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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오우! 인천 멋있어요.

2001-05-17 1999년 11월호

우리시를 찾는 외국인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송도 신도시의 미디어밸리를 비롯해 인천에 투자하기 위해 방문하는 이들이다.게다가 2001년 인천국제공항이 개항하면 인천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첫발을 내딛는 관문이 될 것이다.인천을 찾은 외국인들의 시선을 확 잡아 끌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그들에게 무엇을 보여주어야 인천, 더 나아가 우리나라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게 될 수 있을까?

 

전통을 느껴보자, 역사 탐방코스

인천은 우리나라 역사의 한 복판에 선 곳이다. 덕분에 삼국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화유적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것들을 꼼꼼히 둘러본다면 인천의 역사와 더불어 한국의 역사를 두루루 꿸 수 있게 된다. 동구 화수동 128·163번지 일대에 자리잡은 화도진은 원래 포대를 쌓고 외국함대와 상선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그러다가 인천항이 개항하면서 우리나라가 미국 영국 독일과 외교조약을 체결하는 무대로 활용됐다.

화도진의 모습은 1988년 9월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화도진도(花島鎭圖)’를 토대로 100여 년 전의 모습으로 복원한 것으로 전통 한옥가옥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중앙에는 동헌이 있고 방 한 켠에는 한미수호통상조약 체결장의 모습이 밀랍인형으로 재현돼 있다. 행랑채는 유물 전시관으로 꾸며져 있어 근대화의 현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화도진을 나와 10여분 정도 걸으면 자유공원에 다다를 수 있다. 자유공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공원이다. 지금도 가족들끼리 산책을 하거나 청소년들이 젊음을 발산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어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자유공원 복판에는 낯선 외국인의 동상이 서해바다를 내려다보고 서있다. 한국전쟁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진두 지휘했던 맥아더 장군 동상이다.

한국전쟁을 승리로 이끈 도화선이 됐던 인천상륙작전의 역사가 이곳에 남아있는 셈이다.

공원 안쪽에는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이 있다. 청동구조물인 이 탑은 공원을 찾는 이들에게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자유공원 자락에는 옛 제물포 구락부였던 인천문화원이 자리잡고 있어 개항의 역사를 설명해 준다. 또 그 주위에는 아직도 일본식 건물들이 남아 있다. 이 일대가 일본인들의 주거지였던 역사의 흔적이다.

인천은 한국 기독교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1885년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부부가 한국에 첫발을 딛고 선교활동을 시작한 곳이 지금의 내리교회다. 내리교회가 우리나라 기독교의 시발지인 셈이다. 자유공원에서 동인천 방면으로 내려오면 만나게되는 내리교회는 60년대 전소돼 다시 지어졌지만 한국 기독교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인천 천주교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답동성당은 우리나라 가톨릭 교회의 건축양식 중에서도 빼어난 것 중의 하나다. 인천에 천주교의 선교활동이 시작 된 고종 26년(1889), 빌헬름 신부가 인천의 초대 본당신부로 부임하면서 1895년 8월 정초식을 갖고 답동 3가 1번지 언덕에 성당을 짓기 시작해 1897년 성바오르 대성당으로 축성식을 가졌다.

그때는 벽돌조 단층 건물로 고딕적 양식을 띤 고풍스런 건물이었다.

현재의 답동성당은 1933년 착공해 1937년 로마네스크적 특성을 띤 교회 건축물로 완공된 것이다.

1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답동성당은 한국전쟁 등 모진 풍상속에서도 늠름하게 그 자태를 잃지 않고 인천 중심에 우뚝 서있다. 내리교회와 답동성당을 감상한 후 신포동 거리에 들어서면 일본인들이 지은 근대 건축물과 만날 수 있다. 중구 중앙동은 일제시대 금융의 중심지였는데 제18은행, 제58은행 등이 지어졌다. 현재까지도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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