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왕서방도 보고 유끼꼬도 만나는 추억의 거리
2001-05-18 1999년 11월호
'골목'은 역사이다. 그곳은 그 지역 사람들이 살아온 내력을 말없이 보여준다. 골목에 한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집 한 채, 문고리 하나라도 저마다 사연을 품고 있는 법이다.
인천에도 '역사적인 골목'이 있다. 이곳으로의 여행을 떠나는 일은 인천의 역사와 이 땅에서 살다간 사람들의 궤적을 차근차근 밟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자녀들의 손을 잡고 이 골목 저 골목 거닐다보면 어느새 역사의 한복판에 서있음을 깨닫게 된다.
중국인거리
인천역에서 나와 바로 보이는 건널목을 곧장 건너 오른쪽으로 10미터 정도 걸어가서 고개를 45도 정도 쳐들면 언덕위로 주황색 지붕이 보인다. 그언덕을 향해 걸어가는 길은 1900년대 초반의 인천으로 거슬러 가는 여정이다.
중구 북성동 화교촌.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차이나타운인 이곳은 1883년 제물포 항이 개항한 뒤 그 이듬해 청나라 영사관이 들어서면서 역사가 시작됐다. 청관거리로 불리며 1940년대만 해도 인구 1만여명을 헤아릴 정도로 번성했던 이 거리는 중국산 능라주단, 한약재, 도자기, 술, 담배 등 온갖 물품을 거래하는 무역상과 함께 청요릿집, 잡화상 등이 들어서며 인천최대의 상권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것도 한때, 6.25 전쟁을 거치며 이 거리는 쇠락의 길을 걷는다.
지금 옛 영화의 끄나풀을 찾는 일은 부질없다. 이곳에 실제로 살고 있는 화교들은 모두 200여명 남짓. 옛날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초라해졌지만 그래도 그들 조상들은 나란히 있는 두 개의 골목 곳곳에 뚜렷한 족적을 남겨두었다.
청요리의 일번지로 장안의 화제였던 중국음식점 공화춘은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있을 뿐이지만 그런대로 운치있다. 옛날 쿵푸도장이었던 중국절 의선당은 중국의 문화를 단숨에 맛보기에 적당하다.
청나라 영사관 자리에 1901년 문을 연 인천화교학교는 화교협회 건물과 나란히 하고 있다. 중국말보다 오히려 한국말이 더 편해보이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청량하게 들린다. 학교 바로 앞에는 공갈빵을 파는 소박한 가게 복래춘이 있다. 가장 원형에 가깝게 중국풍으로 유지되고 있는 곳이다.
서둘러 걷자면 다 돌아보는데 10분 남짓 밖에 걸리지 않지만, 좀 잰 걸음으로 걸어보자. 물건을 흥정하는 중국거상들의 목소리와 어디선가 아이들이 불쑥 뛰어나올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며.
일본집 동네
이층 창문을 활짝 열고 금새라도 '유끼꼬'라는 앳된 표정의 소녀가 세러복을 입고 얼굴을 내밀 것만 같은 분위기가 풍기는 곳. 시립도서관이 들어선 언덕을 중심으로 그 아래쪽과 도서관 뒤편으로 있는 율목공원 한켠에는 일본풍의 집들이 모여있다. 일본에도 이런 모양의 집이 아직까지 남아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전통적인 목조건축양식이다.
신흥동과 율목동 일대에 수십여곳 일본 가옥이 자리잡고 있는데 그 옛날의 정취가 아직도 많이 남은 탓인지 일제시대, 이곳에서 태어나고 유년시절을 보낸 일본인들이 인천을 방문하면 들러보고 가는 곳이기도 하다.
근처에 있는 해광사는 작고 고즈넉한 사찰이다. 흐르는 시간따위는 궤념치 않는다는 자태를 풍기고 있다. 이절의 운치를 감상하는 일도 좋
인천에도 '역사적인 골목'이 있다. 이곳으로의 여행을 떠나는 일은 인천의 역사와 이 땅에서 살다간 사람들의 궤적을 차근차근 밟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자녀들의 손을 잡고 이 골목 저 골목 거닐다보면 어느새 역사의 한복판에 서있음을 깨닫게 된다.
중국인거리
인천역에서 나와 바로 보이는 건널목을 곧장 건너 오른쪽으로 10미터 정도 걸어가서 고개를 45도 정도 쳐들면 언덕위로 주황색 지붕이 보인다. 그언덕을 향해 걸어가는 길은 1900년대 초반의 인천으로 거슬러 가는 여정이다.
중구 북성동 화교촌.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차이나타운인 이곳은 1883년 제물포 항이 개항한 뒤 그 이듬해 청나라 영사관이 들어서면서 역사가 시작됐다. 청관거리로 불리며 1940년대만 해도 인구 1만여명을 헤아릴 정도로 번성했던 이 거리는 중국산 능라주단, 한약재, 도자기, 술, 담배 등 온갖 물품을 거래하는 무역상과 함께 청요릿집, 잡화상 등이 들어서며 인천최대의 상권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것도 한때, 6.25 전쟁을 거치며 이 거리는 쇠락의 길을 걷는다.
지금 옛 영화의 끄나풀을 찾는 일은 부질없다. 이곳에 실제로 살고 있는 화교들은 모두 200여명 남짓. 옛날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초라해졌지만 그래도 그들 조상들은 나란히 있는 두 개의 골목 곳곳에 뚜렷한 족적을 남겨두었다.
청요리의 일번지로 장안의 화제였던 중국음식점 공화춘은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있을 뿐이지만 그런대로 운치있다. 옛날 쿵푸도장이었던 중국절 의선당은 중국의 문화를 단숨에 맛보기에 적당하다.
청나라 영사관 자리에 1901년 문을 연 인천화교학교는 화교협회 건물과 나란히 하고 있다. 중국말보다 오히려 한국말이 더 편해보이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청량하게 들린다. 학교 바로 앞에는 공갈빵을 파는 소박한 가게 복래춘이 있다. 가장 원형에 가깝게 중국풍으로 유지되고 있는 곳이다.
서둘러 걷자면 다 돌아보는데 10분 남짓 밖에 걸리지 않지만, 좀 잰 걸음으로 걸어보자. 물건을 흥정하는 중국거상들의 목소리와 어디선가 아이들이 불쑥 뛰어나올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며.
일본집 동네
이층 창문을 활짝 열고 금새라도 '유끼꼬'라는 앳된 표정의 소녀가 세러복을 입고 얼굴을 내밀 것만 같은 분위기가 풍기는 곳. 시립도서관이 들어선 언덕을 중심으로 그 아래쪽과 도서관 뒤편으로 있는 율목공원 한켠에는 일본풍의 집들이 모여있다. 일본에도 이런 모양의 집이 아직까지 남아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전통적인 목조건축양식이다.
신흥동과 율목동 일대에 수십여곳 일본 가옥이 자리잡고 있는데 그 옛날의 정취가 아직도 많이 남은 탓인지 일제시대, 이곳에서 태어나고 유년시절을 보낸 일본인들이 인천을 방문하면 들러보고 가는 곳이기도 하다.
근처에 있는 해광사는 작고 고즈넉한 사찰이다. 흐르는 시간따위는 궤념치 않는다는 자태를 풍기고 있다. 이절의 운치를 감상하는 일도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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