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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바람 타고 하늘 오르듯 중국가던 옛나루터

2001-05-10 1999년 1월호

"하도 넓고 넓어서 허공을 타고 바람을 탄 것만 같아 그치는 데를 알지 못하겠네(凌萬頃之茫然 浩浩乎如 憑虛御風…)" 능허대는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에서 따온 이름으로 만경창파(서해)를 하늘로 날아오르듯 항해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백제는 근초고왕 27년(372년)에 중국 동진(東晋)과 교류하고 싶었으나 육로는 고구려가 떡 버티고 있어 어쩔 수없이 바닷길을 택했다.

 그 출발점이 바로 능허대 밑 한나루(大津 대진)라는 나루터였다.

 당시 서해안에서 중국으로 가는 가장 안전한 뱃길은 이곳 한나루에서 덕적도를 거쳐 산동반도로 가는 길이었다. 반대로 중국 사신들도 이곳을 통해 우리 땅에 발을 딛었다.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능허대 중국행은 고려를 거쳐 조선조 광해군때까지 이어진다.

현재 연수구 옥련동 능허대 주변은 완전히 매립돼 주변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능허대 정자에서 바라보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인천부읍지>에 '바닷가에 1백여 척이나 높게 솟아있다(臨海邊高起百餘尺)'라고 기록된 것으로 봐서 예전에는 서북쪽으로 언덕하나가 돌출돼 반도모양으로 바닷가와 맞닿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풀과 나무가 멋지게 어우러져 있고 흰모래가 깨끗하게 깔려있는 해안선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고유섭의 <청춘일기>에는 '추풍이 건듯불기로 교외로 산책을 하였다. 능허대 가는 길에 도공(陶工)의 제작을 구경하고 다시 모래밭 위에 추광(秋光)을 마시니 해향(海香)이 그윽히 가삼에 스며든다'라고 적혀 있다.  

능허대 주변에는 '이별'과 관계된 지명과 전설들이 많이 전해온다. 한때 백제의 수도였던 한산(현재의 광주(廣州))을 떠난 사신은 능허대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먼저 부평의 별리현(別離峴 이별고개)을 거쳐 청학동에 있는 삼호현(三呼峴 사모지고개)을 넘어야 한다. 사신일행은 이 사모지고개에 이르러 멀리 이별고개에 서있는 가족들과 마지막 이별을 하게되는데 이때 '잘있으시오'를 세 번 외치며 넘기 때문에 '삼호현'이라고 불리었다. 기암(妓巖)전설도 전해온다. 한 백제사신이 바람과 물때를 맞추기 위해 여러 날을 능허대에서 묶었는데 그만 그곳의 기녀와 정이 들었다. 마침내 사신이 중국으로 떠나자 기녀는 못내 아쉬워 절벽에서 떨어져 죽어 바위가 됐다는 이야기다. 현재 인천시 기념물 제 8호로 지정돼 있는 능허대는 지난 88년 인공연못과 언덕에 정자가 세워진 작은 공원으로 꾸며지면서 시민의 휴식처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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