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천년만대 불려질 이름 '세상 밖으로'
2001-05-22 1998년 9월호
인천 지하철 1호선의 역 이름이 확정됐다. 역 이름을 제정하는 데는 일정한 틀이 있다. 일단 부르고 쉽고 듣기 좋으며 기억하기 수월한 이름이어야 한다. 또한 그 지역의 특수성과 역사성(지명유래)을 담고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어느 특정업체나 집단의 이해관계가 개입돼서는 안된다. 결국 객관적이고 타당성이 있어야만 자손 대대로 불리어질 역 이름으로 명명되는 것이다.
역 이름을 짓기 위해 우리시는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집했다. 우선 일반시민, 각 직능단체, 시정홍보위원, 시정여론 모니터요원 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는 한편 1호선이 통과하는 지역주민들의 설문과 구 조정위원회 심의 및 구의회 의견수렴 그리고 구청장의 추천을 바탕으로 일단 의견을 종합했다.
이어 시정 조정위원회의 부의(附議), 시 지명위원회의 자문(諮問)을 거쳐 시장이 최종 결정해서 고시(告示)했다. 고시 전에 국립국어연구원에 로마자 표기에 대한 자문을 구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었다.
때로는 일사천리로, 때론 우여곡절 끝에 세상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역의 이름이 결정된 과정과 배경을 살펴본다.
계양(桂陽)역은 부평의 진산(鎭山) 계양산에서 따온 것이다. 계양산은 인천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지하철 1호선의 출발역 이름으로 '계양'을 삼은 것은 의미가 있다. 계양역은 장차 건설될 신공항철도의 환승역이다.
귤현(橘峴)역은 이 지역 동네이름인 귤현동에서 나온 것이다. 귤현동은 옛날 부평부에 속해 있을 때 귤나무가 있는 고개라고 해서 '귤재'라고도 했다. 굴곡지고 구부러진 고개로 옛부터 부평지방에서는 이 고개를 넘어 행주나루를 건너 서울로 들어가곤 했다. 일부에서는 북인천역으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앞으로 시세가 더 확장 될 경우에는 그곳이 인천의 북쪽이라는 의미가 퇴색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채택되지 못했다.
박촌(朴村)역은 이 지역이 예로부터 박씨가 많이 살아 박씨촌 혹은 박말이라고 불린데서 유래됐다.
임학(林鶴)역은 옛날에 이 마을이 백로(학)의 서식지라 임학골 또는 이막골로 불리었기 때문에 명명됐다. 임학역은 한때 병방(兵房)역으로도 고려되었는데 이는 조선 세조때 이 마을에 부평도호부 병대가 주둔했던 병방동과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
인근에 평화시장이 있기 때문에 평화시장역 혹은 평화역의 의견도 있었고 임학과 평화시장의 첫 자를 딴 임평역 그리고 병방동의 첫글자와 합친 임병역도 추천되기도 했다.
계산(桂山)역은 동네 이름 계산동에서 따왔다. 착공당시에는 싸이클경기장이 있는 연유로 싸이클경기장역으로 불리었다. 이밖에 자전차경기장역, 경주역, 잔디구장역 등 싸이클경기장과 관련된 명칭들이 다양하게 나왔다. 그러나 싸이클경기장이 국제규격 미달로 그 기능이 유명무실해지면서 이러한 명칭들은 설득력을 잃게 됐다.
또한 인근 부평초등학교 내에 정조 임금이 활을 쏟았다는 어사대(御射臺) 문화재가 있기 때문에 어사대역의 의견도 있었다.
인천교대(仁川敎大)역은 인근에 인천교육대학이 있어 얻게
역 이름을 짓기 위해 우리시는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집했다. 우선 일반시민, 각 직능단체, 시정홍보위원, 시정여론 모니터요원 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는 한편 1호선이 통과하는 지역주민들의 설문과 구 조정위원회 심의 및 구의회 의견수렴 그리고 구청장의 추천을 바탕으로 일단 의견을 종합했다.
이어 시정 조정위원회의 부의(附議), 시 지명위원회의 자문(諮問)을 거쳐 시장이 최종 결정해서 고시(告示)했다. 고시 전에 국립국어연구원에 로마자 표기에 대한 자문을 구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었다.
때로는 일사천리로, 때론 우여곡절 끝에 세상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역의 이름이 결정된 과정과 배경을 살펴본다.
계양(桂陽)역은 부평의 진산(鎭山) 계양산에서 따온 것이다. 계양산은 인천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지하철 1호선의 출발역 이름으로 '계양'을 삼은 것은 의미가 있다. 계양역은 장차 건설될 신공항철도의 환승역이다.
귤현(橘峴)역은 이 지역 동네이름인 귤현동에서 나온 것이다. 귤현동은 옛날 부평부에 속해 있을 때 귤나무가 있는 고개라고 해서 '귤재'라고도 했다. 굴곡지고 구부러진 고개로 옛부터 부평지방에서는 이 고개를 넘어 행주나루를 건너 서울로 들어가곤 했다. 일부에서는 북인천역으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앞으로 시세가 더 확장 될 경우에는 그곳이 인천의 북쪽이라는 의미가 퇴색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채택되지 못했다.
박촌(朴村)역은 이 지역이 예로부터 박씨가 많이 살아 박씨촌 혹은 박말이라고 불린데서 유래됐다.
임학(林鶴)역은 옛날에 이 마을이 백로(학)의 서식지라 임학골 또는 이막골로 불리었기 때문에 명명됐다. 임학역은 한때 병방(兵房)역으로도 고려되었는데 이는 조선 세조때 이 마을에 부평도호부 병대가 주둔했던 병방동과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
인근에 평화시장이 있기 때문에 평화시장역 혹은 평화역의 의견도 있었고 임학과 평화시장의 첫 자를 딴 임평역 그리고 병방동의 첫글자와 합친 임병역도 추천되기도 했다.
계산(桂山)역은 동네 이름 계산동에서 따왔다. 착공당시에는 싸이클경기장이 있는 연유로 싸이클경기장역으로 불리었다. 이밖에 자전차경기장역, 경주역, 잔디구장역 등 싸이클경기장과 관련된 명칭들이 다양하게 나왔다. 그러나 싸이클경기장이 국제규격 미달로 그 기능이 유명무실해지면서 이러한 명칭들은 설득력을 잃게 됐다.
또한 인근 부평초등학교 내에 정조 임금이 활을 쏟았다는 어사대(御射臺) 문화재가 있기 때문에 어사대역의 의견도 있었다.
인천교대(仁川敎大)역은 인근에 인천교육대학이 있어 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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