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펄떡 뛰는 생선, 여기 다 모였네
때가 된 김장철
다시 김장철이다. 소래로 가는 길로 이어지는 주부들의 행렬이 때가 거의 임박했음을 알리고 있다. 음식점과 수협공판장을 지나 들어선 어시장엔 손님을 끌기 위한 생생한 삶의 언어가 생선보다 더 싱싱하게 튀어다니고 있다.
그러나 딱히 이때가 아니더라도 소래는 사실 늘 붐비는 편이다. 생새우와 육젓, 추젓 등 온갖 젓갈류를 싼값에 그리고 푸짐하게 구입할 수 있는 곳이어서이다. 게다가 근래 들어 횟집들이 대폭 늘어나고 어시장도 깨끗하게 단장하면서 수도권의 대표적인 하루나들이 코스로 '범국민적'인 사랑을 받게 됐다.
소래를 찾는 이들의 부류는 딱히 정해진게 없다. 해물을 사려는 주부들도, 모처럼 회포를 풀기 위해 나온 중년 신사도, 그리고 협궤열차의 옛추억을 되씹어보기 위해 나온 오래된 연인들도 있다.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시도때도 없이 찾는다고는 하나, 그래도 소래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새우 파시(波市)'다. 가장 싱싱한 새우가 나오는 때는 6월과 9월, 11월.
몇 년전 어시장을 깨끗하게 단장한 뒤 사시사철 날씨에 아랑곳없이 발길이 몰리는 전천후시장이 된 이후로는 하루에 이곳을 찾는 이들은 대략 1만여명에 육박한다. 어시장에 있는 회집은 3백여곳, 어시장 입구와 그 주변에 있는 회센터는 100여곳에 이른다. 노천회집에서는 막 포구로 들어온 어선들로부터 활어와 새우 등을 하역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회를 먹을 수 있다.
유래나 알자
소래포구는 1933년 소래염전이 들어서고 1937년 국내 유일의 협궤열차가 다니는 수인선이 개통함에 따라 발전하게 된 마을이다. 소래에 어시장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때는 60년대 초의 일. 이북에서 건너온 실향민들이 한두가구씩 이주해 범선으로 망둥어와 숭어, 새우 등을 잡아 팔기 시작했다. 그날 잡아온 생선을 배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내어 판다는 점 때문에 싱싱하다는 입소문이 났고 가깝게 접근할 수 있었기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74년 인천 내항이 준공된 이후 새우잡이를 하던 소형어선의 출입이 어려워지면서 한산했던 소래포구가 일약 새우파시로 부상하게 되었다.
추억 만들기
협궤열차가 다니던 철길을 건너보아야 그래도 소래에 다녀왔노라고 힘주어 말할 수 있다. 그 낭만은 건너본 사람이 아니면 모른다. 고작 폭이 76.2cm, 광궤철도의 절반에 불과한 철로는 도저히 열차가 다녔으리라고 상상이 가지 않을만큼 사람이 다니기에도 좁아보인다.
철로가 놓인 철교의 폭은 2.5m. 길이도 120m에 불과한 그 철교는 언제나 사람들로 만원이다. 그래서 월곶쪽으로 건너가는 사람들은 오른쪽, 소래쪽으로 오는 이들은 왼쪽으로 서서 줄지어 건너야 한다.
넘어질 듯 말 듯 뒤뚱뒤뚱 거리며 달렸을 꼬마열차를 생각하며 건너는 풍경을 노천회집에 앉아 바라보노라니 사람들이 건너는 줄이 마치 꼬마열차가 달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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