소 '인천(仁川)'이란 이름이 역사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날이 바로 10월 15일, 현재의 '인천시민의 날'이다. 세조 6년(1460)에 이르러 인천군은 인천도호부로 격상됐다. 그후 인천은 중간에 잠시 현으로 강등되기도 했지만 조선말기까지 도호부로서의 지위를 유지했다. 이 때 인천의 행정구역은 광범위했는데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동쪽은 금천(지금의 시흥), 북쪽은 부평, 남쪽은 안산 등의 군들과 접하고 서쪽으로는 강화만까지 다다르며 앞바다의 영종도 팔미도 덕적도 굴업도 선갑도 등 많은 섬들을 포함했다. 인천 역사의 대전환을 맞게 된 것은 제물포개항. 자의든 타의든 구한말의 개항은 인천이 우리나라 근대화의 관문 역할을 했다. 능허대 개항이 고대의 국제적 개항이었다면 구한말의 개항은 근대화를 성립시킨 국제적 문호의 개방이었다. 원래 다소면에 속한 보잘것 없는 어촌에 불과했던 제물포는 1882년 5월 화도진에서 한미통상조약을 체결한 것을 비롯해 외국과 잇따라 통상조약을 맺음으로써 구미열강의 군사적 요충지와 각국의 정치 외교활동의 중심무대가 된다. 1895년 갑오개혁 때 감리서가 폐지되고 인천은 23부의 하나가 되면서 부평 김포 양촌 시흥 안산 과천 수원 남양 강화 교동 등 12군을 관할한다. 이른바 '메트로폴리탄'의 형태를 서서히 띠게 된 것이다. 광복 후 1949년에 지방자치제가 실시됨에 따라 인천부는 시로 승격되었고 6,70년대 산업화의 중추도시로 그 면모를 쇄신한 끝에 1981년에 직할시로, 1995년에는 강화군과 옹진군을 흡수·통합하며 광역시가 되는 등 시세의 성장을 거듭해 왔다. 특히 올 7월 현재 우리 인천의 인구는 250만명을 넘어서 서울·부산에 이어 3번째의 도시로 발전했다. 이제 인천은 인천국제공항의 개항과 송도정보화신도시 및 신항만의 건설 등 이른바 '트라이포트' 구축으로 21세기 동북아의 물류 정보의 거점도시로 다시 한번 변신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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