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6호
범아가리에서 불을 뿜던쌍대포
"아 그거, 무덤같이 생기고 구멍이 두 개 나있는거. 범아가리 쪽으로 가다보면 보일거야."
포대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헤매다가 길가에서 마주친 노인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무덤과 범아가리 얘기를 해줬다. 노인이 가리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더니 논현포대가 금방 눈에 들어왔다. 노인의 말대로 포대는 영락없는 '큰무덤'으로 다가왔다.
논현포대는 원래 호구(虎口)포대로 불리웠다. 호구는 호랑이의 입으로 범아가리다. 논현포대가 있는 자리가 바로 '범아가리'라는 동네인 것이다.
이훈익옹이 쓴 《인천지지(仁川地誌)》에 의하면 '논현동 근처 호구포(虎口浦)를 속칭 '범아가리'라 부른다. 그 지명의 유래는 호구포 뒷산의 오봉산 기슭에 있는 바위가 마치 큰 범이 입을 벌리고 남서쪽을 향하여 울부짖는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사람들은 범아가리의 모양을 한 그 바위를 마을의 수호신처럼 여겼다'라고 전한다.
논현포대는 1879년(고종16년) 어영대장 신정희와 강화 유수 이경하가 인천과 부평에 각각 화도진과 연희진을 축조할 때 만들어졌다. 논현포대는 묘도(괭이부리)북변포대, 묘도남변포대, 북송곶(북성동)북변포대, 북송곶남변포대, 제물포북변포대, 제물포남변포대, 소래포대와 함께 화도진 관할 하에 있었다. 이 포대들은 당시 인천 앞바다에 이양선이 자주 출몰하자 이에 대비해서 세워진 것이다. 지금은 부두 축조공사와 매립 등으로 대부분 파괴돼 그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그나마 논현포대 만이 당시 모습에 가깝게 남아있을 뿐이다.
이 포대는 축조 당시 몇 개의 포좌(砲座)가 있었는지 알 수 없다. 현재는 2개의 포좌만이 남아있다. 포좌 입구 아래 쪽은 잡석으로 단을 쌓았고 중간 부분과 천장은 큰 돌을 그냥 쪼개서 얼기설기 쌓았으며 그 위는 무덤처럼 봉토를 했다. 포좌의 두 구멍은 바다쪽을 향하고 있는데 안은 넓고 바깥은 좁은 형태를 띠고 있다. 마치 지금의 토치카 모양이다. 지금이야 주변이 완전히 매립돼서 육지 한가운데 놓인 꼴이 됐지만 당시 호구포는 인천 앞바다를 통해 육지로 들어오는 길목이었다. 옛날에는 남동염전 수로를 따라 육지 깊숙이 현재의 인천기계공고 앞까지 들어올 수 있었다. 전략요충지답게 논현포대 건너편에도 포대가 마주하고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알길이 없다. 1894년 화도진이 철폐될 때 함께 폐쇄된 것으로 추측되는 논현포대는 지난 82년 시 유형문화재 6호로 지정됐다.- 첨부파일
-